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음탕한'과 '늙은이'와 '비망록'의 만남이라, 일반적인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얼굴이 보인다. 담배를 물고 있는, 표정을 알 수 없는 늙은 남성이다.
특히 두 뺨과 큰 코가 눈에 띄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거하게 술 한 잔한 모양이다. 이 사람이 아마 음탕한 늙은이겠지. 그리고 아마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의 저자, 찰스 부코스키 자신일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라는 인물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몇 문장만으로도 그라는 사람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책 속에는 그 자신을 드러내는 개성 강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더구나 '음탕'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직설적인 표현들이 가득 차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그는 자신의 글 속에서 저돌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책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에는 부코스키 자신이 등장한다.
마치 자기 자신이 실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픽션인 듯 논픽션인 듯 그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물론 그 모든 이야기들이 픽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은 뭐가 됐든 부코스키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관련해서 서문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구문이 떠오른다. [집으로 찾아온 의사도 있었다. "당신 칼럼을 읽었는데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전에 정신과 의사로 일했죠." 당장 그를 돌려보냈다. (pp.10)]
처음 이 구문을 읽었을 때는 과장된 표현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글이 독특하기로서니, 정신과 의사가 직접 집을 방문하게 만들 정도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글을 접하고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음,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생각하면서.
세상에 저게 뭐야, 싶다가도 왠지 부코스키라는 인물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의심이 드는 건, 단순히 나의 편견일 뿐일까? 직접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역시나 음탕하기 그지 없는 영양가 없는 농담만을 내뱉는 그를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대화가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명성은 단순히 그가 대단히 음탕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팬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그의 매력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매력을 나라고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름 다양한 책을 읽으며 여러 장르를 경험했다 자부했었는데, 책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나에게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 도대체 얼마나 더 책을 읽어야 그 무엇에도 담담해질 수 있을까?
추신: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의 독서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수 있다. 이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책장을 넘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