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라보기만 해도 사랑이에요 [사람]

환상통을 읽고 적는 나의 사랑 이야기
글 입력 2020.11.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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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책 <환상통>은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을 담아낸 책이다. 혹자는 당신의 존재도 모르는 사람한테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팬은 그들을 사랑한다. 팬의 조건 없는 애정은 사랑이라고밖에 설명할 단어가 없다.

 

“OO, 죽어도 좋아.” 그렇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 환상통을 느끼던 시절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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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팬들을 오빠 쫓아다니는 애들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오빠를 쫓아다니는 애들이 아니라 오빠보다 먼저 가 있는 애들이지요. 그 시절 내가 자주 인용한 것은 롤랑 바르트의 문장이었다. 퇴근길, 추운 저녁.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때면 나는 농담처럼 이 말을 만옥에게 던지곤 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책 <환상통>에선 아이돌 M(민규)을 사랑하는 두 명의 팬이 등장한다. m과 만옥이 아이돌 M을 사랑하는 방식은 제각기 달랐다. m은 아이돌 M을 보고 나면 기록을 남기고 싶어 했다. 찰나의 순간 경험했던 전율이 머릿속에서 희석되고 사라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스치듯 본 아이돌 M의 인상착의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찰나의 순간 M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의 몸의 전율과 M의 넘칠듯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로는 아이돌 M의 넘칠듯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엔 너무 모자라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욕설과 수없이 남용되는 아름답다는 말만 허공에 맴돌 뿐이다.

    

 

비록 찰나였지만, 다른 우주에서 온 것 같던 그 순간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고, 내가 아는 모든 비유를 동원해서 그걸 정확히 표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 인생엔 다신 없을 경험일 테니 잊지 말아야지,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말하면 말할수록 언어가 이미지를 덮어버리고, 내게 충격으로 남은 그 모습은 눈물에 씻기는 유리 조각처럼 녹아내리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이미지가 오염되는 걸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사라지게 둘걸, 괜히 손댔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실패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가요.

 

 

그러나 만옥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기록보다는 M을 만나는 순간을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만옥은 자신과 아이돌 M의 만남은 운명이라 생각하며 그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너를 가진다는 생각만 해도 괴로웠고, 네가 누군가를 쳐다보기만 해도 괴롭다면 네가 사라지는 게 옳았다. 내가 너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으므로 그게 최선의 답이었다.

 

 

m과 만옥, 둘이 아이돌 M을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방향은 같았던 둘의 사랑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가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을 매도하거나 모욕할 생각은 전혀 없다. 팬이란 ‘믿는 자’라기보단 ‘사랑하는 자’이며, 사랑하는 자는 끊임없이 번민하고 의심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던가?

   

 

 

나의 사랑이야기


 

학창 시절 처음 좋아한 아이돌의 공개 팬 사인회에 간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좋아했다기보다는 주변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친구 따라서 어쩌다 보니 팬이 된 경우였다. 당첨된 것도 아니면서 그저 ‘가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턱대고 간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좋아하는 아이돌을 실물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보고 난 뒤 ’잘생겼다, 멋지다‘라는 마음보다는 나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수많은 팬의 압력과 각자의 오빠를 향해 외치는 처절한 괴성이 어린 마음에는 더 크게 와닿았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몇 분 보지도 않고 나는 진행 중인 팬 사인회에 빠져나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간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 그 당시에 느꼈던 팬의 사랑은 사랑처럼 느껴지기보다는 하나의 광기처럼 느껴졌다. 차분하게 아이돌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갑자기 아이돌이 등장하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조금이라도 아이돌에게 가깝게 닿기 위해 사람을 밀치는 모습들이 매우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처럼 나는 쉴새 없이 아이돌을 동경하고 사랑에 빠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광기에 매료된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게 팬질을 하는 동안 이 마음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아이돌과 사소한 공통점이라도 발견하면 ‘아이돌과 내가 운명인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고, 아이돌을 닮은 캐릭터를 구매하기도 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덕질을 해왔던 것 같다. 정말 내 인생에서 마지막 아이돌이라고 느낀 아이돌이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팬 사인회와 공연장에 가기도 하고 아이돌을 실제로 볼 수있다면 무조건 갈 정도로 열렬한 덕질이었다.

 

실제로 팬 사인회나 공연장에 가면 수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돌을 향한 끊임없는 기다림 속 각자만의 아름다움을 최대로 뽐낸 팬, 고가의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온 팬, 외국에서 온 팬 등 정말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명의 아이돌을 위해 그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인지 정말 사소한 아이돌의 이야기여도 금세 친해지고 경계심을 푼다.

 

참 이상하고 정겨운 공간이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돌을 위해 한 곳에 모이고 기나긴 기다림을 버티며 사랑하고 열광한다. 그렇기에 이 모습은 평범한 사랑과는 매우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짝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시간과 돈을 쓰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 존재 자체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스치듯이 지나가는 만남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팬들을 보고 한심하다 비판하고 병에 걸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로 뒤덮인 일방적인 사랑의 씁쓸함은 다른 누구도 아닌 팬, 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랑에 빠진 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충실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타인의 사랑은 웃음거리가 되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거기에 더해 비난거리가 돼요. 단지 특수 직업군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예요.

 

 

그렇기에 기록하며, 그날의 모습을 자신의 눈에 최대한 담으려고 한다. 바래질 기억의 진행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하기에 그리고 사랑에 빠진 인간은 너무나 여리기에 그 순간의 행복한 만족감과 사랑은 옅어지고 그 빛은 바래간다.

 

수많은 아이돌이 존재하고 수많은 팬이 존재한다. 그들의 사랑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사람도 제각기 다른데 그 사람이 하는 사랑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을까? 사랑에 올바른 형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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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인생 마지막 아이돌이라 생각했던 아이돌에게 제대로 뒷통수를 맞아 예전처럼 열렬하게 아이돌을 좋아하긴 힘들다. 그러나 환상통을 읽고 나서 나의 지나온 팬질이 어떠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했었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후련함이 있다.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사랑은 비균형적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팬들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완벽한 도형처럼 균형적인 관계이다. 늘 좋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던 나만의 사랑이었다.

 

 

방송국 앞에서 사람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보거나 욕을 하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 거야,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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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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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읽어보고 싶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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