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급과 싸구려에 관한, 예술의 급 [문화 전반]

예술에의 '급'
글 입력 2020.11.2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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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싸구려 -글렌굴드.jpg


 

여기 A와 B가 있다.

 

A는 독립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여러 아트시네마를 돌아다니며 일반 상영관에 걸리지 못한 비주류의 돈 벌이가 시원찮은 영화들, 그러나 평론가 평점만은 무엇보다 높은 그런 영화들을 즐긴다. 그녀의 또 다른 취미는 음악 디깅이다. 유튜브와 사운드 클라우드 그리고 여러 평론 사이트들 속에서 몇 시간이고 파도를 타며 새롭고 알려지지 않은 인디 음악들을 발굴한다. 때로는 뮤지컬 혹은 클래식 연주회를 보러 간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졸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지금 이 순간 그녀를 가슴 뛰게 하는 것이 그런 것들 이니까. 책을 읽을 때도 고전문학이 아니면 권위 있는 아무개 선정 100대 읽어야 할 책 리스트 등을 뒤적거린다. ‘예로부터 사람들 사이에 전하는 말이 있지요. 사람의 운명은, 그가 죽기 전엔 판단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아! 트라키스 여인들은 또 다른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B는 영화 자체를 그리 즐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영화관을 방문할 때면 예매율 1위의 가장 많은 시간대를 쥐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영화를 택한다. 직관적이고 화끈한 전개에 때로는 눈물 쏟게 만드는 영화를 관람하면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기분이다. 그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인기차트 TOP100을 리스트 추가하여 돌려 듣는다. 반짝반짝 빛나며 화려한 컨셉의 아이돌 음악을 특히 좋아한다. 아이돌들은 늘 깔끔하고 듣기 편했다. 그건 남들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그들의 콘서트는 늘 몇 초 만에 매진이 되어버렸으며 늘 화제거리였다. 그는 책도 영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선택하였다. 베스트셀러에서 술술 읽히는 책들로, 아찔한 반전으로 그를 흥분시키거나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위로를 건네는 식이었다. 적어도 그런 책들을 읽을 때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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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A와 B에 대해 어떻게 느낄 것 인가. 누군가는 A는 예술에 관심이 많고 B는 그렇지 않다 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A는 취향이 확고하며 B는 그렇지 않다 할지도 모른다. 혹은 A는 고급적인 취향을 가졌으며 B는 그렇지 못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A는 고급예술이고 B는 싸구려인가?

 

사람들은 늘 급을 나누고 남들과 나를 구별하거나 동일시 하는 것을 즐긴다. 일명 ‘수준 차이’라는 식으로 여기며 급을 나누어 나보다 높게 분류된 이들을 향한 질투와 동경, 낮게 분류된 이들에 대한 은근한 비웃음을 띈다. 이것은 외모와 돈 그리고 학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향유하는 예술의 취향에서조차 급 나누기는 계속된다.

 

예술에 정말 ‘급’차이가 존재하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영원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불변의 법칙일 것 같은 아름다움의 기준조차 80년대와 현재가 다르다. 하물며 아득히 거슬러 올라가 밀러의 비너스를 보면, 아니 그보다 더 아득히 멀어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까지 올라간다면 지금과 같은 기준이리라 짐작하는 것 조차 오만이다.

 

<폭풍의 언덕>을 집필한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이 그 당시부터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고급 예술로써 취급 받았냐는 것이다. 오페라는 또 어떠한가? 지금에 와서야 비싸고 어렵고 지루한 고급 예술로 생각하지만 과거의 오페라는 오히려 마냥 귀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장 오페라의 내용만 보아도 귀족들을 희화화하는 내용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오페라는 상류층들의 고급 취미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시대별로 또 상황 별로 바뀌는 것이 고급예술과 싸구려의 분류점이라면 과연 분류가 적절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분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 전에, 애초에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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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고급예술은 말 그대로 예술적이며 가치 있고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어 다각도에서 뜯고 맛 볼 수 있는, 때로는 비용까지 비싼 것들을 의미할 때 쓰이곤 한다. 예술가의 사상과 감정이 온전히 담긴 창작물의 결정체로 그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고통과 아름다움의 아이러니적인 산물이다. 반대로 흔히 싸구려로 취급 받거나 ‘너무 대중성을 노렸다’는 말의 부정적 느낌으로 여겨지곤 하는 것들은 반복적이며 유치하고 너무 쉽고 직관적이며 표면적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은 잠깐의 유행 혹은 돈 벌이를 위한 수단으로써 쉽게 쉽게 만들어진 가벼움과 자본주의적 산물이다.

 

대중성이란 말 그대로 대중들이 편하고 익숙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성은 자주 무시당하며 고급적이고 진지한 예술이라 언급되는 것들과의 비교에 놓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언가 만들어 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이해 받는 창작물의 탄생은 절대 쉽지 않다. 모두 다른 취향 속에서 각자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함을 생각하면 말이다. 사실 삶의 모든 면들은 흑백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창작물 또한 진지하고 중요한 예술과 가치 없고 유치한 예술로 나눌 수 없다. 진지하고 고급스러운 작품은 유머와 대중성을 가질 수 없고 편안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안에 속하여 영향을 주고 받는다. 어느 한 쪽 없이는 둘 다 존재할 수 없는 공동체적인 관계이다.

 

어렵고 복잡한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내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나만이 알아듣고 이해하게 표현한다면 아마 꽤나 난해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쉬운 것은 어떠한가? 쉽게 설명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듯이 나의 언어를 공통의 언어로 바꾸면서도 그 뜻이 왜곡되지 않게 해야 한다. 꽤나 까탈스럽다. 물론 예술가가 그의 작품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설명하지 않음에도 좋은 작품들은 충분히 존재한다. 다만 읽고 보고 듣기에 쉽다고 해서 그 과정마저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감동과 영감을 동시에 주는 예술이란 결국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고 날카로우면서도 편안한 그런 것이다. 나의 예술이 지적 유희를 갈망하던 정신의 휴식을 추구하던 결국 급을 나누어야 한다면 그 모두를 충족하는 예술이야 말로 그 정점에 서있으며 칭송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술적 작품은 그리 쉽게 매일 발견되는 것은 아니니 그저 원하는 대로 즐기면 되리라. 급이나 수준을 따지는 우월감과 반항이 아닌, 당신의 취향껏 말이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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