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Uncollected Stories: 도서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글 입력 2020.11.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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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_도서이미지_도서출판잔.jpg

 

 

살다보면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 익숙한 것들 위주로 선택하게 되곤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다. 그러나 비교적 전통적인 것, 기존의 것을 준수하는 편인 나는 생소한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종종 새로운 선택들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이번에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읽게 된 찰스 부코스키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역시 그런 선택의 일환이었다. 찰스 부코스키가 날 것의 글을 썼던 것은 내 취향과는 정말 다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진 것은 과연 그의 글이 어떤지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된 글을 보는 것이니 역자의 역량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도서출판 잔과 역자 공민희가 생생하게 부코스키의 문체를 전달해줄 것이라 믿으며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도서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으며 원초적었기 때문이다.


 



< 책 소개 >

 

《우체국》 《팩토텀》 《여자들》 《호밀빵 햄 샌드위치》 《할리우드》 《펄프》 등 60여 권의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출간한 아웃사이더 찰스 부코스키.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에서 전 세계 독자들이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최고의 작가가 되기까지, 그 위대한 여정의 끝.


20세기 미국 문단 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늘 논란의 중심이 된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작품이 너무 많아 생전에 다 출간되지 못했다. 이 책은 지하신문과 문학 저널을 비롯해 음란 잡지에 수록되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을 담았다. 최초로 출간된 단편, 마지막으로 쓴 단편, 최초의 수필과 최후의 수필, 이 책과 함께 출간된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최초 수록분도 포함되어 있다.


"소설, 단편소설, 시, 편지, 수필 등 거의 50편에 가까운 부코스키의 책이 나왔지만, 데이비드 칼론이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발굴해 내면서 부코스키의 작품을 망라하는 여정이 제대로 채워졌다."

-존 마틴(John Martin)


이 기념비적인 산문집은 그의 친숙한 주제에 관한 단상, 아르토, 파운드, 헤밍웨이에 대한 논의, 자신의 미학을 주제로 한 토론 등 그저 무뚝뚝해 보이는 작품 속에 숨겨진 박식함도 엿볼 수 있다. 부코스키를 더 깊게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이며, 부코스키를 처음 읽는다면 단번에 그의 목소리에 빠져들 것이다.

 


 

 

"변덕은 지식의 수준을 높이는 운명이다.(p.66)"


아, 부코스키가 남긴 수많은 생각의 편린들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문구였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내가 부코스키의 글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이 변덕이 나에게 분명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난 시를 쓰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섹스를 한 게 다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p.64)" 라고 말하는 늙은이에게 도대체 뭘 바라겠는가. 가만 보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훌륭한 작가는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살고 글을 쓰는 것. 그거면 끝이다.(p.191)"라고 부코스키 스스로는 말하지만, 그냥 살기만 하면 끝인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야 맞는 게 아닌가. 특히 글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글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 같아도 그는 분명 날카롭게 사회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미국 시민으로서 햄버거와 록 음악만 고수해야겠다."라고 한 뒤, "훌륭한 미국 시민은 생각하지 않는다.(p.225)"라는 촌철살인을 남긴 것을 보면,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살았던 경험이 부코스키에게 역설적이게도 깊은 통찰력을 기르게 한 시기가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부코스키는 아주 고약한 늙은이다. 어떻게 "베토벤과 바흐를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는 말러(p.176)"라는 표현을 감히 쓸 수 있는가. 말러도 위대한 음악가지만, 베토벤과 바흐를 시시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글에 조금씩 묻어나는 음악의 조각들이 썩 마음에 들던 와중에 베토벤과 바흐를 아주 자연스럽게 까내리는 부코스키를 보고 울컥 화가 치밀었다. 알코올 중독이나 다름없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여자 이야기는 또 어찌나 풀어대는지. 여자 이야기 없이도 글을 쓸 능력이 충분히 되는 사람이 꼭 여자 얘기를 쓴다. 그것도 저속하게. 성적인 묘사와 표현이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아마도 원문으로 보면 더 날 것의 표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자가 최대한 완화해서 표현한 게 느껴지는데, 돌려 표현한 게 이 정도라니. 스스로 음탕한 늙은이라 칭할 만하다. 저질스러운 영감탱이!


