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열일곱 소녀가 보여주는 사랑의 힘 – 안티고네 [영화]

영웅이 된 정의로운 소녀의 이야기
글 입력 2020.11.1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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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티고네> 포스터


 

포스터 한 장만 보고 영화관에 갔다. 눈물을 머금은, 그러나 어딘가 결연에 차 있는 초록색 눈동자의 소녀.


소녀는 집안의 수재다.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교 성적도 좋으며, 지혜까지 갖췄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가위를 들더니 긴 곱슬머리를 싹둑 깎는다.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간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구하기 위해서다. 큰 오빠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뒤, 남은 작은 오빠만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안티고네는 작은 오빠를 위해 남장까지 하며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 오빠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의 정체는 들통난다. 도망친 폴리네이케스는 동생의 희생에도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술집을 들락거리다가 다시 경찰에게 붙잡힌다. 안티고네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재판장에서 만난 그에게 원망의 소리를 지르지만,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기나긴 재판의 과정과 보호기관에서의 생활이다.


안티고네는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결백한 것이 아니라 범죄조직을 주도하고 가담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마음은 피폐해지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시켜요, 전 언제든 법을 다시 어길 거에요.”라고 말하며 웃음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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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연은 남자친구 하이몬의 도움으로 SNS상에서 화제가 된다. 이제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티고네가 자주 입는 빨간색 옷을 입으며, 그녀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연대의 운동을 이어나간다. 안티고네는 순식간에 자유와 정의의 아이콘이 된다.


솔직히 말해 한 치 주저함도 없이 가족을 위해 맹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그녀를 보며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일을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왜 그렇게 무거운 짐을 나서서 짊어지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 중에서도 막내이고, 또 현실적으로 가장 유망한 장래를 기대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또 이민자로서 시민권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개인의 안위를 신경 쓰기에도 벅찬 나머지 가족을 삶의 우선순위로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안티고네의 언니 이스메네가 바로 그런 사람의 전형으로,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안티고네와 함께 둘째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도주를 돕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신도 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며 가족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인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이스메네의 말이 평범하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과 제도가 이들에게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에테오클레스는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민자가 아니었더라면 혹은 보호자가 되어 줄 부모가 살아 있었더라면 그는 한순간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판사와 검사는 모두 안티고네가 고의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알지만 법이라는 미명 하에 그녀는 겪지 않아도 될 수감생활을 해야 하며 그로 인해 고통받는다.

 

영화 감독 소피 데라스페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이민 가족의 문제를 영화를 통해 다루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민자나 난민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쉽게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며 일상과 제도적 영역에서 정식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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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직접적으로 무엇이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안티고네가 어떻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조명할 뿐이다. 그래서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에가 받은 처분이 과잉 진압인지 아닌지, 안티고네가 정말 무죄라고 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영화가 말하려는 메세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문제다"라고 말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오늘날 합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을 모두 정의롭다고 하기는 힘들며, 위법 행위라고 해서 그것이 꼭 부정의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혼란 속에서도 안티고네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그녀는 나아간다. 오직 사랑의 힘으로. 긍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에 부딪힌다. 죽은 오빠의 시체가 들판에 버려진 채 그대로 썩어가는 것을 가만 두지 못하고 장례를 치러주고자 국법을 어긴 신화 속 안티고네처럼,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그녀의 이야기가 고전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울림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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