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는 '거의 하나'인 두 세계 [문학]

임현과 김유나의 소설.
글 입력 2020.10.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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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의 단편 소설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나’가 오명조라는 학생과 관련된 일련의 일과 수업 중 차별적인 소지의 발언 때문에 발생한 A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 제기, 이 두 가지 일로 인해 점점 혼란스러운 내면에 빠져드는 과정을 복기와 시간의 경과를 통해 보여준다.

 

과민할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나’의 행동과는 달리 앞서 언급한 주변의 일들이 결코 그를 관망할 수 있는 위치에 남겨놓지 않는다.

 

의례적인 술자리를 마치고 가는 방향이 비슷한 오명조와 택시를 탄 ‘나’는 명조의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고민에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그럴만한 말들을 골라 건넨다.


 
“나도 그래요. 나랑 너무 닮은 사람들을 보면 불편해. 불편하지, 당연히”
 


이 말은 이후 오명조가 본인의 고백을 거절한 상대에게 인용하고, 상대의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나’가 위로의 차원에서 던진 말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모멸로서 작용한 것이다.


 

“누나, 누나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요. 우리가 너무 닮아서예요. 누나는 그게 싫은 거예요.”

 


이 사실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진실의 반대말이 주로 거짓이나 가짜라고 배워왔는데, 살면서 오히려 무지에 더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종종 진실을 알고 있다고 오해할 때가 많았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은 대체로 무언가를 더 알게 되었을 때였으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돌아가는 상황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을 공들여 정리한 적이 있었다.”

 


이후 A 교수의 발언에 대한 학생회의 항의 방문에서 동료 교수가 학생회 일원 중 한 명이었던 오명조를 폭행한 셈이 돼버린 사건을 거치며 ‘나’는 아무도 그에게 발언의 의무나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불안정한 마음으로 그 일을 바라보고 있다.

 

타인이 보기에는 외따로 떨어진 위치였겠으나 ‘나’는 여전히 심리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느낌과 모종의 의무를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입장문 같기도 하고, 변명 같기도 한 어떤 글을 공들여 쓴다. 하지만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에 앞서 먼저 읽어준 그의 아내 연재는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해? 당신은 당신이 뭐 대단한 일 하는 줄 알지? 당신은 늘 옳고, 당신이 제일 불쌍하지? 근데 남들은 이거 보면 웃어. 웃는다니까. 당신이 뭔데 그래. 뭔데 이런 말을 해.”
 


자신의 부끄러움이나 부채감을 견뎌내기 위해 결백함을 주장하고 그로써 포즈를 취하는 ‘나’의 모습. 마치 어떤 농담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그 과정에 또 다른 거짓과 위악이 겹치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진 일이지만(“최근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명조를 생각한 일이 있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올가미의 기억이 ‘나’에게 남아있다.

 

‘나’가 존재한 곳과 그 일들이 벌어진 곳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다른 세계였고 스스로에게는 ‘거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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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비신인문학상 수상자 김유나의 [이름 없는 마음]은 동생 현권에 대한 애정과 책임에 가로놓여있는 ‘나’(누나)의 마음이 촘촘한 인물과 행위로 엮여있다.

 

시종 나의 누나를 떠올리며 읽었는데, 현권이 누나가 사준 옷가지를 그대로 놓아두고 쓰레기봉투에 넣어둔 자신의 패딩을 걸치고 나간 후 남긴 문자와 함께 소설의 마지막 몇 문장은 ‘이름 없는 마음’이 어째서 여념 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지 단단하게 설명해 준다. 눈물이 앉았다 갔고,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망가진 배열과 암호 같은 띄어쓰기 때문에 한문장 한문장을 어렵사리 읽는 도중 (…) 알 수 없는 마음이 일었다. 이 마음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알 것도 같았고, 모를 것도 같았다. 빨간색 점퍼를 입고 걸어가다 멈춰서 메시지를 보냈을 현권의 뒷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굽은 어깨로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며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현권의 마음. 그 마음만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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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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