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도 나와 같은 행복을 느끼시나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0.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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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나는 부모님을 따라 내키지 않던 음악회에 다녀왔다. 정확히는 끌려갔다. 문화적 환경이 열악하던 지방이었기에 한 번이라도 더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한다는 부모님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렇게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자선음악회는 클래식에 치를 떨며 관심 없는 학생을 관객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긴장한 채 앉아있었을 뿐 공교롭게도 그날의 음악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생소했던 음악은 내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했는데,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의구심이 들었다. 내게는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감내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뭐가 이렇게 좋을까.


어렸을 때 어떻게 문화와 접했었는지 반추해봤다. 사교육이라고는 남들 다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 그만둔 것뿐인지라 결국 학교만 남았다. 12년을 통틀어 예체능 과목이 없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만큼 생각보다 수업 횟수는 많았다. 심지어 전공 선생님들의 수업이었으며 최소 주 1회 이상의 수업이 있었다. 그러나 왜 결핍을 느낄까.


무엇보다 대부분의 학생이 관심이 없었다. 다수의 문제는 반드시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이를 피교육자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모든 학교가 그렇진 않겠지만 값싼 악기들과 기물들로 체험 몇 번에 끝나는 수업들이 대부분이었다. 종래에는 수능 시험을 위해 다른 과목을 공부한답시고 내팽개치기 부지기수였다. 돌이켜보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게 끝이었다. 몇 번의 간헐적인 의욕 없는 체험들.

 

수도권 대학에 입학한 이후 음악의 세계라는 교양 과목을 수강했다. 과목을 선택한 이유의 대부분은 출석 점수가 없고 레포트로 대체할 수 있어서였다. 여러 음악의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라 잠시 생각했으나 온통 클래식 이론만 가득하던 수업 덕에 흥미가 뚝 떨어졌다. 시험을 대체한 레포트를 위해 시립 교향악단 이상의 정기연주회를 관람해야 했고 마감 일정에 남은 연주회는 단 하나뿐이었다.


“공연 인증 사진 한 장과 함께 ‘좋았다’ 세 글자여도 좋으니 감상평을 작성해오세요.”


무슨 의미가 있나 구시렁대며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연주회를 제 발로 찾아갔다. 당시 공연은 KBS교향악단의 700회 정기연주회였다. 세상 난해할 것 같던 말러의 2번 교향곡은 클래식에 대해 무지한 나를 감동의 파도로 쓸어갔다. 도입부의 땅을 울리는 더블베이스부터 하늘이 열리듯 성스러운 합창까지. 다른 장르에서 이렇게 압도당한 적은 없었기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안에서 말라가던 문화가 실로 '부활'하게 된 터닝포인트였다.


그렇게 청소년이라는 특권 아래 수많은 공연들을 찾기 시작했고, 클래식이라면 치를 떨던 아이는 이내 그 진입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족히 15년은 넘게 힙합만 들었던 아이는 클래식을 시작으로 문화 예술에 빠지게 되었고, 수도권을 헤집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공연을 모두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에 이르렀다. 무뎌진 감성과 감정을 채운다는 명분 하에 모든 문화를 향유하고자 오직 공연을 위한 세계 여행을 떠났다. 나아가 향유함을 넘어 문화의 중심에 서기 위한 꿈을 품었다. 연극을 스스로의 손으로 올릴 때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며 연출을 업으로 삼기로 다짐했다.


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이렇듯 스스로 확장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클래식으로 시작해서 연극과 발레, 영화와 각종 전시회, 절대 스스로 하지 않던 독서와 글쓰기까지. 이제는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좋은 문화를 체험하고 향유해본 경험이다.

 

그 누가 어떠한 외부 자극도 없이 스스로 공연장과 전시회를 찾아다닐 수 있을까. 가정이든, 학교든, 문화 그 자체든 간에 문화예술은 명백히 경험을 위한 교육의 대상이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4과라는 교육이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음악이었다. 학교를 가고 싶지 않다고 가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음악 역시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웠다. 문화도 그렇게 배워야만 즐길 수 있다. 체계적인 교육의 일부분으로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교육이 선제돼야 한다.


그렇기에 매번 같은 아쉬움이 밀려들어온다. 내가 몇 년만 더 일찍이 행복을 느낄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교 교육만으로도 예술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찾아 나섰다면 어땠을까. 그런 기회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다면 어땠을까. 나와 같은 행복을 느끼고,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다. 아니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의 인생에 행복과, 세상에 사랑이 조금이나마 늘어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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