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불편과 낯섦으로부터 쓰는 글 - 김나은 에디터와의 대화

글 입력 2020.09.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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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잘 쓴 에세이를 골라내는 법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잘 쓴 에세이는 작가만의 특별한 경험과 감정을 머금고 있고, 사람들이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들을 잡아내며, 소소하더라도 온전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고 했다. 또 독자가 작가를 궁금해하도록 만드는 글이라야 잘 쓴 에세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김나은 에디터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이미 오래전에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보낸 그 정보를 다시 떠올렸다.

 

 

 

낯선 길 위에서


 

나는 왜 김나은 에디터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글이 인상 깊어서’는 너무 단순하고 재미없는 답인가 싶지만, 정말 그 이유 말고는 없었다. 나은 에디터가 쓴 글 중 가장 먼저 읽어본 것은 에세이에 가까운 여수 여행기였다.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뒤, 이 사람이 쓴 글을 더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올라온 여수 여행기 두 번째 편을 읽고 난 다음, 정확히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막연히 그를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글에 담기지 않은 삶의 부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글 뒤에 무슨 이야기가 또 있을지 점점 더 궁금해지던 차에 문화 초대 공지를 받았다. ‘Project 당신’은 딱 알맞게 찾아온 기회였다.

 

처음에는 살짝 겁이 났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므로, 거절당해도 별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나은 에디터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상황이 나빠져 약속을 한 차례 미루기는 했으나, 어쨌든 나는 나은 에디터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 둘 모두에게 공평한 거리에 있는 장소를 찾았고, 의견을 나눈 끝에 을지로3가역 주변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을지로는 처음이었다. 막다른 골목인 줄 알고 가게를 두 번이나 지나쳤고, 그렇게 목적지를 코앞에 둔 채 좁고 어두운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15분이나 늦고 말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원두 볶는 냄새와 미약한 소란이 가까워졌다. 나은 에디터는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가게 입구에 선 나에게 손짓했다. 적당한 안부 인사를 건네고, 첫 만남에 늦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고, 커피를 한 모금 삼킨 뒤, 그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제는 여행, 그리고 글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이 몹시 궁금했다. 처음 읽은 나은 에디터의 글이 여수 여행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그 외에도 여태 기고한 글 중 다른 나라에 다녀와 쓴 글이 제법 있었는데, 의외로 여행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좋았던 여행은 없는지 묻자 바로 대답이 터져 나왔다.

 

“여행을 안 좋아하는 것은 맞아요. 신나는 마음으로 비행기 표를 결제해도, 짐 쌀 생각, 공항에 가서 한참 기다릴 생각, 그 외에 여행하며 겪어야만 하는 각종 불편함을 떠올리면 진이 빠져요. 그래서 저는 제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딜레마를 이겨내고 또 어느새 비행기에 올라있는 자신을 항상 발견하기는 합니다.”

 

자신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은 에디터가 말했다. 그래서 여행기를 꽤 썼음에도, 여행에 대해 좋은 말은 하지 않은 것일까?

 

“그런데 제가 여행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사실 그래서인 것 같아요. 여행에서 좋은 일만 있으면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안 들 거예요. 여행을 가서도 즐겁지 않고, 저를 석연치 않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여행을 왔는데 그리 행복하지 않고, 저 노숙자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비 내리는 하와이 2) 무언가 안 맞는 느낌이 들 때, 그래서 불평불만이 생길 때, 글로써 해소를 하기 때문에 여행을 싫어하면서도 여행에 대한 글을 많이 쓴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즐겁기만 한 여행은 별로 글의 소재로 삼고 싶지 않을 거라니,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럼 좋았던 여행은 없나요?”

 

“좋았던 여행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지인 한 분이 불러 주셔서 일본 여행을 갔던 적이 있어요. 가서 축제에도 참여하고 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그러나 그때가 한창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던 지라 일본 여행에 대한 글을 쓰기에는 부적절할 것 같았고, 또 개인적으로도 귀찮음 때문에 계속 글을 미루었어요. 이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고, 그때의 감정도 잘 살아나지 않네요. 또 그 여행에서 딱히 불편했던 점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내용만 글에 담길 것 같아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여행에 대해서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어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만 글을 쓰기 때문에, 일본 여행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아요.”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만 글을 쓴다는 답이 돌아왔다. 즐거움과 편안함보다 불편과 낯섦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그의 시선이 테이블 너머로 단단하게 전해졌다.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글을 쓴다는 게 나은 에디터가 글을 쓸 때의 방향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단순히 수다를 떨면서 풀 수 있는 이야기일 때는 꼭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쓰고 싶을 때만 쓴다’는 것이 제 글의 목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방향성은 될 수 있겠죠. 말하고자 하는 게 있을 때만 글을 쓰는 거예요.”

