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반도'가 새롭게 그려냈던 상업 영화 속 '여성과 아이' 캐릭터 [영화]

글 입력 2020.10.0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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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영화를 관람하고, 실제로 GV도 직접 보고나서 얻게 된 지식들과 제 의견을 합쳐서 작성하였습니다.

 

 

 

1. K-좀비의 재등장! 부산행 속편 영화 <반도>


 

4년 전, 국내 최초 ‘좀비’ 영화 <부산행>의 개봉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k-좀비’ 열풍을 일으키며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가 천만을 돌파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2020년 7월, 부산행의 4년 뒤를 그려낸 영화 <반도>가 개봉했다. 부산행과 달리 이미 폐허가 된 땅으로 돌아간 주인공 ‘정석’이 반도 생존자인 ‘민정’과 그 가족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하여 새로운 희망을 찾는 여정을 그린 영화 <반도>는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조금 달랐다. 먼저, 기차 안에서 반도 전체적으로 공간이 확장되었다. 또한, 갑작스럽게 좀비를 맞이한 상황이 아닌, 이미 그 상황에 익숙해진 생존자 집단의 희망을 저버리고 야만적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그럼에도 희망을 갈구하는 모습들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해야하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이 영화는 <부산행>처럼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흥행을 이루진 못했지만,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극장 속에서 손익분기점을 충분히 넘겼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멈춰 있던 영화 시장을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영화로서 역할을 해내면서 글로벌한 흥행에 성공했다. <반도>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좀비’ 장르에, ‘아포칼립스’ 배경,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문화예술계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어줬다는 영화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들이 기존 상업영화들의 ‘여성과 아이’ 캐릭터와 사뭇 다른 방식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2. <반도>의 “문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는 아이들”


 

<반도> 연출자 연상호 감독은 ‘덤프트럭을 몰면서 좀비를 쓸어내는 아이와, RC카를 조종하면서 좀비를 따돌리는 아이’의 모습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간 많은 상업영화 뿐만 아니라, 대부분 미디어는 아이들을 어른이 보호해주어야 하는 ‘약자’로 그렸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어른의 각성 계기로 만들어주는 부차적인 도구로서 활용되거나, 보호해야 하는 아이의 존재를 영화 전개의 시작으로 그리거나, 아예 어른의 보호 아래에서 옆에 있는 존재로 관객에게 중간 중간 ‘귀여움’을 선사하는 역할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반도>는 시나리오 구상부터가 ‘아이’들이 ‘좀비’를 각자의 방식대로 몰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인지, 두 여자 아이들은 등장부터 어른의 도움 없이 직접 ‘좀비’라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데다가 오히려 반도에 돌아와서 위기에 처한 남성 주인공 ‘정석’을 구해주고, 엄마인 ‘민정’을 나서서 도와주기까지 한다. 두 소녀의 ‘운전’과 ‘RC카 조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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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연상호 감독은 영화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부산행>에 ‘마동석(상화 역)’이 있다면 <반도>에는 ‘이레(준이 역)’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레가 연기한 ‘준이’ 캐릭터의 전투력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10대 청소년으로 보이는 ‘준이’의 좀비를 완전히 쓸어버리는 카 액션이 이 영화에서 15~20분동안 진행될 정도로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다른 주인공들을 위험에서 구해주는 역할을 한 사람이 건장한 남자 어른이 아닌, 어린 소녀들이라는 점은, 그리고 그들의 액션이 ‘반도를 탈출하는 여정’이라는 주요 스토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기존 상업영화 진행 방식을 비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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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도> 속 “여성 캐릭터의 활약”


 

1) 초반부 여성 택시 운전사

영화 <반도>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는 홍콩에서 난민으로 지내고 있던 ‘정석’을 포함한 4명이 돈을 찾아오기 위해 다시 반도로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이 때 4명 중 유일하게 있던 한 명의 ‘여성’ 캐릭터는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여성 캐릭터는 4명의 이동수단인 자동차를 ‘운전’하는 역할로, 영화 상에서는 독특하게도 ‘택시 운전사’ 출신으로 나온다. 비록 잠깐 나오는 단역에 불과하지만, 정석을 포함한 다른 세 명의 남성 캐릭터가 각각 반도에 돌아가 탈출하기까지의 개별적인 역할이 있던 것처럼 (군인 정석 – 전반적인 전투, 통신사 출신 매형 – 위성전화로 소통, 정비사 출신 남성 – 폐차를 가동시키는 역할), 택시운전사 출신 여성캐릭터도 주도적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무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사소한 단역에도 주체적인 ‘능력’을 부여해주고, 또 주로 ‘택시 운전사는 남자’로 생각하는 편견을 뒤집기도 했다.

