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적 조화로움의 기쁨과 즐거움 - 앙리 마티스 특별전, 재즈와 연극

"나는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글 입력 2020.11.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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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춤 II, 1910

 

 

“앙리 마티스”


그의 이름을 마주하면 자유롭고 대담한 색채가 얽힌 어떤 덩어리가 떠오른다. 당시 그 누구도 쉽게 감당하지 못해 ‘야수’라고 불렀던 색채 덩어리. <모자를 쓴 여인>부터 <춤II>과 <음악> 그리고 색종이를 오려서 만든 컷아웃(Cut-Out)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의 작품을 나열해본다.


한편 올해 유독 많은 관심을 받았던 마티스의 단조로운 초상화들도 떠오른다. 하얀 화면 위 검은 선들로 슥슥 그려진 초상화. 거창할 것 없는 선들 만으로도 시선이 가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인물 그림들은 생각할수록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앙리 마티스는 무엇인가를 그리기 위해 색채와 선을 쓴 것이 아니라, 색채와 선이 그려낼 수 있는 걸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색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어떤 실재를 재현하는 색이 아닌, 다른 강렬한 색으로 채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관계, 그것은 마티스 자신의 예술에 대한 그의 예술가로서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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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앙리 마티스 단독 전시회 <앙리 마티스 특별전 : 재즈와 연극>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우리에게 익숙한 마티스의 회화들과는 조금 다른, 그리고 더 다양한 그의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달리스크 드로잉부터 시작해 컷아웃, 의상디자인, 삽화, 건축까지. 미술사 상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없던 마티스의 또 다른 예술 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었기에 흥미로운 전시였다. 그만큼 ‘강렬한 색채’라는 인상에서 잠시 물러나, 예술에 대한 앙리 마티스의 태도를 좀 더 다양한 범위에서 엿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앙리 마티스의 오달리스크 드로잉과 낭만주의 시 곁에 그려진 삽화, 그 사이를 오가며 자연스레 그의 ‘선’에 관심이 갔다. 마티스의 색채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도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선’이라는 주제는 늘 그의 화려한 대표작들 사이에서 한 발짝 밀려나 있곤 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그렇게 한 번도 관심을 두거나 집중해보지 못했던 마티스의 선을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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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베스크, Lithograph on Chinese paper, 1924

work by Henri Matisse ©Succession H.Matisse

 

 

오달리스크 드로잉 속 앙리 마티스의 선들은 대상을 구성하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그 자체로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단하고 명확한 선보다는 유연하게 휘어 오르는 선들, 자유롭고 대담한 색채를 구사했던 그의 손길이 선에도 묻어나고 있었다.

 

그림은 얼기설기 그려진 것 같지만, 인물과 배경의 패턴, 사물들을 모두 하나하나 명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마티스의 선은 어떤 긴장이나 힘을 모두 느슨하게 풀어놓고도 무엇을 보아야 하고, 볼 수 있는지 드러내며 나의 시선을 또렷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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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두르 주제의 석판화, 1951

work by Henri Matisse ©Succession H.Matisse

 

 

아마 마티스는 하나의 선이 적절한 관계 속에 놓였을 때 그것이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드러낼 수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던 예술가였던 것 같다. 이는 단조로운 선만으로 그려진 그의 삽화와 초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마구 종이를 꼬집듯 뭉쳐진 선들로 표현된 인물의 눈동자를 좋아한다. 그것만으로도 인물의 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려지고 시선이 가진 뉘앙스와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인물의 눈에 시선이 가고, 그 사이에 그어진 선을 보다 보니 코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아래 자유로운 곡선의 역동적인 휘어짐 사이로 도톰한 입술이 그려진다. 하얀 면과 검은 선. 지극히 평면적인 표현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인물의 얼굴을 이루고 있었을 굴곡과 명암 같은 것을 자연스레 상상하며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었다.

 

마티스의 선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일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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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을 살펴보다 보니 그가 말년에 컷아웃 작품에 관해서 “가위는 연필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기억하며 마티스가 가위질하는 영상을 가만히 보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 색종이를 자르던 서툰 가위질이 떠올랐다.

 

종이를 가위 날 사이 가장 안쪽에 대어 얕은 칼집을 낸다. 그러고선 가위 각도를 살짝 좁혀 손을 앞으로 뻗어가며 세차게 종이를 잘라낸다(이런 가위질이라면 면을 갈라놓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가위가 종이를 자르는 아주 짧고 반복적인 그 순간, 종이가 서걱거리며 손에 전해졌던 미미하고 잦은 진동이 떠올랐다. 그는 왜 가위가 감각적이라고 했을까? 그렇게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상상해보았다.

