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깊고 긴 호흡이 필요할 때

#20 바바라 글래드스톤
글 입력 2020.11.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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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갤러리 이야기



기업에도 대기업이 있듯이 갤러리에도 대형 갤러리가 있다. ‘블루칩 갤러리’, ‘메가 갤러리’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대형 갤러리들은 대개 전세계 주요 도시에 지점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시장에서의 파워가 막강한 탄탄한 작가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대형 갤러리 중 하나인 페로탕(Perrotin) 갤러리를 차린 엠마뉘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 1968-)은 스물한 살에 집 안에 자신의 첫 갤러리를 차렸다. 또 다른 대형 갤러리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 갤러리의 설립자 이완 워스(Iwan Wirth, 1970-)는 열여섯 살부터 학교에 안가는 날에 작품을 팔았다고 한다. 동시대 미술 현장을 주름잡는 젊은 갤러리스트들 중에는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환경 등의 영향으로 미술을 가깝게 여기고 좋아하면서, 일찍이 사업을 시작한 케이스가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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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첫 갤러리를 오픈하기 직전의 글래드스톤.

 B&W PORTRAIT, COURTESY GLADSTONE GALLERY 출처: Wall Street Journal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던 마흔 살의 한 여성은 어느 날 자신이 죽은 예술가에 대해 강의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예술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에 더 끌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다 마침 갤러리에서 일하던 친구가 직장에서 나오고 싶어하자 그와 함께 맨해튼으로 와서, 판화 등 종이에 그려진 작품을 취급하는 작은 갤러리를 차린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 첫 갤러리는 “신발 상자 만한 크기”였는데도 임대료는 700불에 달했다(그 당시는 1979년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이듬해인 1980년에 친구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친구는 계속해서 종이 작업을 취급하는 사업을 했고, 후에 한정판 에디션 프린트를 발행하는 명망 있는 전문가가 된다. 한편 고작 1년의 갤러리 비즈니스 경력을 가지고 친구와 갈라선 이 여성은 아주 조금 더 넓은 공간에 다시 갤러리를 열었다. 그곳에서 그는 소수의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끈기 있게 지켜봤다. 갤러리의 주 고객인 컬렉터들을 상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컬렉터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이 믿는 작가들의 예술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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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21번가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모습


 

1983년 그는 맨해튼의 소호(SoHo) 지역으로 갤러리를 좀 더 넓혀 이사했고, 몇 년 뒤에는 더 넓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그 몇 년 사이 “소호에서 가장 핫한 갤러리”로 꼽히게 된 그의 갤러리는 90년대 첼시 지역으로의 이사를 거치면서 “마치 생명체처럼” 커졌고, 현재는 뉴욕에 두 개, 브뤼셀에 하나의 지점을 가진 ‘메가 갤러리’로 성장했다.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욕 미술계를 선도하며,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이 갤러리스트는 바로 바바라 글래드스톤(Barbara Gladstone)이다. 누군가는 20세에 사업을 시작해 40대에 번창하지만, 또 누군가는 40대에 첫발을 내딛고 80세까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끈다는 것을 글래드스톤과 그의 갤러리가 몸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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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Gladstone. Photograph by Sharon Lockhart,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출처: artnet News

 

 

 

멀리 보고 오래 가는 그의 방식



지금까지는 글래드스톤의 사업적 성공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가장 존경스럽고 닮고 싶은 부분은 그가 작가들을 대하는 끈기 있는 태도와 장기적인 관점이다. 글래드스톤을 거쳐간 제니 홀저, 리처드 프린스, 로버트 메이플소프, 사라 루카스, 조지 콘도와 같은 이들은 모두 정치적, 사회적으로 도발적이며 금기를 깨는 예술가들이다. 젊은 시절 글래드스톤과 함께 일했던 이들은 현재 미술사적으로도, 미술시장에서도 주요한 위치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 또 그는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작가들과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이미 크뇌벨, 영국의 아니쉬 카푸어, 데미언 허스트 등을 뉴욕에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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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BARNEY, DRAWING RESTRAINT 5, 1989 출처: Gladstone Gallery 웹사이트


