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텔 방은 놀러 갈 때나 즐겁지 [사람]

공짜는 없다는 지극히 사적인 의견
글 입력 2020.11.2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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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살면 좋을까?



좋은 숙소에 묵게 되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아, 여기서 살고 싶다.” 푹신한 침대와 낙낙한 바닥 너비. 포근해진 마음에 감칠맛을 더하는 가구와 소품까지. 그날만큼은 모두 내 것이지만, 체크아웃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 나를 꼭 한 번 상상하게 된다.


호텔 거주가 뜨거운 이슈다. 여행자의 낭만을 실현시켜 정말 호텔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까지나 간질거리는 설렘으로만 남을 것 같던 그 가정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끼워져 더럽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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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 대책으로 호텔 개조 주거지를 권유하는 뉘앙스를 풍긴 후부터다.

 

 

“...영업이 되지 않는 호텔들을 리모델링해서 청년 주택으로 하고 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다. 머지 않아 근사하다 그럴까, 잘 돼 있는 사례를 발표할 기회가 있을 것”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숭인동 청년주택을 말하는 건가?’ 베니키아 호텔을 개조해 만든 숭인동 역세권 청년주택.

 

반년 전, 학교 근처의 비싸고 비좁은 방에서 허덕이던 내게 이곳의 입주 문자가 다급히 날아왔었다. 호텔을 개조했다는 중점을 필두로 한 여러 시설의 나열에 몇 분 정도 마음이 갔던 것 같다. 학교와도 멀지 않고, 그때 나는 어디로든 탈출하고 싶었다.


부푼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둘러보다가 이내 부른 헛배처럼 쉽게 꺼졌다. 조금의 눈치만 갖춰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워낙 떠들썩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텔 측이 돌연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그 비용으로만 대략 월 30만 원을 요구하자, 입주예정자의 90%가 입주를 포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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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논란이 되자 무상제공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살펴봐도, 가장 중요한 보증금이랑 관리비를 포함한 방값이 전혀 경쟁력 있지 않았다. 계산을 잘못했나 싶어 보고 또 봐도, 결국은 학교 앞이라는 이유로 양심 없는 가격을 부르던 오피스텔의 방값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숭인동 청년주택은 없던 일처럼 주거 선택지에서 사그라졌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비현실적인 발언으로, 호텔 개조 임대 주택의 대표적 실패 사례인 숭인동 청년주택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바닥 난방도 되지 않고, 환기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역세권 입지의 뒷면에는 늘어진 모텔촌이 있었다.


그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5~6평 원룸에 보증금 5000만 원, 관리비 포함 월세 50만 원 선이라는 숫자가 비집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어디서 굴러들어 온 지 모를 ‘주변 시세보다 저렴’이라는 수식어가 얄팍하게 그 비용을 두르고 있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



사실, 열변을 토하며 주거비용의 부담감을 말하는 나도 부모님이 구해준 집에 산다. 집이 해결되었으면 고민 끝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


가족 안에서 사회를 배운다는 말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내 돈으로 마련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 돈으로 마련한 것이다. 그 전제로 인해서 개인적으로 난감한 요구들을 들어야 했다.

 

첫 번째는 집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사적 공간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인터넷에 신혼집 비밀번호에 대한 논쟁이 많이 있어 훑어보았다. 요약하자면, 양가 부모님이 돈을 보태 신혼집을 해줬는데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생기는 감정적 문제들이었다.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비밀번호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해서 놀랐다. 부모님의 수혜를 받아 살게 된 집인데, 비밀번호를 숨기는 것은 파렴치하다는 혹은 은혜를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신혼부부가 자력으로 집을 살 수 없는 사회에서는, 부모 사랑이라는 수혜를 받아 운 좋게 집을 가지는 선택지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생활을 지키는 것도 선택지에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매주 교회에 나가라는 것이었다. 이건 지극히 가정 개별의 항목이니 더 서술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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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취약점이 다르므로, 이러한 간섭은 집이 없는 고통만큼이나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공짜는 없구나.’ 물론 부모님의 사랑 덕에 집에 살 수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자식 상에 부합함으로써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

 

이젠, 작아도 좋으니 하루빨리 내가 돈을 벌어 내 집에서 나만 아는 비밀번호를 맘 편히 걸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마음껏 즐기는 날을 꿈꾼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가 공짜로, 혹은 저렴하게 집을 준다며 사탕발림을 하고 있다. 과연 공짜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정치에 무심한 편이고, 정치적 입장을 표하는 걸 꺼린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호텔 거주 발언과 그와 연관된 여러 주장을 보고 있노라면, 짧지만 나름의 것을 갖춘 내 삶의 경험이 입을 열어 무언가 이상한 것 같다는 말을 종종 읊는다.

 

 

[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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