 

위치와 형태를 어느 정도 예상하며 종이 위에 긋는 연필 선과 달리, 가위질은 종이 사이를 거침없이 쪼개며 전진하고 개척하듯 선을 긋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연필이 그리는 선과 달리 가위가 그리는 선은 확실히 더 역동적인 것 같다. 그리고 전자의 것은 면 위에 남는 것이라면, 후자의 것은 또 다른 면의 형태를 세상의 새로이 탄생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컷아웃 기법은 마티스의 오랜 고민이었던

‘드로잉과 색채 사이의 영원한 갈등’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Section 2. <재즈>와 컷아웃 서문

 

 

여러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앙리 마티스의 예술 세계 속 선과 면의 관계가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선을 그리고 색채로 면을 채워가던 그가 컷아웃에 마음을 두었던 이유가 어렴풋이 이해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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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던지는 사람, Lithograph after a cut-out gouache, 1947

work by Henri Matisse ©Succession H.Matisse


 

그렇게 마티스는 삶의 마지막 즈음에서 가위와 색종이를 가지고 경쾌한 재즈를 연주했다. <재즈>* 컷아웃 작품들을 보면서는 그가 면으로 포착한 ‘동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칼을 던지는 사람>에 시선이 머물렀다. 나는 왼쪽의 붉은 자줏빛 형태가 칼을 던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얼핏 보면 정말 추상적인 형태에 불과한데 왠지 모르게 칼을 던지는 사람의 동세가 그려지고 느껴지는 것 같았다. 특히 뭉툭한 선들 사이에서 날렵하게 표현된 부분들에서는 어떤 속도감이 상상되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그 면 안의 영역에서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을 칼을 던지는 사람의 자세와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있었다.


*1947년에 제작된 서커스를 주제로 한 컷아웃 시리즈로 마티스 컷아웃 기법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곳곳에 흩날리는 식물의 형태들은 그다지 밝다고 느껴지지 않는 검은색과 쨍한 푸른색임에도 불구하고 장면에 화려함을 더한다. 익숙한 이해와 감각을 벗어나 또 다른 가능성을 드러내며 사용된 색채를 볼 때마다 마티스의 색채를 다루는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재즈>의 컷아웃들이야말로 마티스의 색채 감각, 그 균형과 관계를 이루는 감각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번 상상하게 된다. 원색에 가까운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녹색, 거기에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까지, 나라면 이 색들로 모두 사용해서 어떤 조화로운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아마 얼마 못가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을 것만 같다. 색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라는 그의 말이 절로 이해되고, 그가 예술가로서 추구한 목적을 위해 해왔던 노력이 어떠한 것인지 그려지는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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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도마, 1943

work by Henri Matisse ©Succession H.Matisse

 

 

조화로움과 관계의 관점에서 계속해서 생각해볼 때, 로사리오 성당이 그의 삶을 걸쳐 이루어진 조형 실험을 결집시킨 말년의 걸작이라는 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하얀 벽 위에 그만의 자유롭고 유연한 검은 선들로 그려진 벽화, 빛을 머금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나타난 형태와 색채들의 조화로운 장면이 한 건물에 모여 이루는 또 다른 조화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성당이라는 장소성 때문이었을까, 그림의 소재 때문에 그랬을까. 로사리오 성당 속 그의 선 그림들은 숭고한 인상을 주고 있었고, 빛을 머금은 스테인드글라스는 너무도 따스하게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스테인드글라스의 많은 면이 파란색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스한 인상을 준다). 색채를 넘어선 빛의 조화였고, 캔버스를 넘어선 공간 속의 조화였다. 성당은 아주 빼곡히 채워지지 않았다. 충분한 빛과, 충분한 선들, 그 사이에 새하얀 여백도 이 조화에 중요한 요소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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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세라노, 마티스 채플, 2015

photo by Andres Serrano © Andres Serrano

 

 

색채와 선 그리고 면을 지나 이제는 여백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티스의 작품은 아주 많은 의미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있다면 그가 고백했듯 작품이 전해줄 수 있는 행복이나 봄날의 밝은 즐거움, 그런 것이었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 앞에서 나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거나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가 펼쳐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인물을 상상하고, 생동감이 철철 넘치는 색채들의 조화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마음껏 경험할 뿐이었다. 그뿐이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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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노력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그 전에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 앙리 마티스

 

 

마티스의 예술에 ‘순수함’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마음껏 느끼고 상상하고 눈에 담으며 저마다의 떨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 예술. 복잡한 생각 없이 조화로움이 안겨주는 느낌을 마음껏 누리는 것으로 충분한 넉넉함 같은 것.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지금까지도 사랑하고 마음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티스의 작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선명한 감각과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힘을 품고 있다.

 

’행복’ 같은 단어를 입에 머금는 것이 낯설고 언제든지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어렵게 성취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며 조건을 따지려는 우리에게, 마티스는 경쾌한 색채, 선, 면들의 조화로운 향연이 담긴 작품으로 그저 한 사람으로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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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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