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할아버지와 귤과 롤러코스터

글 입력 2020.10.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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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오 년 동안 집에만 계셨다. 항상 안방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셨다. 치매가 시작되면서 직장은 다닐 수 없었고, 요양원을 몇 번 오갔지만, 매번 할아버지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치매는 나아지지 않았고 계속 심해져갔다. 쓰레기 버리는 요일이나 관리비 납부일을 까먹다가 먼 친인척의 얼굴을 잊었고, 나중에는 아들과 손녀 얼굴도 잊어버렸다. 그 시기에 아빠는 할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자주 바깥 구경을 나갔다. 시내 구경을 한번 하고, 아빠가 빚 때문에 팔아버린 논밭을 찾아갔다. 논밭을 보면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웃었다.

 

할아버지가 하나둘 기억을 잃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기억한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어려서 공부를 잘했던 할아버지는 멀리 떨어진 도내의 큰 중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에서 방학에 집에 돌아 오려면 온종일 걸어도 집이 보이지 않아 내내 울며 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삼 년을 다니고 인천의 고등학교까지 입학했지만, 농사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고향에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끝없이 일했고...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지만, 치매는 그 기억들을 거침없이 잡아먹었다. 풀이 자라는 것처럼, 칡넝쿨이 나무를 잡아먹고 산을 뒤덮는 것처럼. 아빠는 종종 칡이 새까맣게 뒤덮은 산등성이를 보면서 칡은 생명력이 너무 강해 산이 버텨내질 못한다고 말했다. 칡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면 산은 죽는 거라고. 치매는 할아버지 뇌에 심어진 칡이었고 누구도 뽑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점점 더 단순해지다가, 짧은 단어의 모음으로 변했고, 나중에는 그마저 잃어버렸다.

 

내가 찾아가면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침상에서 일어나 안방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창문을 향해 있어서 앉으면 오후 햇살이 활처럼 굽은 할아버지의 등과 어깨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할아버지의 갈색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아주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치매가 심해진 때였다. 창밖을 보는 할아버지의 눈을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도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것들이 속에서 자꾸 사라지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손쓸 수도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눈빛. 그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할아버지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인 것 같았고, 다시 한번 나를 알아볼 것 같았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왔어요” 같은 짧은 말. 그 순간에는 할아버지가 대답을 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귤껍질, 포도 씨앗, 손에 닿는 모든 걸 입에 집어넣 었고, 할머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사이 문을 잠가버려 열쇠공이 올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밖에 서 있게 만들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기저귀를 빨던 할머니 위로 넘어져 허리를 부러뜨렸다. 할머니가 기절할 것 같은 통증을 참고 간신히 119에 전화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맡겼던 때, 아빠는 요양원과 병원을 오가느라 얼굴이 푹 꺼져있었다. 나는 가끔 할아버지를 보러 갔고, 손을 꼭 잡아주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낯익은 거실에 앉아 있다. 그 거실은 내가 어릴 때 살던 할아버지 집의 거실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빴기 때문에 나는 열 두세 살 무렵 대부분을 그 집에서 보냈다.

  

낯익은 그 거실이 환한 햇빛으로 가득하다. 귤 바구니가 앞에 놓여 있다. 나는 귤껍질을 조심스럽게 까서 귤 알맹이에 붙은 하얀 껍데기도 살살 벗긴다. 그렇게 깐 귤 한 알을 옆에 있는 할아버지 입에 넣어준다.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었고 머리가 하얗게 셌다. 할아버지 몸이 곧 쓰러질 것 같아서 나는 할아버지 어깨를 감싸며 받쳐 안는다. 할아버지 몸이 아주 가볍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것처럼.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내버려 둬”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가 주방에서 건너오면서 말한다. “할아버지가 너무 가벼워요” 내가 말한다. “갈 때가 돼서 그래. 무얼 줘도 소용이 없단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할아버지를 더 세게 안는다. 피와 살이 아니라 유리 막대처럼 텅 빈 날개뼈만 느껴진다.


”좋지 않니? 이제는 새처럼 가볍잖아.“ 할머니가 킬킬거리며 웃더니 등을 돌려버린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먹은 귤을 토했다. 거실에서 시큼한 토 냄새가 난다. 할머니는 등을 돌린 채 아무 말이 없다. 나는 할아버지를 계속 품에 안는데 쓰러질 것 같은 할아버지가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새하얗게 빛났다.

