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임 워프의 새로운 패러다임 - 상견니 [드라마]

상친놈이 적어보는 상견니가 사랑받는 이유
글 입력 2020.11.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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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중심엔 종종 타임 워프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판타지의 아주 보편적인 형식 중 하나는 바로 타임 워프다. 과거와 미래를 교차하여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이를테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너의 이름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한동안 빠져 살았던  <시그널>, <미드나잇 인 파리> 등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대여섯 개는 될 만큼 타임 워프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은 계속해서 창작되어왔다. 유사하지만 조금씩 다른 형태로 말이다.

 

너무 많이 접했던 터라 이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서 색다른 매력을 다시는 못 느낄 줄 알았다. 타임 워프야 이제는 너무도 보편적이기 때문에 SF적인 요소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로맨스를 위한 하나의 장치로써 사용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사람들이 하도 상견니, 상견니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임 워프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내 앞에서 상견니 좀 보라고 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한 3화 정도까지는 아무런 감흥도 못 느꼈다. 무슨 소리인지도 하나도 모르겠고... 이게 뭐가 재밌다는 건지, 하려던 참에 타임 워프가 시작됐다.

 

이 드라마의 진가는 거기서부터 발현된다. 여자 주인공 황위쉬안의 타임 워프.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우바이의 Last Dance를 들으면 타임 워프를 할 수 있다는 아주 흔한 타입의 타임 워프지만 이 드라마는 그 보편적인 방식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서사를 만들어 낸다.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여자 주인공과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남자 주인공의 시간 교차. 이 쌍방향적 타임 워프야말로 타임 워프물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남녀 주인공이 각자의 타임 워프를 통해서 서사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내며 각자의 자리에서 타임 워프를 하니 이야기가 더 미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 이 드라마의 대체 어떤 점이 그 수많은 상친놈 (상견니에 미친놈)들을 만들어낸 것인지, 이 글을 통해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재정립해보고자 한다.

 

 

*

해당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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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9년을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 황위쉬안과 2년 전 죽은 그의 남자친구 왕취안성. 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외양을 하고 있는 1998년의 소심한 여학생 천윈루와 리쯔웨이, 그리고 리쯔웨이의 단짝이자 천윈루를 짝사랑하고 있는 모쥔제.

 

2019년의 황위쉬안이 왕취안성을 그리워하는 동안, 또 다른 시공간에서는 1999년의 세 학생이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두 시공간의 평행이 존재하는 셈. 이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드라마를 이해하기에 어느 정도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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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2019년의 황위쉬안으로부터 시작된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자친구 왕취안성을 몇년토록 그리워하고 있던 그녀는 마침 그의 회사에서 개발 중인 '또 다른 나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과 죽은 남자친구와 아주 닮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기억엔 전혀 없는 사진. 자신과 왕취안성과 똑 닮았지만 끽해봐야 그들이 일고여덟 살 때쯤에야 찍었어야 할 시기의 사진. 또 그들 외에 누군지도 모르는 한 명의 남자.

 

그녀는 사진의 배경이 된 32레코드 점의 사장을 만나러 가고, 그는 사진 속 여자아이는 레코드점에서 알바했던 자신의 조카이며 1999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의문만 남은 상황에서 마침 생일을 맞은 황위쉬안은 익명으로부터 전달받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재생하고 잠에 들어 1998년의 사진 속 천윈루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신이 천윈루가 되는 꿈을 꾸며 두 친구와 함께 추억을 만들고,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을.

 