 

2) 서사의 중심에 있는 ‘민정’

영화 <반도>는 강동원과 이정현의 투톱 주연 영화이다. 사실 이 점도 유의미한 것이, 그동안의 남성 투톱 영화, 버디 영화가 아니라 ‘남녀 투톱’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의 입장은 살짝 다르다. 강동원이 연기한 ‘정석’은 반도로 다시 돌아간 외부인이고, 탈출을 꿈꾸고 있던 사람은 ‘민정’과 그 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반도의 시놉시스인 ‘반도 탈출’의 중심에는 ‘민정’이 있고, 그러한 민정과 민정의 가족들의 모습을 외부인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풀어내는 자가 ‘정석’이다. 실제로 배우 강동원도 GV에서 자신의 역할이 ‘민정’과 그 가족들이 돋보일 수 있는, 돋보이게 해주는 평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만큼 주된 이야기 속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굵은 서사가 있는 캐릭터가 ‘민정’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탈출을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자도 ‘민정’이고, 민정의 가족과 정석의 탈출을 방해하는 ‘서 대위’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도 민정이며, 정석과 탄 트럭에서 카 액션은 ‘민정’이, 총기 싸움은 ‘정석’이 하며 완벽하게 ‘동등한 파트너’로서 역할 분담을 하는 모습은 ‘남성 투톱’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림이다. 남성 주인공과 동등한 위치에서 주체적으로 문제해결을 하고, 서로 돕기도 하면서 끝내 반도를 탈출하는 모습은 국내 상업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기에 더 흥미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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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희생이 없는 ‘모성애’

영화 <반도>의 여성 캐릭터 활용은 후반부에서 정점을 찍는다. 나부터도 ‘민정’이 아이들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여 죽음을 택하는 결말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만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온몸을 희생하는 것 대신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몰려드는 좀비 떼를 총과, 몸싸움으로 물리치고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은 소소한 반전이었다. 그동안 ‘어머니’를 영화 속에서 그릴 때 모성애를 강조하며 가족의 미래를 위해 몸을 다 바쳐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과 함께 감정적인 것을 끌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희생과 모성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다 버리고 희생하는 것이 아름답고 멋있는 것이라고 주입하는 여러 매체들의 콘텐츠들이 여성들에게, 그리고 존재하는 많은 어머니들에게 자아보다 가족을, 아이들을 더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형성시켜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아이를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 맞서 싸워서 아이 곁으로 가는 민정의 모습은 진정으로 한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애를 표현한다. 부모로서 ‘히어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도’ 좀비로부터 지켜낸 어머니 ‘민정’의 강인한 모습은 기존 상업영화가 그려냈던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애원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과 달랐지만, 배우 이정현이 직접 언급했듯 그 바탕은 ‘모성애’로 같았다. 모성애를 여리고 희생하는, 감동적인 요소로 그리지 않아도 충분히 ‘위대하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증명했다.

 

4) 최종적으로 구하러 오는 UN군을 이끄는 자도 ‘여성’

앞서 단역에 불과했지만 ‘택시운전사 출신 여성’에게 반도 탈출을 위한 ‘운전 능력’을 부여했던 감독은, 마지막 단역인 UN군을 이끄는 사람도 ‘여성’으로 설정했다. 끝내 막대한 돈을 갖고 탈출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김 노인의 꾸준한 구조요청에 실제로 정석과 민정의 가족을 구하러 온 UN군을 이끄는 수장은 ‘흑인 여성’이었다. 히어로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핵심 인물들 역시 여성으로 그렸던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대부분 주로 건장한 젊은 남성이었다. 특히 ‘구조’하는 사람은 더더욱 그랬다. 이처럼, 영화 <반도>는 ‘여성 캐릭터와 아이 캐릭터’를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 단역 하나까지 기존 상업영화와 다른 모습으로 세심하게 그려냈다.

 

 

 

4. 시사점


 

영화 <반도>가 올해 여름 개봉이 확정되고 나서 ‘부산행’으로 인한 주목도 있었지만, 워낙 스타성이 뛰어난 배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이자, 2년 만의 강동원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굉장한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 ‘강동원’이 맡은 역할, ‘강동원’의 캐릭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영화의 뚜껑이 실제로 열리고 나서부터는 배우 이정현이 연기한 ‘민정’과 아역배우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 영화라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매체와 기자들은 배우 강동원에게 “’민정’ 중심의 영화이다”, “돋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등을 이야기하며 톱배우로서 주연을 맡는 강동원이 왜 이 작품을 택했느냐에 관한 질문 세례가 쏟아졌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캐릭터 활용이 기존 상업영화와 달리 신선했다는 증거이자, 아직까지 주체적인 여성과 아이를 다루는 이야기가 많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이들은 영화에서 주로 어른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활용되잖아요. ‘반도’처럼 주도적인 영화가 있었나요? 저는 떠오르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강동원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영화가 늘어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화 <반도>의 감독과 배우들은 모두 이 영화의 결말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점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즉, 이는 폐허가 된 땅에서 밑바닥까지 보이면서 야만적으로 사는 631부대와 달리 작은 희망이라도 놓지 않고 찾아 노력하던 민정의 가족과 정석이 결국 무사히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각박한 현실속에서도 희망과 화합, 따뜻함을 잃지 말자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이 영화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에 덧붙여서 성별과 나이 무관하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 그리고 결국 그 캐릭터들이 모여서 해피엔딩을 맞게 되는 모습도 우리가 지향해야할 점이라고 은유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폐허가 된 땅에서도 "하나가 된 가족이었기에 불행하지 않았다"는 준이의 마지막 말을 돌이켜 보면, 민정이 자기 자신을 다 내려놓고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결국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은 것은 정말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모성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다. 민정도, 아이들도, 정석과 김노인도, 각자 위치에서 동등하게 능력껏 문제 해결을 하고 희망을 찾아 나선 결과, 성별과 나이 상관 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어 끝내 희망의 세상으로 새롭게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그려낸 여성과 아이들은 그 어떤 상업영화가 주구장창 그려냈던 멋있는 남자 주인공만큼이나 전투력이 강했고, 능동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궁극적으로 한국영화가 앞으로 지향해야하는 점이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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