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유괴방식과 Author - '오트 쿠튀르' [도서]

글 입력 2020.10.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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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의 시집 『오트 쿠튀르』는 관계를 알 수 없는 상황과 말들의 연속이다.

 

시인은 그 낯섦을 아침으로 예를 들었다. “아침과 내일 아침은 공통점이 있다. 당신은 이게 무슨 말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무슨 설명을 하지 않아도.(「켄과 경험비판」)” 그러나 그 아침에서 시인은 다시 새로운 의미를 포착한다.

 

만약 아침에 길을 걷다가 앞에서 걷던 사람이 깃털 하나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해보자. 「켄과 경험비판」 속 화자처럼, 그 깃털을 오리나 거위의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그 깃털은 자세히 보니 쇠백로의 것이었다. 그러나 쇠백로는 이미 천 년 전에 사라진 조류였다. 그러나 시집 『오트 쿠튀르』에서 이는 신기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인이 “오늘 해줄 이야기는 이 깃털의 나이보다 더 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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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괴방식과 Author」에서는 알 수 없는 단어들과 관계가 등장한다. 치과를 가지 않는 네온사인. 네온사인에는 이빨이 없어 치과를 갈 수 없다며. 1에 등장했던 치과와 네온사인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진 듯 하다가 다시 4에서 등장한다.

 

 

충치가 늘면 네온사인이 아프고

창문이 터지고

턱이 붓고

피도 날 테고

할 말도 못 하고

먹을 것도 못 먹고

자잘한 글자를 가꾸듯이 

 

 

낯선 이야기는 시가 끝날 때까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what”은 다시 “quoi”, “что”로. 같은 의미지만 그저 다른 나라의 언어일 뿐인 것으로 바뀐다.

 

“달고나/음식 쓰레기/오바이트”와 같은 단어들이 나열된다. 얼핏 보면 기이한 말들의 연속이다. 달고나와 같은 음식은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도로 뱉으면 오바이트가 된다.

 

마찬가지로 『오트 쿠튀르』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낯선 시어로 등장한다. 문어를 보며 거식증을 앓고 있는 주체가 문어 빨판을 혐오스러워 하고(「들판위의 챔피언」), 배즙을 동생과 누나의 관계에서 배즙은 관계의 분비물을 은유하거나(「현대성」), 캐비넷 안에 들어가 목숨을 끊는 이야기에서 사물함을 파인애플 껍데기로 상징한다.(「파인애플에 대한 리뷰」) 관계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기이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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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유괴방식과 Author」 속 인물 관계는 어떨까. 화자와 고모가 있다. 명동의 밤 12시가 되면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이 꺼진다. 그러나 불이 꺼지고 나서야 화자는 일할 시간이 되었다. 고모는 섞어찌개 골목에서 취한 손님들에게 돈을 벌었다. 화자에게 고모는 그저 ‘고모’이지만, 고모는 종종 ‘루비, 다이아, 영희, 큰엄마’가 되었다.

 

고모는 화자를 ‘새끼반지’라고 부른다. 화자는 아시아인, 유럽인, 캐나다인에게 호객행위를 하며 손님을 모으고 그들을 고모에게 넘긴다. 그 대가로 돈을 받았지만, 책 한 권도 살 수 없는 값일 뿐이다. 고모는 취한 손님들의 호주머니에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을 남겨두고 돈을 착취한다. 그저 손님의 가방에 성매매 번호를 남겨둘 뿐이다. 고모는 화자가 손님을 모으는 능력이 있다며 자신과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한다. ‘새끼반지’는 역시 똑똑하다며.

 

우리는 「어떤 유괴방식과 Author」를 읽을수록 이들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그들은 과연 실제 친척 관계인지, 그저 고모와 새끼반지라 불리는 관계인지. 그들의 유대감 보다는, 그저 ‘손님을 낚아채는 능력이 있다’라는 평가를 내릴 만큼의 관계일 뿐일지도. 해석과 예측은 점점 불명확해진다.

 

「현대성」에서 남매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누나는 모르는 남자에게 맞고, 동생은 나무속에 들어가 누나를 관찰한다. 남매는 관계를 맺다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으로 돌아와 배즙 포장하는 일을 이어간다. 상식과 맞지 않는 상황에서 마치 일상적인 것처럼 이어지는 시는 우리를 끊임없이 교란시킨다. 이는 「반인류를 향한 태양과 파동과 극시」에서 폭발한다.

 

처음에는 파편적으로 분절된 이야기 같다. 청설모와 자전거의 대화, 모직코트, 아버지는 지렁이, 빗줄기 등의 대화는 평범한 인물들도 아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당혹스러울 만큼 근엄하고 관념적이다. 그러나 반인류가 인류를 향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파편적인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한다.

 

언어는 우리의 세상을 만든다. 『오트 쿠튀르』에서 우리는 언어의 교란을 경험하며 혼란스러워진다. 일상과 맞지 않는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세상은 어지러워지다가도 다시 시 속의 장소가 넓어진다. 시인은 “언어들이 무엇인가를 끌고 갈 거라는 오해에서 비롯”(「켄과 경험비판」)된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그 오해를 넘어 새로이 무한으로 넓어지는 시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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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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