 

쓰고 싶을 때만 쓴다는 것. 제법 뻔하지만, 창작에 있어서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자신이 보고 듣는 것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의견을 가져야 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말로 써낼 의지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니 전혀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나서 내가 느낀 점, 내가 가진 의문과 불만이 나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비슷한 의견이 또 있는지, 다른 게 더 있는지 궁금할 때, 가장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글을 쓰겠다고 일단 앉으면 뭐든 나오기는 하지만요.”

 

그렇게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다.

 

“기고한 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영화 ‘그린북’에 대해 쓴 글이에요. 제일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쓰기에 가장 편했던 글이었어요. 영화 자체가 외부에서 이미 논란이 있었던 영화여서 레퍼런스가 많았어요. 영화를 보며 이 영화의 서사가 대변하는 시선이 백인에 가깝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미 자료가 풍부하다 보니 저의 주장을 펼치기도 수월했고, 근거를 세우기도 쉬웠어요. 너무 멋이 없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쓰면서 가장 부담이 덜했던 글이었고, 그래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

 

역시 레퍼런스가 많아야 글쓰기도 편하고 글에 설득력이 생기는 것 같다는 솔직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반대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글은 영화 ‘기생충’을 리뷰한 글이에요. ('기생충'에 대해 글을 두 편 쓰지 않으셨나요?) 맞아요. 첫 번째 글을 쓰고 마음에 안 들어서 두 번째 글을 쓴 거예요. (웃음) 그런데 그것도 마음에 안 들었어요. 분량만 늘어났을 뿐이고 글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어요. 저는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여기에 대한 근거가 하나도 없었어요, 다들 좋았다고 해서.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싫다’고만 말해버리면 그건 개인적 감상이지 설득력이 없잖아요. 그냥 개인적인 불평인 것 같아서 스스로도 가닥을 못 잡았고, 그래서 글도 가닥이 잡히지 않았어요. 물음표만 가득 띄우고 끝낸 글이었죠.”

 

아트인사이트에서 기고한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아트인사이트 밖에서도 글을 쓰시는지 궁금해졌다. 따로 글을 쓰는 곳이 더 있냐고 질문하자, 학교 모임에서 문집을 만들고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집을 만들어서 책을 내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11월에 책이 나올 예정이라 지금이 가장 바쁠 때예요, 원고 마감이 가까워져서.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일이기도 하고, 일단 원고를 만드는 경험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나은 에디터는 소설 쓰기가 자신의 단점과 형편없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글쓰기가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진 작업이기는 하지만, 소설은 정말 다른 영역의 일이라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나의 세계를 처음부터 내 손으로 온전히 빚는 것은 서평이나 해석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책을 아끼는 아날로그적 인간


 

나은 에디터가 쓴 글들을 읽어보고 또 느낀 게 있다면 정말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을 글감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혹시 더 특별히 좋아하고, 자주 향유하는 문화예술 분야가 있는지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연극을 가장 좋아합니다. 영화는 더 정돈되어 있고 구조가 있는 반면, 연극은 즉흥성이 있으니까요. 그 즉흥성이 좋아요. 그래서 관객으로서는 영화보다 연극이 주는 재미가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글을 쓸 때는 연극을 보고 난 뒤보다 영화를 보고 나서가 훨씬 쓸 거리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어쨌든 배우와 관객이 연결되어 있다는 그 느낌 때문에 볼 때는 연극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뮤지컬은요?”

 

“뮤지컬은 작품 안에서 노래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작품 안의 완결성, 그리고 서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연극이 더 좋아요. 물론 직접 뮤지컬을 보러 가면 또 잘 즐기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읽었을 때처럼 가슴에 남는 느낌은 뮤지컬이 연극에 비해 조금 덜 하지 않나 생각해요.”

 

기대했던 답이 아니라 조금 놀랐다. 내가 예상한 답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뭔가 연극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건 제가 뭔가 책을 문화예술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연극은 내가 좋아서 보는 거라면, 책은 문화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훨씬 커다란 무언가 같아요. 기본적이고, 바탕이 되는 것? 저는 책이 없으면 안 돼요. 책이 없는 상황에 처해본 경험이 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았죠. 그때 느꼈어요, 책 없이는 살 수 없겠다는 걸. 저는 주변에 항상 책이 있어야 해요.”

 

“책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두시네요.”

 

“맞아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글을 백업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블로그 외에는 SNS도 없다는 나은 에디터는 자신에 대해 너무 아날로그적이라 트렌디한 글은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을 싫어한다는 말, SNS를 하지 않는다는 말에 일관성이 느껴져 웃음이 났다. 수많은 글 사이에서 나은 에디터의 글이 유난히 잘 보였던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채널이 맞든 맞지 않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글이라서.

 

*

 

준비한 모든 질문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지, 워킹 홀리데이는 어땠는지, 고양이와는 언제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는지, 이런저런 대화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인터뷰라기에는 조금 느슨했고, 처음 만난 누군가와의 대화라기에는 꽤 깊이가 있었던, 어딘가 묘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예상된 흐름 없이 즉흥적으로 이어졌던 대화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은 에디터에게도 즐거움을 다가갔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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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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