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짧게 잘 쓰는 법 - 언어를 예민하게 지각하기

글쓰기는 나의 세계를 언어로 바꾸는 일
글 입력 2020.10.1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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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을 어떻게 떠올려야 좋을지 고민이 많다. 7개월 전 무작정 에세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나 쓰면 쓸수록 내가 그렇게 흥미 있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러면 나는 아래 항목을 생각한다.

 

 

1. 내가 배운 것

2. 남들이 자주 말해서 사실이라고 믿게 된 것

3. 미세하게 느끼는 것

4. 모르는 것

5. 경험으로 배운 것

 

 

갑자기 나는 말할 거리가 하나둘 생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알아갑니다. 기억하세요. 특히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 이 목록을 되새기길 바랍니다."

 

글쓰기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타인에게 다채롭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작가의 말처럼 나의 세계를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이상한 글쓰기 훈련을 받았다. 글쓰기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전문성을 띠고 어려워야 하며, 문장은 길면 길수록 좋다고 말이다.

 

책의 제목이 『짧게 잘 쓰는 법』인 만큼 작가는 짧은 문장으로도 영리하고 흥미롭고, 치밀하게 생각을 펼칠 수 있다고 말한다.

 

짧은 문장의 장점은 이렇다. 짧은 문장은 힘을 가지고 있다. 짧게 쓰면 주어와 동사가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해진다. 접속어가 필요 없다. 문장의 의미가 뚜렷해져 내용을 파악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상상할 힘을 준다.

 

문장을 짧게 유지하는 방법 하나는 되도록 문장 사이의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다. 문장을 마치는 온점과 다음 문장을 시작하는 단어 사이의 공간이 아니라 온점과 다음 문장의 주어 사이의 공간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그런, 그, 이, 저 같은 주어를 꾸며주는 수식어는 불필요하게 남발하는 단어다.

 

단문을 쓰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단어를 모두 없애야 한다. 눈에 띄든 아니든 문장에 없어도 되는 단어를 찾아본 뒤 단어를 하나씩 지우면서 무엇을 잃거나 얻게 되는지 확인해야만 꼭 필요한 단어를 결정할 수 있다.

 

우리의 문장이 길어지는 이유는 논리 전개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강박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마법과도 같은 진실을 부정한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항상, 그리고 즉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진실 말입니다. 문장의 틈새는 때로는 호흡을 가다듬는 기능을 하고 때로는 여운을 주는 여백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나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고 어디에서든 끝낼 수 있습니다. 단 하나로 정해진 순서란 없습니다."

- p.42

 

 

문학 수업에서 기-승-전-결이라는 구조를 배울 때 어디가 승이고 전이고 결인지 모르겠는데 외우라고 하니 달달 외웠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본론 두 장을 말하기 위해 서론 세 장을 늘어놓아야 했던 점이다. 글은 마지막에 밝혀질 의미를 통해 가치가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스승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의미가 드러나는 마지막의 '요점'으로 독자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가 아닙니다. 잘 쓴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중요하고 즐겁습니다."
 

- p.42

 

 

우리가 긴 문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글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다. 독자가 단락 사이에서 길을 잃을 것이라는 의심에서 접속어를 쓰고,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면 독자의 이해도 멈출 것이라는 의심에서 문장을 길게 늘어놓는다.

 

작가의 나태와 태만에서도 생긴다. 정말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몇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표현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손에 익은 단어들을 한 문장에 욱여넣고 그럴싸한 접속어로 연결해 나간다. 저절로 나오는 문장, 저절로 튀어나온 주체, 저절로 잡힌 구조는 모두 익숙함에서 오고 익숙함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에서 출발한다.

 

글은 작가의 선택 끝에 남은 결과이다. 짧게 잘 쓰는 건 내가 쓰는 단어와 문장을 얼마나 예민하게 지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나의 세계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하려는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적재적소에 맞게 단어를 사용해야 함을 깨닫는다. 나는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이 글을 내놓는다.

 

짧게잘쓰는법_226.jpg

 

지은이: 벌린 클링켄보그(Verlyn Klinkenborg)

 

<뉴욕타임스>편집위원. 뉴욕주 북부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관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모아 『전원생활The Rural Life』과 『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More Scenes from the Rural Life』을 출간했다. 그 외 지은 책으로 『건초 만들기Making Hay』 『마지막 좋은 때The Last Fine Time』 『티모시; 가련한 거북이에 관한 기록Timothy; or, Notes of an Abject Reptile』 등이 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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