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 CCTV보다 적나라한 삶의 나체

글 입력 2020.11.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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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냄새를 맡았다.

 

아주 오래된 여관방에서 나는 먼지 냄새 같기도, 수산시장 뒤켠에 쌓여있는 생선 내장의 비린내 같기도, 음식물 쓰레기차가 몰고 다니는 찌릿한 냄새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냄새든 상관없이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혔다.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책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에 관한 이야기다.

 


표지 입체.jpg

 

 

찰스 부코스키와 초면이다.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말하자면, 발표하는 작품마다 거센 비난을 받으며 주류 문단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이단아, 하지만 출간한 책이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작가다. 이효리가 연예인의 연예인이듯, 찰스 부코스키야 말로 예술가의 예술가인 셈이다. 책을 몇 장만 넘겨봐도 그가 어떤 사람, 어떤 작가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작가가 지하신문에 게재한 칼럼을 엮은 책이다. ‘지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언론사의 표현 규제나 정제된 단어 사용은 없다.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대로’ 작가가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이 여과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작은 월세방에 살았다. 뒷마당에 잔디가 길게 자랐고 파리 떼가 그 사이에 숨어 알을 낳고 나와 마당에서 사방으로 날아다녔는데 4만 마리는 족히 되어 날 미치게 했다. (중략) 우리가 침대에서 섹스를 할 때 벽이 흔들리고 벽은 다시 선반을 흔들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용암이 분출할 때처럼 선반에서 화분이 떨어지려는 소리가. 그래서 난 얼른 멈췄다. "아니, 안 돼요. 멈추지 말아요. 아, 세상에, 멈추지 말아요!" 그래서 난 계속했고, 선반은 내 등, 엉덩이, 머리, 다리, 팔 쪽으로 기울어지며 화분을 던지려 했고, 그녀는 웃으며 비명을 지르고 그렇게 절정에 올랐다.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183p

 

 

그는 퇴폐적 현실주의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폐적이라는 표현을 뺀,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부조리한 사회, 인간의 이기주의, 정치적 위선,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등 일상적이지만 기존 작가들이 순화해온 사회의 단면을 담았다. 가끔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표현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도 표방하지 않았고, 표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표현법을 구축하여 찰스 부코스키 그 자체가 되었다.



표지 평면.jpg

 

 

종이를 넘길수록 나를 강하게 지배하는 생각이 있었다.

 

 


1. 나는 삶의 민낯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난 아직 덜 살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지만 나름 밀도 있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모두 저만의 아픔은 있겠지만, 중학생 때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져 이사를 다녔다. 이외에도 말하지 못할 가정사가 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작가의 삶 앞에서 나는 겸손해야 됨을, 아직 인생의 진정한 시련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인생에서 느껴지는 쾌쾌함이 아직 내게는 배어있지 않다. 과연 좋은 현상일까.

 

술, 여자, 도박, 폭력성. 그의 인생을 차지하고 있는 키워드다. 분명 누군가는 그를 ‘저급한, 쓰레기, 미친’ 등의 표현으로 그의 이름을 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성을 배제하고 감정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마주하지 못한 당대의 추악함과 더러움을 볼 바에 차라리 미친 척하고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유년 시절, 오랜 시간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의지할 곳이 술, 여자, 도박 그리고 글밖에 없진 않았을까.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나는 감정을 온전히 표출한 적이 있는가



찰스 부코스키가 부럽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먼저 해본 적이 없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 내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작가에게 악취가 난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그는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다는 '질투'에서 나온 말일까.

 

오히려 그가 더 ‘순수’한 사람일지 모른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감정을 절제해온 내가 더 더럽혀진 인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덜 아프기 위해’라는 말로 포장해왔다. 그에게 상처와 아픔이란 무엇일까. 그의 묘비명 ‘애쓰지 마라’처럼 애를 써도 거스를 수 없는 존재인 걸까.


그에게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여성을 자신의 성욕을 푸는 도구로 삼았고, 하나의 일을 끈질기게 하지 못한다. 시종일관 비관주의로 가득 차 매분 매초 취기에 숨어 산다. 책을 읽는 동안 미간의 주름은 계속해서 구겨진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모든 인간의 심연에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술에 취하고 싶고, 울고 싶고, 미친 사람처럼 웃고 싶다. 하지만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압한다. 찰스 부코스키야 말로 가장 인간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존중한 사람이다.


자신의 추악함까지 드러낸 작가.

 

나는 찰스 부코스키가 될 수 없다.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원제: NOTES OF A DIRTY OLD MAN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분류 : 에세이

 

출판사: 도서출판 잔


옮긴이: 공민희


페이지: 304쪽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정가: 14,200원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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