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빠의 그레이 -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 마네킹이다 [패션]

글 입력 2020.10.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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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른 셔츠를 입고 버린다면 내 옷장에 남아있는 셔츠는 아마 10장 정도 될 듯하다. 어림잡아 40장 정도 있으니 계산이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옷을 좋아해서 하나둘 사던 게 어느새 이 정도로 많아졌다. 덕분에 친인척들이나 친구들의 반응이 크게 갈린다. 그때 아니면 언제 꾸며보겠냐며 그러려니 하는 사람도 있고, 그만 사고 돈 모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며, 나이가 들면 귀찮아진다거나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사람도 있다.

 

단언컨대 마지막 말을 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꾸밀 수 있는 나이 따위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나이에 따라 어울리는 옷이 다를 뿐이다.

 

 


아빠의 그레이. 그레 이 색이야


 

뉴발란스에서 더 뉴 그레이와 협업으로 신청자들의 아버지를 메이크 오버(Make Over), 즉 스타일링 해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등산복이나 셔츠만 즐겨 입는 보통의 우리네 아버지들과 비슷한 사람들의 사진이 게시됐고 사진들을 누르면 프로젝트를 통해서 달라진 스타일의 사진이 나타난다. 누군가의 아버지에게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 실례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은유보다는 직유를 좀 더 효과적으로 받아들인다. 채택된 아버지들은 흔한 동네 아저씨에서 세련되고 느낌 있는 중년으로 변모했다.

 

 

 

 

포마드 스타일로 한껏 올린 머리와 연륜에서 나오는 미소는 중후함과 인자함을 아낌없이 뿜었다. 젊은 우리 세대에서 유행하는 안경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버핏 코트나 라이더 재킷, 슬랙스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은 그 나이에서만 나오는 분위기가 덧씌워져 새로운 매력을 만들었다. 모두가 뉴발란스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빼고는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자신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할 수 있는 매력을 잘 살려내는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다. 옷이 날개라는 양날의 검과 같은 표현의 칼끝이 부정적인 것들을 잘라냈다. 옷 입는 스타일만 바꿨을 뿐인데도 중년의 매력이 이토록 강해지는 것이 그 결과다.


아빠의 그레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프로젝트지만 아버지들만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들도 달라질 수 있다. 아마 아버지들보다 더 다채롭게 달라질 것이다. 패션이 표출하는 매력은 나이에 따라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매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좀 더 성숙하고 농후한 매력으로 익어간다. 꾸밀 수 있는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나이에 따라 매력이 달라지듯 어울리는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이다.

 

 


꾸민다는 것



어렸을 때, 정확히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엄마가 주는 옷을 그대로 받아 입는 아이였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나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던 시기였다. 중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청소년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 잡지도 보고 연예인 사진도 보면서 패션을 배웠고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고자 노력했다. 내가 봐도 이상하게 입고 주변에서도 이상하다면서 욕먹던 시기를 지나서 점점 스타일을 잡아갈 때쯤부터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옷을 잘 입는다. 스타일이 좋다. 개성 있다. 나에게로 던지는 칭찬 덕분에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성격도 외향적인 측면이 조금씩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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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reestocks on Unsplash

 

 

칭찬이 고팠던 그 시기에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모습보다 남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모습을 더 추구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얼마 못 가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내가 마음에 드는 나의 모습을 찾는 것에 더 심취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균형을 찾는 법을 익혔다. 여전히 이런저런 스타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지만 상황에 따라서 자제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다. 내가 자라는 동안 내가 가진 매력도 함께 자랐음이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어울리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잘 어울리기도 하고 지금은 안 어울리는 것들이 그때는 잘 어울렸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패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현재의 내가 가진 매력을 알아내는 것이다.


10대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다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40의 혹은 50대의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다를 것도 분명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피해갈 수 없다. 내가 가진 매력도 시간에 점점 물들어가면서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울리는 스타일이나 옷이 한결같다면 옷 고르느라 고생할 이유도 없고 나를 꾸미는 재미도 없다. 매일 똑같은 것만 입으면 되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어제도 라면, 오늘도 라면, 내일도 라면, 10년 후에도 라면이면 라면 봉지 끝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게 뻔하다.

 

어제는 라면을 먹었다면 오늘은 비빔밥도 먹어줘야 세상 살아가는 게 조금이라도 덜 지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5살의 나에게는 라이더 재킷이 어울린다면 26살의 나에게는 코트가 어울리기도 해야 패션에도 재미가 있다. 어울리는 옷이 달라졌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패션은 나이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나이는 마네킹이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자기를 꾸미거나 할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동년배의 어른들을 볼 때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왜 저러고 다니냐는 질타를 많이 하셨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자란 탓인지 어렸을 때는 나도 어른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패션을 공부하면서 그런 생각이 잘못됐음을 배웠다. 한 가지 더 배운 사실은 패션에 있어서 나이라는 요소는 문제나 장애물이 아니라 마네킹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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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tevasin Nguyen on Unsplash

 

 

나이가 많다고 해서 옷을 사고, 화장하고, 머리를 만지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다. 나이에 따라서 그 나이에 가장 빛을 발하는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저 그런 스타일을 잘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 나이대의 내 모습을 가장 빛나게 해줄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패션의 맛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이 모두에게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반드시 좋아할 필요도 없다. 패션도 똑같다. 내가 패션을 좋아하면 그 재미를 느끼면 되고 아니라면 다른 재미를 찾으면 된다. 패션이라는 수단으로 나를 꾸미는 이유는 나의 아름다움을 가꿔서 내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함이지 남에게 맞춰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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