꿈에서 깨어나 이제 막 병실에서 깨어난 천윈루.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둔기로 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거다. 그녀의 눈앞에는 거짓말처럼 왕취안성이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리쯔웨이라는 이름을 달고. 과거에 갇힌 황위쉬안은 천윈루의 일상을 살아가며 이전 천윈루의 성격과는 확연히 다른 당찬 모습을 보여준다. 같이 지내던 친구도 없었고, 가족들과도 서먹했던 천윈루의 몸에 황위쉬안이 들어오면서 주변인들은 천윈루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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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워프의 조건을 알아낸 황위쉬안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천윈루로서의 생을 살아가 두 친구와 함께 천윈루를 둔기로 내려친 범인을 잡고자 한다. 본래 천윈루와는 확연히 다른 성격에 조금씩 황위쉬안을 좋아하게 되는 리쯔웨이. 모쥔제는 자신과 비슷한 외로움을 가진 천윈루를 좋아했고, 왕취안성은 밝고 당찬 황위쉬안을 좋아하게 되며 감정선이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둘의 사이가 서먹해지자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천윈루. 밝은 자신은 원래의 천윈루가 아닌 2019년에서 온 황위쉬안이라고 한다. 모쥔제와 리쯔웨이는 그 사실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조금씩 그녀가 황위쉬안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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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천윈루의 일상을 살아가던 황위쉬안은 리쯔웨이의 책상에서 왕취안성의 작업실에 걸려있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왕취안성과 리쯔웨이는 분명 다른 사람인데, 어째서 그 그림을 가지게 된 건지. 의문을 품고 있다가 이야기는 리쯔웨이에게로 넘어간다. 드라마의 중후반부에서 이 이야기의 서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리쯔웨이는 어째서 왕취안성과 같은 그림을 가졌는지, 이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이따금 2019년의 황위쉬안의 근처에 있는 리쯔웨이는 어째서 그 자리에 있는 건지. 앞서 첫 단락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각자의 타임 워프를 통해 서사가 더 풍부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황위쉬안이 교제하던 왕취안성은 바로 리쯔웨이의 타임 워프가 일궈낸 결과다.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와 천윈루의 몸에 들어간 황위쉬안과 사랑에 빠진 리쯔웨이. 천윈루가 죽고 나서는 타임 워프가 불가능해졌고, 리쯔웨이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력에 시달려 자살한 왕취안성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왕취안성으로 살며 황위쉬안과의 인연을 계속해서 만드는 리쯔웨이. 정리하자면 왕취안성과 황위쉬안의 연애는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온 리쯔웨이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 대서사만 이해하면 이 드라마 속의 자잘한 연출적 디테일의 의미를 캐치하는 건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서술한 이 스토리 말고도 드라마 속의 의문 가득한 이야기는 마지막 화까지도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또한 드라마는 같은 외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자아를 가진 천윈루와 황위쉬안을 표현하는 가가연의 연기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황위쉬안과 천윈루를 달리 바라보는 리쯔웨이 역의 허광한의 눈빛 연기, 그리고 천윈루를 짝사랑하며 그의 곁에 항상 있어 주는 모쥔제는 하이틴 로맨스의 서브 남자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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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드라마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다. 바로 OST이다. 음악을 듣고 잠을 청하면 타임 슬립을 한다는 설정이니만큼 우바이의 Last Dance는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나오는 아주 중요한 배경 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하다 하다 밑에 사진이 밈으로 쓰일 정도로 이 OST는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어 실제로 내 SNS에 이 사진을 게시하고 얼마 안 지나서 연락한 지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뜬금없이 상견니를 봤냐며 뜻밖의 연락이 오기도 했다. 또한 이 드라마의 오프닝 곡인 'Someday or One day'나 마지막 곡인 '想見你想見你想見你'을 재생하면 드라마가 시작하고 끝날 때의 영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환상을 겪기도 한다.

 

특정 매개체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는 설정. 타임 워프물에서 빠지지 않는 클리셰이지만 이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 각자의 타임 워프를 통해 순환하는 인연의 끈을 더욱더 단단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똑같은 외양이어도 본인이 기억하는 상대의 말투와 표정만으로도 인연임을 직감하는 낭만적인 서사는 덤. 세 명의 친구가 불운했던 원래의 미래에서 벗어나 더 행복한 결말을 맺기 위해 과감히 과거를 바꿔버리려는 용기까지 더해진 이 드라마는 그 용기 덕에 더 짙은 여운이 남는다. 또한, 판타지 하이틴이라는 궁극적인 요소에 스릴러가 합쳐져 지루할 틈없이 휘몰아치는 전개와 미래와 과거를 오가는 주인공들의 표정 연기를 비교하는 맛이 쏠쏠하다.

 

사랑하는 인연을 계속해서 곁에 두고 싶은 마음, 그런데도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과감히 뫼비우스의 띠를 잘라버리는 성숙함. 정해진 미래라는 틀을 깨고 과감히 불길로 뛰어든 여자 주인공 황위쉬안에게 보내는 따스한 위로.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도 이 드라마는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보내는 박수갈채라고 생각했다. 또한 꼭 연인과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유형의 사랑에게 보내는 포옹 같기도 하면서.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기회를 저버리지 않는,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을 선택을 하자는 교훈인 것 같기도 했다. 사랑스러웠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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