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이불 덮어드립니다

추워서 죽겠는 사람들을 위하여
글 입력 2020.10.2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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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하게 이불이 덮고 싶었던 적이 있다. 오고 가는 차 속에서도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는 침대 위에 고이 누워있는 이불속에서 마저도

 
추워서 죽겠는,
 
그런 나날들이 있었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이를 딱딱 부딪히게 하는 추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 어떤 극세사 이불이어도 추위를 가시게 하지 못했다.
 
사람을 덮어볼까. 나는 걸신들린 것처럼 게걸스럽게 사람을, 또 사랑을 찾았고 하루 정도 그들을 덮고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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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강을 바라보며 저 이불은 따뜻할까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새카만 밤하늘은 부드럽고 따뜻하게만 보였다. 금색 자수가 놓인 검은 이불 같았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포근하게 안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한강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마치 몸이 물로 가득 찬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움직이기가 싫었다. 끔찍한 무기력에 침잠해 있던 어느 날 나는 아주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어떤 열망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감에서 벗어나려 글을 썼다는 신경숙의 '외딴방' 속 구절을 깊이 생각하던 열일곱 무렵부턴가 아니, 어떻게 하면 작은 내가 세상을 비출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열여섯부턴가 아니, 그도 아니면 그 전으로 거슬러가 아주 어리고 외로웠던 독일 한인 마을 속 혼자가 더 익숙한 눈 찢어진 동양인으로 살 때부턴가.
 
그러니까,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대해서.
 
*
 
그날 밤 나는 나를 숨도 못 쉴 정도로 가득 채우고 있는 물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쿨럭, 쿨럭, 폐 끝까지 차올랐던 차가운 물들이 입으로 코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와 홀로 이불을 짰다. 활자로 된 이불이었다. 매일 밤 방으로 돌아가 쓸쓸히 켜진 스탠드 아래에서 펜을 들고 조금씩 활자로 짠 이불을 완성시켜갔다.
 
활자는 외로움과 우울과 그리움, 조소, 괴로움 혹은 사랑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주 더딘 일이었지만 손바닥 크기만 하던 이불은 제법 커져 포근하게 나를 감쌀 정도가 되었다.
 
좀 따뜻해지고 나니, 내가 추웠던 만큼 추운 사람들이 보였다. 사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차가운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어감의 ‘2020년’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끝부터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줄 이불을 원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불을 덮어줘야지. 포근하게 푹 잠들 수 있게 자장자장, 노래를 불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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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온몸을 때리며 쏟아지는 장맛비를 맞은 것처럼 세상에 흠씬 얻어 맞고 돌아온 하루, 당신도 추워서 죽겠다면, 나의 글들이 포근한 이불이 되어 당신을 덮어주면 좋겠다.
 
내 우울과 사랑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따뜻한 활자들이 당신을 가득히 덮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진정 따뜻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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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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