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제, 네가 추고 싶은 춤을 춰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글 입력 2020.11.2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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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짓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무리 눈이 부셔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조지아 국립무용단의 연습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조지아의 전통무용을 접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낯선 리듬과 낯선 동작들이다.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연습에서 단장은 굳은 표정으로 메라비에게 지적한다. "꼿꼿하고 힘 있게 춤춰". "남자답게". 대충 이곳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잡혔다. 전통을 고수하는 무용단은 새로움을 허용하지 않고, 무용수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동성애자임이 밝혀진 동료는 거리로 내몰렸다. 주인공 메라비가 춤을 추는 무대는 이런 곳이다.


엄숙한 분위기로 연습이 이어지던 때, 귓불에 작은 피어싱을 한 이라클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고분고분 단장의 지시에 따라 연습에 임하던, 순진한 메라비와는 인상부터가 다르다. 메라비가 우아하고 섬세하다면 이라클리는 좀 더 강한 느낌이다. 천진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작은 피어싱이 어우러져 묘하게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가 풍긴다. 뻔하지만 당연한 수순으로 메라비는 이라클리를 만나 사랑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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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드라마는 자연스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화면, 아름다운 두 인물, 약간의 망설임과 그로 인해 더 아름다운 사랑. 어디서 본듯한 전형적인 스토리에 새로운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조지아 최초의 LGBT 장편영화라는 사실을 염두하면 단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 조지아의 사회적 맥락을 읽을 수 있다.


메라비의 감정은 그의 춤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에도 감정에 따라 모두 다른 동작같이 보인다. 이런 그가 조지아 국립무용단에선 언제나 남성적인 몸짓을 보일 것을 강요받는다. 새로움은 해묵은 전통 앞에서 쉽게 꺾인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댄서 메라비가 자신의 춤에 혼을 담을수록 남성적인 굴레, 전통의 법칙은 그를 옭아맨다.

 

전통을 강조하는 무용단에서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메라비는 지난했던 하루의 끝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만나고, 게이클럽에서 화려한 일탈을 즐긴다. 이 날 만난 다른 남성들은 하루 종일 몸을 팔았음에도 돈이 없다며 신세를 한탄한다.

 

사실 이 하룻밤은 이라클리를 만난 이후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뜬 메라비에게 상영된 잔인한 예고편이다. 무용단에서 쫓겨난 그 동성애자 동료도 몸을 팔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들이 전통을 거부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입을 벌리고 있는 미래가 어떤 모양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무서웠을 것이다. 메라비 주변엔 끊임없이 예고편들이 상영된다. 매일 늦게까지 술을 먹고 연습에 지각하다 결국 무용단에서 해고당한 형, 거리에 내몰려 소문으로만 접할 수 있게 된 동료, 자신처럼 한 때 큰 무대를 꿈꿨지만 결국 실패한 부모님. 숙취에 고생하는 형을 언제나 못마땅해하던 메라비가 형과 똑같은 행색으로 새벽에 귀가하던 날은 그가 현실의 잔혹함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다는걸 보여준다. 당장 내일의 안녕도 확신할 수 없는 메라비가 사랑을 하는 건, 그 사랑을 고백하는 건 설레기보다 무서웠을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사회적 억압은 촬영 현장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도 많은 비난과 억압을 감수해야 했고, 무용단을 섭외하는 일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마지막 장면의 안무를 창작한 안무가의 이름은 익명으로 표시되었는데, 그의 신분이 밝혀졌더라면 아마 곧바로 직장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빌리시에서 상영을 시작했을 때에도 극우 세력의 개봉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상영은 성공적이었고 다수의 영화제에서 초청 되고 수상하며 경직된 조지아 사회에 화두를 던졌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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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가 추고 싶은 춤을 춰"


마지막 장면에서 메라비는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전통을 위반한다. 자신이 추고 싶은 춤을 추며 마침내 세상을 향해 진짜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순수한 열정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그의 동작은 그 어느 때보다 반항적이고 관능적이다. 낡은 것만 고수하는 전통의 수호자들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지만 스크린을 마주하는 우리는 절대 눈을 뗄 수 없다. 메라비는 이 춤에 자신의 온 생애를 걸었으므로.


레반 아킨 감독은 "나는 이 영화를 사랑과 용기로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통해 반대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과 용기' 만큼 이 영화를 잘 담아내는 단어가 있을까. 나또한 사랑과 용기를 담아, 메라비의 마지막 춤에 길고 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 And Then We Danced -
  
 
감독 : 레반 아킨
 

출연

레반 겔바키아니

바치 발리시빌리

아나 자바히슈빌리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11월 2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113분

 

 



 



[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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