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존재는 몇 장의 종이로 증명되는 걸까? - 연극 '아라베스크'

글 입력 2020.11.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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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면 신분증 사본,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서류를 요구받을 때가 많다. 필요한 절차라고 판단되어 항상 군말 없이 서류를 제출하곤 했는데 최근 이 서류들을 떼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난관에 부딪혔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의 문제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는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다.

 

꽤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였기에 스트레스가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분명 나란 사람은 여기 존재하고, 내 가족도 버젓이 있는데 고작 서류 몇 장 떼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존재와 가족 관계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사람을 다루는 문제는 수많은 변수와 함께할 수밖에 없기에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처사이다. 다만, 종이 몇 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조금 씁쓸할 뿐이다.

 

연극 <아라베스크>를 보면서 그때의 씁쓸함과 답답함을 떠올렸다. 단지 종이 몇 장만으로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없을 때, 그래서 필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흐무드와 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나는 안락한 본국에서 겪은 잠깐 짜증나는 일 정도였다면, 그는 자신을 낯선 이방인으로 규정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이 걸린 문제와 싸워야 했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선돌)_포스터(최종).jpg

 

 

연극 <아라베스크>는 2018년 예멘 난민의 제주 대거 입국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실제 사례들에 상상력을 더해 한국인 조사관이 예멘에서 건너온 마흐무드를 심사하는 과정을 다뤘다. 예멘 난민 이슈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불과 2년 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거니와 당시 벌어졌던 논쟁 역시 몹시 뜨거웠기 때문이다.

 

전쟁을 피해 본국을 떠나온 마흐무드의 눈에 띈 건 ‘Welcome to Jeju’라는 문장이었다.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2018년을 제주 방문의 해로 지정해 제주행 티켓이 저렴하게 팔리기 시작한 것. 마흐무드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제주가 환영하는 사람은 잠깐만 머물 관광객뿐이라는 것을.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2).jpg

 

 

연극 <아라베스크>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는다. 분명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마흐무드를 옹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입국을 망설이는 조사관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피곤함에 찌든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멀끔한 옷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온 마흐무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난민에서 많은 부분이 벗어난다. 조사관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심사를 진행하기 위해 서류를 요구하지만, 순탄치 않다. 그러자 마흐무드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연극의 핵심 갈등은 자신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라는 마흐무드와 이를 망설이는 조사관 사이에서 빚어진다. 처음 연극의 줄거리를 접했을 땐 마흐무드를 선, 한국인 무리를 악으로 규정짓기 쉽다. 그러나 실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흐무드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거짓 진술을 하기도 하고, 조사관은 통역사를 향해 마흐무드를 자주 두둔한다. 통역사와 보조 역시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2년 전 많은 국민이 보였을 법한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이 문제는 애초에 누가 맞고 틀리냐를 가리는 게 무의미한 일이다. 사실 제주도민의 입장에선 갑작스러운 대거 입국이 당혹스러운 게 당연하다. 언어, 생김새,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한꺼번에 삶의 터전으로 몰려오는데 어느 누가 당황하지 않겠는가. 낯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제주도처럼 견고한 공동체로 이뤄진 섬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거기에 난민을 받아들이는 한국의 인프라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마흐무드의 입장에서도 당연함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왜 이 먼 한국까지 왔느냐는 질문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 말고 또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주도민의 당혹감이 당연한 것처럼 전쟁을 두려워하는 마음 역시 당연한 것이었다. 문학, 영화, 사진 등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여러 작품을 접했으면서도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까먹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이 문제를 일으킨 걸까. 한국에 온 예멘 인들일까, 거부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일까. 왜 그때 나는 자국민을 해외로 쫓아낸 전쟁이나 편협한 시선으로 난민을 묘사해온 미디어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6).jpg

 

 

마흐무드가 전형적인 난민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또 있다.

 

그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말하는 태도에서도 자신을 비참한 처지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앞날을 결정해줄 중대한 심사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흐무드가 너무 당당해 보였다. 이 생각 역시 마흐무드의 한 대사에서 얼얼한 깨우침을 맞았다.

 

“내가 더 비참해지기를 바라는 겁니까?”

 

도움을 요청하는 자는 무조건 불쌍해 보여야 한다는 편견. 이 편견 안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려주는 대사였다.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묵직한 깨우침을 안겨주었다. 마흐무드가 자신을 심사하는 종이들을 바닥에 늘어놓으며 아라베스크 무늬를 만드는 부분, 갑자기 네 명이 아랍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부분이 그랬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안전한 곳을 찾는다. 이 당연한 사실을 지키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무엇이 나와 당신의 사이를 가른 것일까. 몇 장의 종이들로 치열하게 대립하던 그들이 갑자기 사이좋게 춤을 췄을 때, 마흐무드의 앞날을 결정할 종이들이 아라베스크 무늬를 만들어낼 때에야 국경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단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지요.”
 

 

어느 문화권이든 상징적인 몇 개의 이미지가 문화권에 속한 사람을 대변한다. 우리가 예멘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러했다. ‘아랍’ ‘난민’ 이 두 가지 키워드만을 가지고 너무 많은 부분을 주제넘게 판단해버렸다.

 

공인인증서,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여전히 나는 몇 장의 종이들로 나의 신분을 증명한다. 필요한 절차라는 것에는 지금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서류 밖의 현실에서만큼은 몇 개의 이미지로, 몇 개의 뉴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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