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픽사 표 잔소리

집은 집일 뿐이야, 피트 닥터 감독 <업>
글 입력 2020.10.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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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은 탁월한 오프닝으로 그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초반 약 15분의 오프닝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성인 관객의 적대감, 즉 '보러 와 앉긴 했지만 행여나 내 만원 남짓되는 돈과 두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어른들의 의심을 사르르 녹인다.

 

앞니 빠진 두 아이가 틀니를 끼우는 노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한다는 감동적인 로맨스는 남녀노소 따질 것 없이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고, 그렇게 녹아버린 관객은 한아름 탐스러운 풍선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순간 픽사가 정교하게 짜 놓은 영화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집이 전깃줄에 걸려서 떨어져 버리면, 혹은 너무 높이 올라가 녹아버리면 어떡하지 싶은 현실적인 걱정들은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의미를 잃는다. 그저 날아다니는 집을 타고 두 주인공과 함께 떠나 버리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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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평범하기 그지없을 그가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되었을 때,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다는 건 마치 젠가의 조각을 빼내듯 그이의 존재만 쏙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별했던 그는 당신의 삶 이곳저곳에도 자신의 특별함을 묻혀두었기에, 사랑했던 이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와 나누었던 당신의 모든 일상은 무너져 내리게 된다. 고작 몇 년을 오가는 연애도 그러하기 마련인데, 소꿉친구부터 삶의 마무리까지 아내와 일생을 함께 지내 온 할아버지는 어떻겠는가. 화려하고 다양한 넥타이를 자랑하던 칼은 아내 엘리를 잃은 뒤부터 잿빛 보타이만 맨다. 한번도 스스로 넥타이를 매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다정하게 매주던 아내가 곁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엘리와의 추억이 깃든 집은 칼에게 단순히 물체로서의, 또는 물질적인 의미를 지니는 대상이 아니다. 가끔 말을 걸고 고민을 털어놓는 등 동일시하는 모습으로 알 수 있듯이 칼에게 집은 엘리 그 자체이고,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자 추억을 의미한다. '엘리가 가고 싶어 했고 또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파라다이스 폭포에 집, 즉 엘리를 데려다 놓기'라는 모험의 목적도 들여다보면 사실 '집'에 있다.

 

오프닝 시퀀스의 탄탄한 감정선 덕에 칼이 왜 집을 포기할 수 없는지, 왜 케빈 대신 불타는 집을 구하러 달려갔는지 관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모두 각자만의 소중한 '집'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집이 망가질 때마다 속상한 마음에 낸 칼의 모진 역정보다는 그 상실감에 관객은 더 마음이 쓰이고, 제 모험의 목적이었던 뱃지 벨트까지 내던지며 혼자서라도 케빈을 구하러 가겠다는 러셀을 보며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다.

 

혼자가 된 칼은 마침내 폭포에 도착해 집을 데려다 놓겠다는 목적을 이룬다. 그러나 집의 내부, 즉 본질은 이미 망가졌고 남은 것은 모험을 떠나기 전 느꼈던 공허함 뿐이다. 소중한 것의 상실로 인해 삶의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이제 당신만의 새로운 모험을 떠나.' <업>은 이 한마디를 전하고자 장장 한 시간 반을 달려왔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는 새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일평생 아내와 앉았던 의자, 아내의 사진이 담긴 액자, 끝내는 그토록 아끼던 집까지 하늘 밑으로 던져 버리는 칼 할아버지. 구름 밑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집과 작별하는 칼의 표정에서 관객은 가슴이 미어진다. 저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까. 그러나 영화는 이어지는 결말을 통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은 좁지 않고 어둡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집은 집일 뿐, 칼은 아내를 둘만의 폭포에 남겨둔 채 돌아옴으로써 잃었던 가족을 새로이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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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망가져 버린 사람이 삶을 새로이 짓는 이야기, 그 과정에 스며드는 순수함과 우정의 작용. 모든 픽사 애니메이션이 그렇듯 <업>은 아이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날아가는 풍선 집에 눈물을 훔치는 엄마 아빠를 보며 아이들은 의아하겠지만 말이다. 나에게도 언젠가 내 집을 떠나보내며 비행선으로 갈아 탈 용기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런 선택으로 인생은 더 황홀해질 것이라 믿으며.

 

 



[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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