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 2003

해리성 정체성(이하 다중인격)을 다루는 영화들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중 오늘 기고할 영화는 ‘아이덴티티’이다.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가 3명의 소녀를 납치하는 영화 ‘23아이덴티티’와는 다른 영화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상황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한가지는 폭우가 심하게 내리는 밤 외딴 모텔이 배경이다. 이곳에는 폭우로 발이 묶인 총 11명의 사람이 모인다. 리무진 운전사와 그가 태우고 가던 여배우, 경찰과 그가 호송하던 살인범, 매춘부와 신혼부부, 엄마 인격인 패리스와 어린이 티모시, 모텔 주인까지.
빌리 밀리건

어떻게 되었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며 추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나는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대사로 끝이 난다. 현실에서도 영화처럼 다중인격을 앓는 범죄자가 존재하며 ‘빌리 밀리건’이 대표적이다. 사진에 보이는 그가 여자 3명을 강간한 범죄자이다, 하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24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생김새, 국적, 학식, 나이, 성별 등 모든 점이 다른 독립체들이다. 물론 처음에는 모두가 ‘참 연기를 잘한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범죄자가 안지증(동공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병)을 앓고 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인격들을 조사할 때 그러한 증세는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다고 한다. 그러다 범죄자 인격이 나오면서 자백을 할 때 눈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즉 그들은 하나의 육체에 있는 독립체들이다.
또한, 그들은 각자 행동하기 때문에 다른 인격들과의 대화가 없다면 기억도 공유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빌리 밀리건의 본래 인격도 호출된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7년 전 유서를 쓰고 뛰어내리는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래서 호출이 되자마자 “제가 왜 살아있죠?”라는 말을 했다. 몇 년간 다른 인격들이 육체를 지배한 것이다. 이를 참작하여 “빌리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 정신치료감호 10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 후 그는 정신병원에서 10년을 치료한 결과 완치가 되었다.
그가 다중인격을 앓을 때 인격이 육체를 지배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운데 빛이 나는 자리에 앉으면 그 인격이 육체의 주인이 된다. 그때 다른 자아들은 쉬거나 자거나 개인행동을 하고 있다.” 이 사건과 판결은 한국에서도 화제성을 모았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심신미약’이라는 단어는 자주 볼 수 있는 단어이다. 심신 미약이란 심신장애로 인하여 시비를 변별하고 또 그 변별 때문에 행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하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인성검사, 성격평가, 질문지 등의 다양한 검사를 하고 의사 7명과 담당 공무원 2명으로 구성된 정신 감정 진료 심의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신감성서가 작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선 범죄자가 술을 먹으면 심신미약으로 연결되는 판결이 발생하고 있다. 처벌보다는 교화에 의의를 두는 한국에서 심신미약이 판결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면, 빌리밀리건과같은 사례에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