[Opinion] 마카나이소 - 집밥 한 끼 하실래요? [TV/드라마]

글 입력 2020.11.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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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이제는 라떼 같은 소리로 여겨질 만큼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해간다. 그 변화를 잘 따라가는 사람도 있고 한 발 뒤처지는 사람도 있다. 공통점은 두 사람 다 그 속도 따라가느라 지쳤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인간관계다. 이 사람 저 사람 신경 쓰는 것에 지쳐가니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다. 오죽하면 인터넷 검색창에 혼밥 가능한 식당 같은 키워드가 인기 검색어가 될 지경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니 밥이라도 맘 편히 혼자 먹고 싶은 사람이 꽤 많아진 결과라 생각한다. 혼자 먹는 밥도 나쁘지 않지만, 누군가와 집에서 함께 먹는 밥도 그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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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나이소는 하숙집 마카나이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다. ‘식사를 마련하다’라는 이름답게 주로 요리를 통해서 하숙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카나이칸의 주인인 야마나카 케이타는 도시락 장사를 겸하면서 매일 하숙집 사람들에게 밥을 제공한다. 식사 시간에 다 같이 모여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그들만의 규칙이기도 하다.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이유는 케이타가 동생인 마나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숙집과 식사를 통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케이타의 의도다. 함께 하는 식사와 밥으로 묶인 이들이 가족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었을 때 왠지 모를 쓸쓸함과 괴리감을 안겨준다. 한편으로는 ‘집밥’이라는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은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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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밥이라는 말은 아무개의 집에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상황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그 누군가는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자취하는 사람이라면 룸메이트와 먹을 수도 있다. 요지는 누가 됐건 나 이외의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점이다. 다만 그게 회사 부장님이라거나,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원수라거나, 눈치 없이 끼어드는 누군가여서는 안 된다. 집밥은 반드시 내가 편히 있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먹는 식사여야만 한다. 같이 밥 먹다가 밥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를 지경이면 혼자 먹느니만 못하다.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에는 어색함이 함께한다. 어색함은 첫 만남 이후로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다. 우리는 이 불청객을 쫓아낼 방법을 물색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은 대화다. 한편으로는 가장 어렵기도 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다 한마디 던지면 상대방은 이제 어떻게 답을 돌려줘야 할지 고민한다. 식사의 본질은 밥인데 밥보다 상대방한테 해줄 말 생각하느라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밥 먹고 나왔는데 더 피곤하고 더 배고프다. 그게 집이라면 더 심각하다. 가장 편해야 할 곳에서 불편해지면 그 잔재가 꽤 오래 남는다.


편한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상대방을 잘 알기에 어떤 말을 해도 되고 안 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저 사람과 나의 공통점은 뭔지를 파악하고 있기에 별 고민 없이 아무말 대잔치를 펼쳐도 어색하지 않다. 거기에 집이라는 가장 편한 장소에 있다면 금상첨화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게 외롭지 않은 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의 짐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 집밥을 잘 먹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을 집으로 들이는 것이다.

 

요즘은 인스턴트 식품이나 배달 서비스가 아주 잘 돼 있어서 굳이 요리를 직접 할 필요가 없다. 예전과는 다르게 이런 음식도 질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식당에서 사 먹거나 해 먹거나 시켜 먹거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제대로 집밥을 먹으려면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핸드폰 켜서 주소 입력하고 결제한 뒤에 도착한 음식을 상 위에 펼쳐놓거나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집에서 먹는다고 집밥이 아니다. 물리적으로는 따뜻하지만, 이들에게는 우리가 말하는 온기나 온정이 없다.


요리라는 것은 그 정도와 관계없이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움직여서 만들어야 하므로 당연한 일이다. 재료만 턱 하고 던져놓으면 마법처럼 요리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칼질할 때 들리는 소리, 굽거나 끓일 때 느껴지는 은은한 온기, 점점 퍼져가는 음식 냄새는 내 마음을 달래는 소소한 휴식이 된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요리가 완성됐을 때 얻을 수 있는 뿌듯함은 말할 것도 없다. 휴식의 마무리는 상대방에게 요리를 내어줄 때 화룡점정을 찍는다.


말했듯이 집밥은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 내가 한 요리를 상대방이 먹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한 요리를 내가 먹을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요리해 줄 수도 있다. 내가 됐건 상대방이 됐건 그 요리에는 요리를 한 사람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있다. 그런 요리를 누군가가 먹고 만족하는 모습에서 오는 따스함은 너무 각박해진 지금 사회에서 차갑게 식은 마음을 누그러지게 한다. 서로 같이 요리하고 먹는 것까지 함께한다면 내가 머무르는 이 집에서의 한 끼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어떤 식사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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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은 말 그대로 집에서 먹는 밥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수행하는 역할에는 외부로부터의 보호라는 기본적인 것 외에 심리적으로 편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의 제공도 포함된다. 식당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지만,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므로 식사 예절이나 다른 손님 등 신경 쓸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집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져 있고 내가 편하고 좋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된 집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불편한 장소에서 먹는 밥은 불편한 사람과 먹는 밥만큼이나 속을 더부룩해지게 한다. 어쩌면 불편한 사람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공간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요소다 보니 우리 신체에 직접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의자가 지나치게 낮거나 식탁이 지나치게 높으면 몸이 경직된다. 자세가 굽어지거나 너무 눕혀져 위장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발이 허공에 떠 안정감이 없어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관절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어쩌면 너무 좁은 공간이라 몸을 욱여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몸이 불편하면 뭘 어떻게 하더라도 식사가 편할 수가 없다.


집에서는 누워서 먹던지, 짝다리를 하고 먹던지, 서서 먹던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먹든지 간에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가족이랑 같이 사는 게 아니라는 가정하에. 내 몸을 내가 가장 편한 상태로 두고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몸이 편하니 자연스럽게 마음도 편해진다. 편한 상태에서 하는 식사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에서 먹는 밥보다 맛은 덜할지라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상처를 입다 보니 나를 지키고자 아무도 없는 곳에 자신을 가두려는 경향이 강한 사회가 돼버렸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해졌음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밥 먹는 것조차 남 신경 쓰기 싫어서 혼자 있고 싶을 정도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일시적으로는 혼자가 편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고 혼자의 시간이 반복되다 보면 누군가가 필요해진다. 결국, 우리는 힘들지 않게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쩌다 하루쯤이라도 내가 편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의 집으로 가거나 내 집으로 그 사람을 불러 서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집밥이라는 방법을 연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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