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백하고 명료하게 페미니즘 읽기 -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글 입력 2020.10.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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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그 이름, 페미니즘. 전 세계적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 이슈는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흐름 아래 여성들이 가장 많이 호소했던 주제가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였기에,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특정 성별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긴다며 여성들의 호소를 극단적이고 단체적인 집착증 정도로 치부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소통 없이 오직 눈가리고 편가르기만 한다면 성별 간 갈등은 밑도 끝도 없이 극화되기만 할 터.

 

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대체 페미니즘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 이들이 쉽게 내뱉는다.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라고. 하지만 그렇게 쉬이 말하는 이들 중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성별 갈등이 극에 달한 이 시점, 사회에 필요한 것은 비난과 헐뜯기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이며 명쾌한 설명이다. 기본을 되짚어봐야 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그저 이름을 불러선 안되는 볼드모트의 존재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중이다. 페미니즘이 이처럼 불분명한 정체로 도시괴담처럼 자리하기만 해서는 그 어떤 바른 미래도 맞이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인 제목의 책 한 권이 있다. 강남순 교수의 책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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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한길사의 책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한 7가지 핵심 질문을 다룬다. 페이지를 넘겨보면 여성학 전공 서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저자가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에 재직중인 강남순 교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3년 부부 교수는 전임교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성차별적 방침에 의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그녀는 이후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로 옮겨 강의를 이어왔다. 강남순 교수는 "페미니즘의 출발점은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지만, 도착 지점은 젠더만이 아니라 인종, 계층, 장애,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전개하는 책의 내용은 전공 서적처럼 담백하고 명료하면서도, 포용적인 가치관 아래 사회의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의지를 심는다.

 

첫 번째 질문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이 챕터에서는 페미니즘을 여성중심주의로 읽기보다 각기 다른 시대와 정황에 따라 상이한 의미와 목적을 지닌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아울러 좋은 이론은 좋은 실천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모든 소수자의 평등을 추구한단 말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고 서술한 만큼 현 시점에서는 우선시하는 가치가 명확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질문은 '성차별이란 무엇인가'. 남녀 모두에게 가해질 수 있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모든 것을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의해 작동되는데, 일례로 특히 여성에게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가 성차별을 현모양처가 되는 '생존의 기술'로 치환하고 재생산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질문 '여성혐오란 무엇인가'를 통해서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살펴본다. 보통 여성 혐오라는 말을 한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데, 혐오란 문자 그대로 '싫어한다'가 아니라 한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고 격하하는 일련의 행위를 뜻한다. 책에서는 과거 유럽에서 500여년간 지속된 '마녀 화형'에서 보이듯, 여성은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지목한다. 아울러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정의하는 '사창가 모델'과 임신과 양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한정짓게 하는 '농장 모델' 등을 거론한다.

 

이어 네 번째 질문에서는 '페미니즘은 하나인가'를 통해 페미니즘 안에서 상충하는 다양한 입장을 전개하며, 다섯 번째 질문 '남성과 페미니즘은 어떤 관계인가'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남성 역시 그러한 존재라고 설명한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결국 후천적으로 주입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와 남자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다르지 않으며, 생물학적 남성 역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어야 함을 논한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질문 '페미니즘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가'와 일곱 번째 질문 '페미니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평등 사회를 향한 다섯 가지 과제'에서는 강남순 교수가 주장하는 철학적 가치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파트는 주제의 경계를 지나치게 확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크게 와닿지 않았으나,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다고 느꼈다.

 

놀랍게도 페미니즘의 원론적 의미는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여성의 참정권 문제가 제기됐고, 이후 1893년에야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됐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지금 현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들도 이와 같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늘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가치였다. 어쩌면 미래에서는 오늘날 페미니즘으로 투쟁하는 많은 것들이 그저 당연하고 일상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져 있을지 모른다. 당장 어렵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해하고 소통하길 포기해선 안된다. 차별 없이 모두가 고루 화합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꿔본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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