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사랑, 나의 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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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가 재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핸드폰 속 홈화면과 잠금화면 배경을 바로 바꿨다. <위플래쉬>의 포스터(재개봉 ver)로.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10월 28일 수요일, 학교를 마치자마자 영화관으로 향했다.
좀 더 좋은 스크린과 음향 시스템이 구비된 곳에서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는 웬만한 이유가 아니고서야 가지 않는 내가, 1시간 넘게 소요되는 거리의 영화관으로 급하게 향했다. 떨리는 마음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6년 만에 (공식적으로) 다시 만난 <위플래쉬>는 여전히 멋있었다. 나의 사랑이라 온전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예술을 너무 사랑해서 이를 꼭 전공하리라 마음먹었던 사춘기 시절의 내가 ‘예술 학교와 천재 드러머’라는 포스터 속 단어를 보고 우연하게 <위플래쉬>를 관람하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내 속에 인생 영화를 넘어선 존재로 깊게 자리하였고 며칠 사이로 정확히 9번 더 영화관에 방문하게 만들었다.
처음 영화 <위플래쉬>를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이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교복을 입고 멍하니 앉아있던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영화관 직원분이 괜찮냐며 말을 건넬 만큼, 영화를 보고 돌처럼 굳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작품이 어떤 서사를 가지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등장하는 음악, 장면, 그냥 <위플래쉬>라는 그 자체가 내겐 센세이션이었다. ‘미쳤고 또 미쳤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만큼.
‘음악도 영화도 둘 다 너무 좋은데! 나중에 꼭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영화를 만들어야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ㅡ 마음 한 켠 속에 항상 가지고 있었던, 당시 나의 꿈이었다.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그림을 눈으로 마주한다는 건 내게 너무도 충격이었다. 물론, 재즈나 미국 등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그 배경을 이루는 요소가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영화는 이런 것이다’고 확실하게 말해줬던 <위플래쉬>였다.
그리고 정확히 6년이 흘렀다. 나는 <위플래쉬> 속 앤드류처럼 예술 학교를 다니며 그 속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개인적으로 재즈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 작업 역시 함께 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위플래쉬>와 같은 음악 영화를 꼭 만들겠다는 굳건한 다짐 아래, 하루하루 whiplash 하며.
[김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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