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론 없는 연극에 대한 결론 없는 리뷰 - 웃기는 어둠 [공연]

글 입력 2020.10.24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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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연극. 이해하기 어려운 연극이었다. 극을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고, 같이 관람한 친구와 극장에서 나오며 나눈 대화를 통해 그것이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친구와 나는 이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뭐 하나 명쾌하게 맞아 떨어지는 게 없었다. 어떤 의견을 내기도 곤란할 만큼 이 연극은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친구와 이 연극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보고자 했다.

 

“일단 내가 이해한 것들을 전부 말해볼게.” 몇 분 남짓 나는 친구에게 ‘처음엔 이렇게 시작했다.’, ‘그 캐릭터가 이런 말과 행동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면이 전환됐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이게 내가 이해한 것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야, 그건 이해한 게 아니라 그냥 본 것들이잖아!”

 

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네, 이건 다 그냥 내가 본 것들이네. 나 이해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라고 말하며. 그때는 정말 황당하고 우습다고 생각하며 넘겼던 대화인데, 리뷰를 쓰려는 지금 갑자기 저 대화가 떠오른다. 맞다. ‘웃기는 어둠’은, 나에게 ‘이해한 것’은 거의 남기지 않았고 ‘본 것’만 남겼다.

 

 

 

관람 당시 내가 본 것과 생각한 것들



연극은 한국 법정에 선 소말리아 해적의 변론으로 시작된다. 해적은 주얼리호를 침입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자신의 어렸을 적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친구와 함께 자신의 작은 배 ‘희망’을 타며 꾸었던 꿈, 해적이 되기까지의 과정, 주얼리호에 침입하게 된 간단한 이유 등을 말하고는 암전된다. 여기까지 나는 그의 이야기에 꽤 몰입했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두 상사’와 ‘라 하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정신 이상을 보이는 중령을 찾아내는 기밀 임무를 부여받고 밀림 속으로 여정을 떠난다. 그들은 여행 중 여러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잘 종합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옴니버스 형식과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 곳곳의 어둠을 폭로하고자 하는 연극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갑자기 두 상사가 라 하사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엥? 갑자기? 왜?’ 당시에는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저런 생각을 한 게 당연한 것 같다. 두 상사조차도 자신이 그러는 이유를 몰랐으니까.

 

갑자기 암전. 장면은 2020년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고, 글을 쓰려고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기나긴 독백을 하다가 아버지와 채소를 손질한다. 앞서 나온 모든 어둠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은 우습게도 허구일 뿐임을 표현하려는 걸까.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라 하사의 비명이 들리고 나는 극의 의도를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모든 게 맥락 없이 진행된다.

 

장면은 다시 두 상사와 라 하사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들은 양 중령을 찾아내는데, 양 중령은 방금 나온 작가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다. 그는 내가, 두 상사과 라 하사가, 그리고 관객 모두가 상상했던 것처럼 정신 이상자는 아닌 듯했다. 그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라 하사가 급기야 “초고에는 제가 없었죠”라는 대사를 뱉고 양 중령인지 작가인지 모를 그 남자가 라 하사의 등을 두드려 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갑자기 첫 장면에서 변론한 해적의 친구가 등장한다. 두 상사는 그에게 너는 여기에서 나오면 안 된다고 소리친다. 나는 이해를 포기한 상태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본다.

 

 

 

지금 드는 생각들


 

첫 번째로, ‘연극’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든다. 그저 ‘보고 나오기만 한’ 이 연극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극은 명확한 의미를 가져야만 할까, 연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등.

 

기존의 질서를 모두 어지럽힌 이 연극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연극은 내용과 구성에 대한 나의 모든 기대를 부숴버렸다. 하지만 애초에 그 기대는 너무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심지어는 무례한 것이지 않을까.

 

두 번째로, 허구와 재구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친구와의 대화 상황이나 나의 리뷰 속에서 나는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본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분명 나는 나에게 기억에 남는 장면, 의미나 알맹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만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모든 게 마찬가지다. 극에 등장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친구가 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누군가의 어릴 적 추억 얘기도. 모두 재구성된 것이다. 그것들을 허구라고 여길 수 있다면, 수많은 이야기의 과정들을 거치며 이 세상은 허구로 가득 차게 되는 것만 같다. 현실이나 실제 같은 것들은 사실 그 당시에만 존재하고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릴 생각 따윈 없다. ‘웃기는 어둠’이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연극’에게 결론과 메시지를 원했고, 지금까지 글을 써오며 나 역시도 글을 정돈하고 결론을 내려는 버릇이 들어버렸다. 나는 지금, 나의 규칙들을 모두 뒤엎은 리뷰를 쓰고 있다. 이해 불가능한 연극에 대한 반항심으로 작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이런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해방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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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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