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계속 되어야하는 이유, 연극 '플레이 위드 햄릿'

글 입력 2020.10.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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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읽힐 만큼 인정 받는 책.

 

한 세대를 지나 다음 세대에 넘겨주면서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꽤나 낭만적이다. 인류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많은 이야기를 남겨 왔고 그 중 몇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고전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에서 고전의 재미를 찾는다. 그렇기에 긴 시간에 걸쳐 다시, 또 다시 읽는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가 살아온 방식처럼 말이다.

 

‘고전’으로서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작품은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햄릿>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햄릿은 수많은 버전으로 전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햄릿을 소재로 한 공연이 매년 쏟아질 정도로 톡톡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2020년의 9월에도, 새로운 햄릿이 무대에 올랐다.

 

 

 

1 Adieu, Adieu, Remember Me


 

붉은 커튼이 쳐진 어두운 다락방을 배경으로 4명의 사람이 서있다. 그들의 이름은 햄릿. 갑자기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한 햄릿이 결국 수화기를 든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자신을 이미 죽은 햄릿의 아버지라고 말하며 햄릿의 삼촌이 자신을 살해했다고 밝힌다. 만약 니가 내 아들이라면 복수를 해달라며 마지막 말을 남긴다.

 

Adieu, Adieu, Remember Me.

 

뜻밖의 진실을 남기고 끊어진 전화. 햄릿은 혼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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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플레이 위드 햄릿>(20.09.11-20.09.24, 연우소극장)은 햄릿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극단 플레이 위드와 연우무대가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햄릿의 내면이 자아분열 되었다고 설정하고, 4명의 배우가 햄릿을 연기한다. 원작의 기본적인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라가지만 독특한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간다.

 

원작의 아버지의 유령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연출했다. 이미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려온다. 원작에서 직접 유령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던 것과 달리 이 목소리는 오직 햄릿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햄릿은 더욱 혼란스럽다. 전화의 목소리가 정말 아버지인지, 악마의 목소리는 아닐까?

 

햄릿이 살인의 증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은 4명의 배우들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연인 오필리어와 어머니 거트루드의 모자와 클로어디스 왕의 지팡이 등 간단한 소품만으로 배역을 표현한다. 오필리어를 떠났던 햄릿이 오필리어가 되어 햄릿이 퍼붓는 모욕의 말을 듣기도 하고, 아버지 살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햄릿이 살해용의자인 삼촌 클로어디스 왕이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들 속 햄릿의 인생은 계속 서글퍼져 간다.

 

극단 특유의 위트 있는 각색은 극중극 <쥐덫>에서 빛을 발한다. 햄릿은 클로어디스 왕이 선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닌지 떠보기 위해 <쥐덫>을 무대에 올린다. 진지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오페라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낸다. 오필리어에게 이별을 고하고 혼자 남은 햄릿의 속마음을 대변하며 Elton John의 를 부를 때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쏘쌛, 쏘쌛, 잇츠 어 쌛쌛 시츄레이션- 딱딱한 발음으로 불협화음을 내는 배우들을 보며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러한 연출은 햄릿이라는 극을 신선하고 과감하게 풀어가려고 한 시도이다.

 

 

 

2 호레이쇼라는 이름의 관객 : 햄릿은 살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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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햄릿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 호레이쇼다. 이 연극의 호레이쇼는 무대 밖에 존재한다. 햄릿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고 그 누구보다 가까이 마주할 호레이쇼. 바로 관객의 몫이다. 관객들이 연극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햄릿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하는 때이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 죽음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불확실하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일 수도 있는데, 잠에 들면 꿈을 꾸고 그 꿈에 악몽이 찾아올 수도 있다. 불확실한 것은 두렵다. 변화도 두렵다. 햄릿은 그렇기 때문에 그저 눈 앞에 있는 삶을 살아내 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죽음도 알 수 없기에 삶을 참고 견디고 있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햄릿은 왕자였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모든 상황은 변했다. 어머니는 삼촌과 결혼을 했고 삼촌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 곧 햄릿의 차례가 아닐까? 복수를 하건 하지 않건 햄릿은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 이 상황이 버겁기만 하다.

 

햄릿은 관객에게 묻는다. “내가 살아야 할까? 아니면 죽어야 할까?”

관객이 손으로 투표를 한다. 햄릿이 대답한다. “살아야 한다고?”

 

햄릿은 살기로 한다.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판을 짜기 시작한다. 그러나 햄릿은 점점 불행해져 간다. 어머니와 싸우고,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를 의도치 않게 죽인다. 삼촌이 햄릿을 죽이려고 영국에 보내고, 애인이었던 오필리어는 자살한다. 우여곡절 끝에 덴마크로 돌아온 햄릿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와의 목숨을 건 싸움이다.

 

햄릿은 다시 호레이쇼를 마주한다. 한 명, 한 명 호레이쇼의 눈을 바라보며 객석 앞에 각각 앉아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는다. 결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사실 난 그냥 행복하고 싶었어, 하고. 햄릿의 괴로움에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복수는 성공했다. 그러나 햄릿 주위에 있는 모두는 죽었고, 햄릿마저 죽는다.


 

 

3 지금, 여기, 그리고 햄릿


 

호레이쇼로서 무대 안에 있는 햄릿과 눈을 마주하고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관객은 절대 햄릿을 잊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살아야 한다’를 선택한다. 햄릿은 살아야 한다. 살아야 했다. 그러나 관객이 마지막에 마주하는 것은 햄릿의 죽음이다. 햄릿은 복수를 했어야 했을까?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살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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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붉은 색으로 겹겹이 쳐진 무대 위의 커튼이 보인다. 미치광이를 연기하는 햄릿에게 연극 무대였던 곳, 죽음과 살인으로 얼룩질 햄릿의 운명이기도 했던 그 곳은 마침내 이야기가 끝난 뒤 현실의 무대로 돌아온다. 햄릿의 실존적인 고뇌가 관객에게로 돌아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야 할까? 변화가 두려워 그저 살아내고만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햄릿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만큼 많이 읽히고, 많이 알려져 있다. 지금 햄릿이 공연된다면 색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고전의 힘은 살리되 고루해서는 안된다. <플레이 위드 햄릿>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공연은 위트 있는 연출로 가득하며 햄릿의 절친한 친구였던 관객은 햄릿을 적극적으로 기억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햄릿은 죽어가며 자신의 인생을 노래로 회고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애인도 친구도 모두 잃었다 아 아 아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아름다울 줄 알았던

나의 젊은 날은 피지 못한 인생 참 꽃 같네

미련한 내 인생을 옆에서 훑어본 내 친구여

각박한 세상에 너라도 날 기억해주오

 

 

햄릿의 아버지도, 햄릿도 이들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여섯 번의 공연을 보았다. 마지막 결투 장면을 젬베로 표현한 것을 제일 좋아했다. 심장 박동처럼 몸을 울리는 그 소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호레이쇼가 남아 햄릿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것처럼 호레이쇼로 살았던 그 울림이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살아있을 햄릿을 남겼다.

 

Adieu, Adieu, Remember Hamlet.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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