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언어를 잃은 학생들 [문화 전반]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글 입력 2020.09.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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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와 만나 커피 한잔을 마셨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나름의 열성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기에 둘이 만나면 과거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서로의 입시를 이야기하며 추억하는데, 현재의 내가 한 걸음 떨어져 추억하는 그 시절의 내 교육경험을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늘 타인의 언어로 불려왔다. 누군가는 나를 전교등수로 말하고 누군가는 내가 치루는 입시종류로 말하고 누군가는 내 한 달 학원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말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학급 내 내가 위치한 계급으로 말했다. 나는 30등으로, 미대입시생으로, 한 달에 120만원짜리 학생으로 혹은 아싸로 불릴만한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 언어들 이외에 나를 대표하거나 설명할만한 언어는 없었다.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기도 전에 나를 둘러싼 사회는 학벌주의와 대학진학 성공신화에 치우친 지배서사가 공고히 자리 잡혀있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일명 ‘반항아’ 집단의 서사와 언어는 교실 내에서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모범생’의 서사를 따라가려 나름 애썼던 입장으로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반항아’ 집단의 서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아싸’라는 칭호를 부여받았고 동시에 누군가를 만족시킬만한 (대체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었다) 성적과 우수함, 친화력 등이 없었기 때문에 어딘가 2% 모자란 조용한 아이라는 어중간한 칭호 또한 부여받았다.

 

고등학교에서 각 집단의 이해관계와 서사들에 휩쓸려 내가 원한적은 없었음에도 반강제적으로, 그리고 타의적으로 부여받은 서사와 위치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나 또한도 스스로를 타인에게 그렇게 설명했어야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가 이상적으로 완벽한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창피하지만 학교에 다니는 내내 이러한 언어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것에 대해 극심한 열등감과 문제의식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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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언어를 잃은 학생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에서 늘 전교 1등을 하던 친구, 그 친구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과 늘 노력하는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반 친구 들에게 그 이름을 말하면 그 친구가 가진 성격이나 장점, 혹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기 전 늘 ‘아, 그 전교 1등?’이란 타이틀이 붙었었다.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늘 “아 왜 있잖아, 그 전교 1등!‘ 이라고 말하면 웬만한 친구들은 다 알아들었던 그 순간, 씁쓸함 대신 부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던 과거의 나는 분명히 성적우선주의 서사에 착실히 따르는 여느 고등학생들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름 석자를 말하면 제일 먼저 설명되는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 속에 숨겨진 수 많은 의미 - 앞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순조롭게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일반 대학에 진학 한 사람들과는 달리 더 많은 혜택과 더 많은 기회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의미 - 는 그 친구를 향한 질투와 열망으로 설명됐다. 친구가 가진 밝고 긍정적인 성격 이전에 입시와 공부, 성적, 순위에 긴장해야했던 우리들은 그 친구가 가진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과 친구를 동일시했고 친구가 하는 노력과 겪어야하는 부담감, 갈등, 고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로 지워버렸다. 전교 1등은 분명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타인의 선망과 욕망으로 지켜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당장 전교 1등 뿐만 아니라 교실의 이단아였던 ‘양아치’들 또한 학교와 사회에서 낙인 찍어버린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자신들을 규정시켜왔다.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버린 낙인을 그대로 사용하며 자신들의 행동 양식 또한 그렇게 만들어갔는데, 이를 알게된 건 고등학교 때 우연히 친해진 일명 ‘양아치’ 친구가 웃으면서 내게 이야기한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난 양아치니까 그래도 돼.” 양아치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그 친구의 비겁함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고정된 ‘양아치의 서사’를 부여한 학교와 교육의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더 공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소수의 ‘우등한 학생들’의 관리를 위해 그들을 고정된 존재로 위치 지어버린 것은 아닌지, 오히려 그런 단일적이고 평면적인 서사로 인해 그들의 존재가 학교 뿐만 아니라 학생들 내부에서도 점차 소외되어가고 특수성을 띄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어딘가에 속해지고 분류 받으며 끊임없이 검열받는 듯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지배서사에서 탈락한 집단을 기피해야 하는 집단으로 타자화 시키는 것은 지배서사에서 우등한 타인을 열망의 대상으로서 타자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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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라는 존재와 내가 속한 집단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언어의 필요성은 항상 대두되어 왔다. 물론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가 불필요한 관행이며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야하는 근본적인 사회의 분위기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과 어울려 사는 세상에 ‘나’의 특수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언어라는 방법이 필요하다. 다만 그 언어가 사회에 팽배한 불공평한 잣대에 의해 생겨나지는 않았나, 혹은 그 언어에 내가 지배당하는 것은 아닌가, 깊이 고찰해 봐야 한다. 당장 나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 앞에 붙어진 타이틀들을 더 좋게, 성공적이게 바꾸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을 해왔다.

 

정작 중요한 것은 타인의 기준으로 위치 지어진 내가 아니라 스스로 이름붙이는 나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때문에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거기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왜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늘 타인의 언어로 말해왔던 것일까? 대학을 가서 정상적인 청년이 되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고, 더 나아가 지배계층에 새끼발가락이라도 담아야 완성되는 '성공적인 인생’의 서사와 강자의 서사를 학습하는데 왜 그렇게 열성적이었던걸까?

 

‘이데올로기가 진리인지 아닌지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지배를 정당화시켜주는 윤리적 가치의 체계일 뿐 과연 이데올로기가 표방하는 가치들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성공의 이데올로기 속 진실 된 가치판단은 지워버리고 그 서사에 편승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성공한’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워온 시간들은 점차 비눗방울처럼 손에 쥘 수 없는 허상들을 원하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나 또한 이 지배 서사에 희생당한 피해자이자 힘을 실어준 가해자적 면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느새 정상의 범주에 속해버린 학교의 서사와 타인의 언어로 말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집단의 새로운 이야기는 패배자의 변명이라 낙인찍는 생태가 위태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스스로 경계해야 하고 조심해야하는 것은 학교의 이단아들과 입시 패잔병들이 이야기하는 그들의 서사가 아니라 이미 너무 익숙해져버려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학교의 서사이고, 그들의 입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의 이야기도 하기 힘든 대한민국의 교육 함정에 빠진 본인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조효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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