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시각예술]

국립현대미술관, “모두”를 재정의하다
글 입력 2020.10.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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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오후 시간대에 방문해서 그런지 티켓 구매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 찾은 만큼 마음은 크게 부풀어 있었다. 보러 간 전시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미술관과 동물의 조합이라니! 반려견 동반 식당부터 카페까지 반려견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미술관과 동물의 조합은 좀처럼 떠올리기 힘든 아이디어였다.

 

게다가 그 전시가 열리는 곳이 국립현대미술관이라니, 더욱 이번 전시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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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7전시관과 마당 등을 사용했는데, 먼저 야외 전시에서는 도그 어질리티 경기를 연상시키는 여러 오브제가 놓여있었다. 색색깔의 구조물부터, 짚으로 만든 미로 모양의 길까지 갖춰져 있어 반려견과 호흡을 맞춰 즐길 수 있는 전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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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앞에서는 반려견의 대변을 처리할 수 있는 봉투도 나누어주고 있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준비한 전시라는 것을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낮은 높이의 아기자기한 가구들이 보였다. 하얀색과 파란색이 번갈아가며 꾸며진 이 세트는 바로 강아지 스케일의 생활가구로 채워진 거실이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누울 만한 크기의 침대부터, 좁은 소파와 거의 바닥 높이에 걸린 거울까지 모든 것이 강아지 위주였다. 이 전시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인간을 위한 전시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는 반려견을 위한 전시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모든 작품들도 강아지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흥미로웠다. 전시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되는 날이 오다니! 전시장의 의자마저 강아지의 키에 맞춰져 있어 인간이 앉기에는 불편할 정도였다.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공간에서 인간이 부차적인 존재가 되는 그 낯선 감각이 매우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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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트에 노란색과 파란색이 쓰인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 또한 찾아보니 강아지의 시선을 고려한 결과물이었다. 흔히 색맹으로 알고 있는 강아지는 사실 부분색맹으로,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할 뿐 파란색과 노란색은 볼 수 있다고 한다. 강아지의 생체구조와 습성 등을 고려해 전시를 꾸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가는 길에 읽은 전시설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자 대표적인 공공장소인 미술관의 실질적인 손님으로 개들을 초대하면서 현대사회의 반려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의 타자들에 대한 태도, 미술관이 담보하는 공공성의 범위 그리고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 등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타이틀 아래, 미술관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수년간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역시 그 연속선상에서 ‘모두’의 범위를 고민해볼 것입니다. … 반려동물이 공적 장소에서도 가족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철저히 인간 위주로 구축된 미술관이 과연 타자와 비인간(non-human)을 고려할 수 있는지를 실험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이번 전시가 현 국립현대미술관의 일관된 방향성을 무엇보다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모전 프로젝트해시태그 2020에 서울퀴어콜렉티브가 선정된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보수적일 것만 같은 “국립” 미술관에서 퀴어 콘텐츠를 전시함으로써 소수자들이 직면하는 타자성과 소외감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그들에게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 동물에게까지 미술관의 문을 열어줌으로써 그 방향성을 더욱 공고화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었다. 강아지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일 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지향점을 잘 녹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전시라 본다.


 

[김예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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