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당신은 나이를 먹는다 [사람]

대중문화로 바라본 에이지즘
글 입력 2020.11.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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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라마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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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보았다. 드라마의 반전요소를 미리 알고 보았음에도 보는 내내 눈물을 삼키기 힘들었다. 정주행을 끝낸 후에는 주연을 맡은 김혜자 배우님의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을 보면서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옆에서 드라마를 함께 본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 아마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흘린 눈물로 점수를 매긴다면, 이 드라마가 1위를 차지할 것이다.

 

<눈이 부시게>의 주인공 ‘혜자’는 치매 환자다. 그러나 드라마 초중반에는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젊은 주인공의 패기와 로맨스를 보여주며 시청자가 그녀의 서사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러다 극 후반부에 다다라 그녀가 알츠하이머를 앓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청자는 지금껏 자신이 본 드라마를 ‘치매 환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이 탁월한 극본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치매 환자 또한 자신과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더불어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불편하고 안타까운 존재로 묘사되었던 치매 노인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TV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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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의 친할머니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친할머니에 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전에 가족과 함께 친할머니를 모시고 친척의 결혼식 피로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과 함께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고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나를 보며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리고는 네가 왜 여기에 있냐고 물으셨다. 나를 처음으로 알아보지 못하셨다. 자신이 아끼고 사랑한 손자의 모습도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그것이 치매였다.

 

물론 그때 이후로 계속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니다. 친할머니의 기억은 돌아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가진 기억은 언젠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드라마 속 혜자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할머니의 모습이 생경했지만, 나는 점차 그 모습에 익숙해졌다. 혜자의 가족처럼 말이다. 나는 친할머니의 삶이 불쌍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폭력적인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녀가 안쓰러웠고, 농사와 술장사 등을 전전하며 그저 그런 삶을 살았던 그녀가 안일해 보였다. 친할머니에게 왜 더 나은 삶을 꿈꾸지 않았느냐고, 삶의 끝이 너무나 허무하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동시에, 한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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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거울을 봤을 때, 자신이 늙어갈 모습보다는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므로 <눈이 부시게>에서 늙어버린 자신을 보고 경악하는 혜자의 모습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늙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기에,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유쾌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도 당신은 나이를 먹는다. 우리 모두 혜자처럼, 나의 친할머니처럼 요양병원에서 삶의 끝을 갈무리할 수 있다. 이처럼 늙고 병든다는 것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회는 노인 인구를 ‘어떻게 부양할지’에 집중한다. 그러나 부양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늙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자신이 늙어도 있는 그대로의 존재 의미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체성을 추구하는 노인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2.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원하지 않는 세대갈등이나 사회적 소외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에이지즘(Ageism, 연령차별)’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 ‘에이지즘’이란 나이에 따른 사회적 차별과 선입견을 의미한다. 특히 유교적 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나이’라는 것은 권위를 형성하고 타인과 벽을 쌓는 도구로 이용된다. 자신보다 어린 이에게 순종을 강요하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불필요한 거리감을 두는 것이 그 예시다.

 

이와 같은 ‘연령 차별주의’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돌’은 미혼의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여겨지며, 청년과 중년이 모여 그룹을 형성해 가수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깬 가수가 등장한다. 바로 <환불원정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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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원정대>는 TV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이다. ‘놀면 뭐하니?’에서는 이미 <싹쓰리>라는 혼성 댄스 그룹을 이루어 훌륭한 성과를 거둔 선례가 있다. 하지만 <싹쓰리>와는 다른 <환불원정대>의 특별한 점은 다양한 연령대의 기성 가수들이 모여 새로운 그룹을 결성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매력과 능력이 출중한, 20대부터 50대의 가수들이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완성도 있는 무대를 이루는 과정은 대중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젊은 세대는 엄정화와 이효리라는 전설적인 가수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었고, 기성세대는 제시와 화사의 당당한 자신감을 통해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환불원정대> 결성 초기에 ‘옛날에는 서른 넘는 가수가 없었다’라면서 자신을 불러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던 엄정화의 모습이 기억난다. 한국 가요계의 여왕인 그녀가 나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힘들어했던 과거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4명의 빛나는 가수들이 모인 <환불원정대>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나이가 도전의 걸림돌이 되는 과거를 잊고, 한국 대중문화가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냈다.

 


 

3.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밀라논나>



바야흐로 ‘유튜브 전성시대’다. 우리는 유튜브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유튜브의 특징을 활용하여 ‘노인’임에도 젊은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다.

 

이 둘의 공통점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노인’이란 하나의 특성일 뿐이지 그들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지 않는다. 유튜브를 통해 노인의 생활도 재미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젊은이들이 ‘내가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동기를 갖게 만든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존경받는 대상이자, 다른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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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유쾌하다. 그리고 직설적이다. ‘젊은이들이나 쓸 법한’ 가발을 쓰며 시원하게 멋을 내고, 자신만의 화장법을 소개한다. 식당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다양한 음식 솜씨를 선보이고 편들(팬들)에게 ‘너희들도 만들어서 먹어보라고' 말한다.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진다. 또, 드라마를 보며 시원한 욕을 내뱉는 할머니를 보면 웃음이 지어지며 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시청자들은 할머니가 낯선 사람과도 기쁨을 나누는 모습에서 에너지를 얻고, 할머니가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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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밀라논나>는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패션 전문가답게 패션과 관련한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영상을 올린다. 때로는 자신의 일상이 담긴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그녀의 옷 관리 비법부터 구독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영상까지 가만히 시청하다 보면, 연륜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모니터를 넘어서 느껴진다. 그녀는 21세기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는 방향성과 삶의 지혜를 제시한다. ‘몫을 나누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하며 시청자들이 주체적인 자신을 정립할 수 있게끔 돕는다.


종합하자면, 이러한 할머니 유튜버들의 자존감과 주체성은 ‘에이지즘’의 한계를 넘어선다. 노인이 ‘부양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멋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한다. 그들은 나에게 “다 늙은 할머니도 이렇게 도전하는데, 젊은 네가 왜 망설이니”라고 속삭인다. 나는 그들을 통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저 두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


나의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 두 분 모두 일을 하셨고 외가댁이 우리 집 바로 옆에 있어서 나는 외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나의 두 동생이 태어날 즈음에는 부모님이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오가며 생활해야 했기에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생활했다. 외할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은 특별했다. 할머니는 이른 아침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새벽마다 나를 깨우셨다. 그리고 서로 함께 창문을 바라보며 가로등이 밤새 품었던 불씨를 하나둘씩 꺼트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 특별한 의식을 치른 후에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벽 공기의 달큼한 향이 점차 없어지며 따뜻한 햇볕이 비춰오는 그 순간,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새벽의 가로등이 꺼지듯이,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늙겠지’라는 불안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법이다. 해가 뜨면 가로등이 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새벽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인은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노인을 나와 같은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존중하자. 자신의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자. 그렇다면 당신도 행복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도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는 당신을 응원한다.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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