 

특히 매튜 바니(Matthew Barney, 1967-)와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글래드스톤이 바니를 처음 만났던 1991년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 청년이었다. 의학과 미술을 전공한 탓인지 플라스틱과 바세린으로 신체에 관한 도발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던 이 혈기왕성한 청년과 대화를 나눈 후, 글래드스톤은 굉장한 재능을 만났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작품을 그저 거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맞게 종종 공간 전체를 뒤집는 전시를 선보였던 글래드스톤은 매튜 바니의 첫 전시를 완전히 그의 무대로 만들어주었다. 바니는 자신의 조각품 앞에서 나체로 갤러리의 벽과 천장을 기어다녔다. 전시는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유망한 현대미술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갤러리가 오랜 시간 지켜온 명성만큼, 글래드스톤이 알아보고 소개한 작가들은 설득력이 있었고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클래식’과 같았다. 사실, 글래드스톤이 갤러리를 시작하던 8-90년대는 전도유망한 작가들, 인기 있는 작가들이 물밀듯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던 홍수의 시기와도 같았다. 당시 아트 딜러들은 더 어린 작가들을 찾아 대학원생, 학부생들까지 찾아 헤맸고 매우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게 된 작가들은 쏟아지는 전시와 판매에 대응할 만한 작품의 수나 실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금방 소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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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PRINCE, Untitled (cowboy), 1989 출처: Gladstone Gallery 웹사이트


 

글래드스톤은 “단순히 유망하다는 것 이상을 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늘 작가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그를 찾아오는 작가들도 이를 알고 진지하게 관계를 맺었다. “아트 딜러가 되는 것은 가족을 길러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 그는 “마치 부모처럼” 장기간에 걸쳐 한 작가의 잠재력을 최상으로 끌어내고,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왔다. 앞서 언급한 매튜 바니도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가 1987년부터 제작해온 연작인 <구속의 드로잉>의 제작을 돕고 심지어 영화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차근차근, 한 스텝씩



“아트 딜러가 되는 하나의 길이란 건 없어요. 딜러는 그 사람이 선택한 어떤 형태로든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완벽하게 당신 자신이 될 수 있어요. 모든 아트 딜러들이 일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죠.”

 

개인적으로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지는 것 같은 요즘이다. ‘빨리빨리’의 민족이라 그런가, 혹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가. 조바심에 오히려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지름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발이 꼬여 휘청대기도 한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30대, 40대 이후의 삶을 그리기 쉽지 않고 그래서인지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착각마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글래드스톤의 삶과 철학은 좀 더 차분해지라고, 멀리 보고 차근차근 한 스텝씩 잘 내딛으라고 충고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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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Gladstone. Photo: Lena C. Emery 출처: ArtReview


 

팬데믹으로 더욱 모든 일상이 데이터화되고 빠른 속도로 처리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계란 사람과 사람간의 긴밀한 관계에서 모든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는 최후의 보루인 듯 하다. 그래서 글래드스톤의 이야기는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정해진 길이란 없다. 특히나 이 분야에선 더 그렇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신이 선택한 예술(가)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딜러든, 아티스트든, 큐레이터든, 컬렉터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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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큐레이팅/갤러리이야기 008. 글래드스톤갤러리(Gladstone Gallery)’, 이경민(미팅룸 객원에디터, 前 월간미술 기자), 미팅룸(meetingroom) 네이버 블로그, 2016-01-19.

Ann Fensterstock, Art on the Block: Tracking the New York Art World from SoHo to the Bowery, Bushwick and Beyond. St. Martin’s Publishing. 2013.9.17.

Adam Lindemann, Collecting Contemporary Art. Taschen. 2010.

“Barbara Gladstone” by Linda Yablonsky, The Wall Street Journal, December 1, 2011.

“Review/Art; Matthew Barney's Objects and Actions” by Roberta Smith, The New York Times, Oct. 25, 1991.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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