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녀, 관습을 전복하다 [영화]

글 입력 2020.11.1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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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녀(2018)는 10년 전 기억을 잃은 자윤이 의문의 인물들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로 박훈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박훈정은 <마녀>를 두고 “전작들과 결이 다른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그의 작품들은 남성 중심 서사를 다뤄왔고, 특히 전작인 브이아이피(2017)의 경우 소모적인 여성 캐릭터 사용으로 논란이 됐었다는 점을 볼 때 <마녀>가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예외적인 작품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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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자윤은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인물로,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TV 속 자윤을 본 닥터 백과 일당들(이하 적대자들)은 자윤의 가족과 친구를 위협하면서 자윤을 쫓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윤은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자각하게 된다.


여성 영화의 주류 장르인 일상 드라마로 출발하는 <마녀>는 사건 전개와 함께 점차 다양한 장르가 결합하게 된다.

 

자윤이 간헐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과거 사건은 미스테리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자윤을 쫓는 적대자들이 등장하고 앞서 제시됐던 미스테리가 풀리면서 액션이 더해진다.

 

장르적 특징이 도드라지는 미스테리, 액션에 결합한 일상 드라마는 극명한 조명 차이로 강조되면서 추적 모티프 속 자윤이 가진 희생자의 포지션을 공고히 하는 장치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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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추적 모티프는 희생자인 자윤이 자신의 과거와 이에 얽힌 비밀을 쫓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상 드라마에서 강조된 선한 희생자의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윤과 동일시를 일으키게 되고, 적대자와 선악 구도를 이루게 된다.


이때 <마녀> 선한 희생자인 줄 알았던 자윤이 모든 사건의 배후였다는 반전으로 플롯의 변주를 꾀한다. 자윤은 약한 체력과 온화한 성정을 가진 인물로 사회적 여성성이 극대화 된 인물이다.

 

부제목으로 쓰인 전복은 순수하고 무결한 여성 피해자 자윤에게 우리가 예상했던 것들을 뒤집어엎겠다는 예고이자 경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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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속에서 그려지는 캐릭터들 역시 관습을 비껴간다. 보통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거나 과거 비밀을 쫓는 등 기존 미스테리 액션물에서 여성은 주로 희생자이거나 주인공의 연인과 같은 감정적 조력자로 등장해왔다. 하지만 주인공 자윤은 가장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조력자가 필요하지 않은 인물로 묘사된다.

 

적대자의 우두머리 닥터 백 역시 여성으로, 자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권력의 상위권에 위치한 인물이다. 정리하면 <마녀> 속에서 힘과 지능에 있어 각각 최상위에 위치한 인물이 모두 여성이며, 두 인물은 도덕적 판단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가지는 욕망에 대해 구구절절 명분을 늘어놓던 이전의 영화들과 달리 <마녀>는 그들의 선택에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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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이 신세계(2012) 다음으로 준비하던 이 작품은 여성 원톱 주연에 신인 배우를 원한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해 제작이 늦어졌다. 영화를 보며 느껴지는 아쉬움 역시 한정적인 제작비 때문이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마녀>는 300만이라는 적지 않은 관객수를 기록했지만,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 코리아가 한국 영화사업에서 철수하며 속편 제작이 불투명 해지는 둥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수많은 남성 영화 속에서 <마녀>는 이미 훌륭한 전복을 해냈다. 자윤이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됨과 동시에 플롯의 변주로 반전을 선사한 1부는 자윤에게 한정적인 시간과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면서 또 다른 추적 모티프를 제시하고 막을 내렸다.

 

자윤과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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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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