 

꿈에서 깼을 때의 그 슬픔. 할아버지는 오후 한 시에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은지 팔년 째 되던 해였다. 나와 언니는 상복을 입고 머리에 리본을 꽂았다. 장례식에는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고모할머니들과 친인척들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소주를 먹었고 둘러앉아 나는 모를 옛날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할아버지의 유골은 사과나무 아래 묻혔다. 증조할아버지 묘지가 오른편에 있고, 왼편에는 할아버지가 젊을 때 살았던 옛집이 있는 위치였다. 그 집은 아무도 살지 않은지 오래지만, 아빠와 나는 별장처럼 관리하며 자주 오갔다. 사과나무를 심은 것도 나와 아빠였다. 나무를 심을 때 우리는 가을이면 잔뜩 열릴 사과를 따 먹을 기대에 차 있었다. 그 작은 나무는 올해야 열매를 조금씩 맺기 시작했는데. 그 아래 할아버지를 묻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인생은 자꾸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제 사과는 할아버지 몫이네요.“ 나는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며 아빠와 산을 내려왔다.

 

나는 지금도 종종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렇게 오래 치매를 앓았는데도, 내게 남은 건 멍하고 왜소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내게 할아버지는 남색 경비원 모자를 쓰고 있다. 내가 할아버지 집에서 먹고 자던 열두세 살 무렵에 보았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겨울이면 귤을 한 봉지씩 사왔다. 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나는 겨울에는 할머니와 함께 거실 전기장판 위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텔레비전을 봤다. 그러고 있으면 해질 무렵 할아버지가 또 손에 귤 한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한번은 현관에서 할머니와 나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귤을 얼마나 먹었는지 우리 얼굴이 샛노랗다고. 할아버지는 귤을 잘 드시지 않았는데도 항상 귤 한 봉지를 잊지 않으셨다. 내가 조르지 않아도 겨울에 거실 귤 바구니는 항상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은색으로 번쩍이던 커다란 바이크. 할아버지가 탔던 그 바이크는 끝내주게 멋있었다. 할아버지는 바이크를 몰 때 은색 헬멧에 선글라스까지 꼭 맞춰 썼다. 자동차가 없어서 나는 그 바이크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경비원 근무는 2교대라 아침에야 퇴근할 수 있어서 할아버지는 오전 여덟아홉시쯤 집에 오셨다. 학교가 멀어서 그 시간에 출발하면 이미 지각이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항상 여유로웠다. 내가 아침밥을 먹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바이크 뒷자석에 태웠다. 나는 자전거 헬멧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 할아버지 등허리를 안았다. 할아버지가 시동을 걸면 바이크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학교로 갈 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학교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 4차선 도로였고, 하나는 산을 타고 넘는 굽이진 길이었다. 산이 높고, 굴곡이 얼마나 심한지 바이크를 타고 그 길을 가면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몸이 이리 쏠렸다 저리 쏠렸다 하다 보면 배 속이 간질간질한 게 신이 났다. ”이 길로 가면 꼭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야“ 언젠가 내가 굽이진 길 위에서 그렇게 말하자 할아버지는 크게 웃었다.

 

우리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을쯤이면 할아버지가 항상 물어봤다. ”어디로 갈까?“ 할아버지가 뒤돌아보면 헬멧에 반사된 햇빛이 눈부셔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할아버지를 봤다. ”롤러코스터 길!“ 내가 그렇게 말하면 할아버지는 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침 해가 쏟아지는 산길에는 풀냄새가 가득했고, 할아버지의 바이크는 부아앙 속도를 높였다. 언덕을 넘어갈 땐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나는 손에 더 힘을 쥐고 할아버지의 등에 이마를 댔다. 속에서 무언가 살랑이는 느낌이 나서, 바람이 뺨을 스치고 가는 게 좋아서 그러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되살아나는, 내 이마를 감싸던 할아버지 품의 온기. 자꾸만 할아버지에게로 기울던 내 어린 몸. 할아버지가 새처럼 떠나간 자리에서 그 기억들이 남아 하얀 빛으로 부서진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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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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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bwlsq0624
    • 소설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몰입해서 잘 읽었습니다. 저는 뵌 적도 없는 나은님의 할아버지가 그리워질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다운 글이네요.. 할아버님께서 나은님의 따뜻한 기억과 아름다운 글로, 오래 오래 남아계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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