*


사실 앞단의 글은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부코스키처럼 풀어본 것이다. 사실 내가 쓴 글은 부코스키의 향기를 살짝 맡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내 생각은 부코스키의 글에 대한 감상이라는 점이 아주 명확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부분들을 집어내 이야기를 이어나가도 본질적으로 부코스키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명약관화하니 말이다. 그러나 부코스키의 글을 읽어 보았는가? 그는 종종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발화인지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생각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부코스키의 글은 픽션과 에세이가 섞여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면, 무엇이 픽션이고 무엇이 에세이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전부 다 에세이인데 너무 날 것 그대로이다보니 픽션도 섞여 있다고 그냥 한 마디 던졌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 경험이건 아니면 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건 간에 어느 쪽이든 놀라운 건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하는 것인지 생경하다.


어쩌면 날 것 그대로인 그가 위선자가 아니라 가장 진솔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그런 의문을 갖게 된다. 비도덕적인 것이 항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리고 본성인가? 그렇다면 도덕적인 것은 결국 위선적인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부코스키의 글은 마치 무례한 것이 솔직함으로 포장되어 '그럴 수도 있지' 식의 평가를 받는 걸 목도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듯했다. 그가 진솔한 것은 맞지만, 그의 글이 여전히 불편한 나를 위선자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황당한 일이니 말이다.


모르겠다. 부코스키는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특히 나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물이기에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또 어렵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글은 아주 더럽고 불쾌하고 비도덕적인 것들이 가득해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글이지만 그가 수많은 글을 썼던 만큼 한 편의 글을 끌어가는 힘만큼은 아주 놀랍다는 점이다.


*


부코스키의 글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뜬금 없지만 MBTI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우리가 MBTI를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이 검사는 분명 유의미하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부코스키의 책과 관련해서는 S와 N의 차이가 생각이 났다. S는 감각형(Sensor)으로, 분명한 사실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상상하고 사색하는 것보다는 현실주의자로서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을 추구한다. 반면 N은 직관형(iNtuition)이기에 감각형에 비해 성찰적이고 사색적인 측면이 강하다. 영감도 많고 개념을 구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직관형들은 보통 생각이 정말 깊고 다양하게 뻗어나간다. 조심스럽지만 부코스키의 MBTI 중 두번째 자리는 분명 N이었으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바로 내가 S이기 때문이다.


"난 술에 취해 여기 앉아 내일 어디서 어떻게 살지 걱정하고 있다. 생각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은 사람에게 여긴 있을 곳이 못 된다. 사람들은 내가 괜찮은 시인이고 글을 꽤 잘 쓴다고 말하며 난 잘 모르는 여자들에게서 향내가 풍기는 편지를 받았지만, 내 이성의 해를 등지고선 까마귀가 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니 분명 내일은 전당포에 가야 한다.(p.69)"


우선 첫째, '술에 취해 여기 앉아 내일 어디서 어떻게 살지 걱정'하는 것 자체가 감각형(S)인 나로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다. 내일이 걱정된다면 술에 취할 것이 아니라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했을 것이다. 집세가 문제라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지 술에 취해 앉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더더욱 완벽하게 그의 직관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니 분명 내일은 전당포에 가야 한다'라니, 이 무슨 논리의 점프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부코스키에게 울컥 화가 솟구쳤다. 이봐 술주정뱅이, 라흐마니노프는 당신에게 수많은 번뇌를 넘어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줄 수는 있어도 전당포에 가라는 헛소리는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이렇게 사고를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부코스키의 글은 나에게 굉장히 새로웠다. 직관형의 사고가 잘 되지 않는 나에게 직관형의 사고 세계는 이런 식으로 뻗어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생생히 전해준 글이었던 셈이다. 물론, 직관형이 모두 이렇게 노골적이고 원초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만큼의 간접경험이 또 어디 있을까.

 

 

wine stain.jpg

 

 

부코스키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의 표지를 보면 아래쪽에 Uncollected Stories and Essays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이 부코스키가 투고했던 글들을 모아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이 엮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으지 않았던 이야기(Uncollected stories)라고 볼 만도 하다. 그러나 Uncollected는 모으지 않은 이라는 뜻 외에도 자제심을 잃은, 혼란스러운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혼란스러운 이야기(Uncollected stories)이기도 한 것이다.


부코스키의 진솔하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한 이 이야기가, 또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와 닿을 것인가. 이 Uncollected stories가 어떤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지 궁금해진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공민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페이지: 400쪽


정가: 14,800원

ISBN: 979-11-90234-10-8 0384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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