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을 헤매어도 괜찮아 : 양과 강철의 숲 [문학]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다칠 때, 위로와 희망과 자극을 주는 이야기
글 입력 2020.11.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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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특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취미/특기란을 마주할 때면 항상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펜을 들고 ‘내가 잘하는 게 뭘까?’라고 자신에게 물어보고는 했는데, 뚜렷한 답이 되돌아온 적이 없다. 이내 마지못해 적어내는 특기마저도 ‘이게 정말 내가 잘한다고 자신 있는 일이 맞을까?’, 확신이 없었다.

 

우리는 무언가에 재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재능을 살려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분명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재능을 찾는 것도, 그 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운이 좋게도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 이후 특기란을 마주할 때의 답답함과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한다고 믿고 하는 일에 ‘재능’이 있는가? 이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있는가? 라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아직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불안한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운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이야기를 건네주고 싶다. 책 『양과 강철의 숲』의 주인공인 도무라는 피아노 조율사이다. 한 소년이 피아노를 만나서 조율사라는 길을 걷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의 숲에서 길을 잃은 우리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을 것이다.

 

 

양과 강철의 숲_인제주 (2)[크기변환].jpg

 

 

 

세계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지금까지 아름답다고 이름 붙이지 못했던 대상들이 기억 여기저기에서 밖으로 톡톡 튀어나왔다. 자석으로 사철을 모으는 것처럼 아주 쉽게, 자유롭게. (...) 피아노가 어딘가에 녹아든 아름다움을 꺼내어 귀에 들리게 해주는 기적이라면 나는 기쁘게 피아노의 종이 되리라.

 

-27쪽

 

 

방과 후에 우연히 피아노 조율사를 만나게 된 소년이 조율사의 손에서 새로 탄생한 피아노 소리에 그대로 사랑에 빠진다. 소년의 입으로 발화되는, 그가 운명을 마주한 순간을 묘사한 소설 속 문장은 마음을 충만하게 만든다. 이때의 충만한 마음은 누군가가 운명을 마주한 순간을 공감하며 차오르기도 하고, 앞으로 자신이 만날 운명에 대한 기대감으로 차오르기도 한다.

 

이 소설은 ‘나는 아직 조율이라는 세계의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뿐인 수습생이었다’고 말하는 도무라가 피아노라는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도무라는 이타도리씨의 피아노 조율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게 되고, 그 길로 조율사 육성학교를 나와서 운이 좋게도 이타도리씨가 있는 에토 악기에 조율사로 취직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게 된 도무라가 신입 조율사가 된 이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늘 생각한다. 음파의 수와 높이를 정돈하는 것. 그 지점까지는 누구나 훈련을 받으면 도달할 수 있다. 재능이 아니라 노력에 비유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든 연주하지 않든, 열의가 있든 없든, 귀가 좋든 나쁘든 훈련만 하면 누구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삐익 울린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뛰기 시작한 나는, 지금 출발선에서 얼마나 멀리 왔을까.

 

-111쪽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다가온다. 바로 ‘잘’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도무라는 느리지만 성실한 사람이다. 다른 조율사의 조율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을 수첩에 일일이 기록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퇴근 후에 가게에 남아 가게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연습을 한다. 타인에게 배움을 청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도무라도 자신이 이 일을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타인에게 물으며 초조해하고 확신을 쉽게 얻지 못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세계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가는 일은 도무라의 여정처럼 쉽지 않다. 어떤 일에 남들이 보기에도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만의 지름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도무라처럼 운명의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걷기 시작하지만, 걸어가다가 자신이 원하는 지점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과는 달리 이 길이 맞는지를 계속 헤매고 뛰어가기는커녕 자꾸만 멈춰서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지, 도무라는 이야기해준다. 실력이 없다는 말을 손님에게서 들은 날, 도무라를 위로해주려는 동료 야나기씨가 도무라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 라고 위로를 건넬 때 “헛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라고 도무라는 단호하게 답한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에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내가 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헛되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남들의 목표가 아닌, 나의 목표



도무라가 조율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이끈 이타도리씨는 남들이 모두 인정하는 조율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조율을 받기 위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작은 마을로 연주회를 올 정도다. 이를테면 조율사라면 지향하는 목표의 최정점에 다다른 것이었다. 모두가 원하는 지향점과 다르게 이를 바라보며 도무라는 자신의 목표는 콘서트 튜너가 아니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도무라는 조율 견학에서 만났던 가즈네라는 학생의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와의 인연이 계속되어 나중에는 가즈네의 피아노를 조율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누군가는 너무 소박한 목표라고 폄하할 수도 있고 야망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두가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걷는 것도 분명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도무라처럼 자신만의 지향점을 찾아내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다.

 

 

person in forest[크기변환]양과 강철의 숲.jpg

    

 

어쩌면 이 길이 틀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걸려도, 멀리 돌아가도, 이 길을 가면 된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숲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풍경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숨겨져 있지도 않고, 그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271쪽

 

 

 

뻔한 문장을 펼친 하나의 이야기



“노력도 재능이다.”

 

도무라가 신입 조율사에서 사람들에게 도무라가 갈 수 있는 길을 인정받기까지의 성장담을 담은 책, 『양과 강철의 숲』. 이 이야기는 어쩌면 노력도 재능이라는 뻔한 말을 하나의 이야기로 펼쳐낸 이야기다.

 

아직도 마음을 울리는 일을 조우하지 못했다면 도무라가 피아노 소리를 마주한 첫 순간을 읽고 언젠가 자신도 그런 일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미리 그 행복한 순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만났지만, 그 길에 확신이 없을 때, 노력만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 때는 내가 길을 걸어가기 위해 하는 ‘노력’이 차근차근 쌓이면 어떤 식으로든 길의 끝에서 하나의 풍경을 마주하게 해줄 것이라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라고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여전히 특기란은 공란이거나 거짓으로 채워져 있는 기분이고,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럴 때 옆에서 길을 헤매도 괜찮다고, 그 길을 걷다가 발견하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도무라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도 작은 희망과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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