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러블리즈의 도전은 식스 센스다

글 입력 2020.09.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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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프렌들리’가 하나의 전략이 되고 꼭두각시라며 비하되던 아이돌들이 반박하듯 셀프 프로듀싱을 통해 범주를 넓히고 있는 케이팝 시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아이돌은 쉽게 뭉뚱그려진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구분법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청순’ 아니면 ‘섹시’의 유형 중 하나에 포함되어 정의되었고 둘 중 하나로 정의되기 모호한 경우엔 여성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감정을 이례적으로 보는 ‘걸크러시’라는 단어로 규정되었다. 남성 아이돌에겐 작동되지 않는 이 구분법은 ‘섹시’로 정의되는 아이돌을 향한 성적 대상화만큼 ‘청순’으로 정의되는 아이돌에게도 폭력적으로 작동한다. 부드럽고 밝은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여성스럽다’고 정의되고, 나약하고 도전적이지 못하다고 폄하되고, 남성 팬을 매개로 한 남성 권력에 수동적으로 의존한다고 비난받는다. 당연히 틀린 공격이며 아이돌의 과실이 아니다. 엔터테인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면 어떠한 활동을 하든 대상화와 대상화를 자처한다는 추측성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구분법을 거부하고 더 넓은 스펙트럼에 자유롭게 위치하려는 여성 아이돌의 도전은 그래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성의 존재를 거부하는 대중이라는 이름의 판관들은 여성 아티스트의 주체성을 지우고 주체성이 드러나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케이팝 산업의 그림자가 드러나고 그것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가려지는 부조리한 판국에서 그럼에도 여성 아이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아직까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많은 불균형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용감하게 이뤄지고 있는 그들의 시도에 더욱 많은 박수를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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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방영했던 ‘퀸덤-컴백 전쟁(이하 퀸덤)’에서는 여성 아이돌들의 다채롭고 파격적인 시도가 펼쳐졌고 그들에게 더 많이 주어져야 할 기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사람들은 모든 출연진에게 따스하진 않았다. 당시 ‘청순 걸그룹’으로 정의되었던 러블리즈를 향한 시선은 그중 유독 날카로웠다. ‘퀸덤’에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식스 센스’를 커버한 무대의 영상엔 방영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실력에 대한 비판과 관련 없는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고, 혹자는 그것을 두고 ‘댓글 맛집(재미있는 댓글이 많이 달린 영상)’이라고 칭한다. 그들을 향한 비난이 스포츠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러블리즈는 다음 경연에서 밝은 분위기의 수록곡 무대를 선보이고 ‘이것이 진짜 러블리즈다’라는 칭찬을 들으며 모두가 행복한 ‘퀸덤’의 결말을 함께 매듭지을 수 있었다.

 

여성 출연진들이 기존의 권력 관계를 뒤집고 판을 가져온 ‘퀸덤’은 여성 아이돌을 다루는 방송의 이상향처럼 여겨졌으나 거기엔 분명한 여성혐오가 잔존했으며, 이는 러블리즈를 향한 원색적이고 일차적인 비난을 통해 드러난다. ‘식스 센스’ 무대에 관한 비난은 대개 원곡과의 비교와 함께 이뤄졌는데, 원곡에 있는 고음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고 원곡 안무에 없는 제스처를 취하며 ‘예쁜 척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여성 아이돌의 한계’를 타파해야 할 공간에서 그 ‘틀’을 깨지 못했다는, 지극히 여성혐오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비난의 구실이 마련되었다.

 

여성혐오는 오락적이다. 선악이 구분되고 보상과 징벌이 이뤄지는, 여성에게 특히 쉽게 부여되는 허구적인 ‘사이다’ 세계관이 순식간에 직조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식스 센스’의 선곡 과정이 동원되었다. 러블리즈는 기존 콘셉트가 경연에 참여한 다른 한 팀과 비슷하다는 우려를 표했고 본래 그 팀의 노래를 커버할 차례에서 자유곡 선택의 기회를 주는 미션에 성공하여 ‘식스 센스’를 골랐다. 여기에 그 팀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인성 논란’ 프레임이 씌워졌다.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곡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식스 센스’ 무대에서의 아쉬움은 그들의 좋지 않은 인성에 대한 징벌처럼 여겨졌고 비난은 훈계의 탈을 쓴 채 정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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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다음 경연에서 밝은 분위기의 수록곡인 ‘카메오’의 무대를 선보인 그들이 마치 실수를 만회한 것처럼 비추었는데, 이 또한 개운하지 않은 이유는 대중이 러블리즈의 시행착오를 영역 확장의 과정이 아닌 선택해서는 안 될 영역에 손을 댄 무지와 부주의의 결과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식스 센스’에 대한 비난과 ‘카메오’에 대한 보상적 의미의 칭찬에는 ‘하던 것’이나 제대로 하라는 훈계가 숨어 있다. ‘하던 것’이라는 말에는 ‘청순 걸그룹’이라고 단정 지어지는 러블리즈와 여성 아이돌의 음악에 관한 오독이자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있고, 전체적으로는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변화에의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고가 함축되어 있다. 사람들은 러블리즈가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바깥으로 벗어난 그들이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여성 연예인이라면 응당 그렇게 대중의 입맛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다음 경연이자 마지막 무대에서 선보인 신곡, ‘moonlight’에서 느꼈던 쾌감은 더욱 컸다. ‘진짜 러블리즈’를 향한 칭찬이 막 시작되려던 참에 기존에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음악을 결승전에서 꺼낸 것이다. 러블리즈의 프로듀싱을 도맡았던 윤상과 1Piece를 주축으로 설계된 기존의 신시사이저 사운드 위주의 댄스 음악 노선과 완전히 다른, 거친 리듬과 악기로 구성된 플럭 사운드(통통 튀는 타악기 계열의 소리) 계열의 음악이었다. 물론 슬픈 정서의 가사와 이에 상반되는 경쾌한 템포, 그리고 부드러운 선의 춤은 기존 러블리즈 음악의 핵을 이루고 있던 요소들이었다. 이번에 ‘진짜 러블리즈’라는 칭찬은 없었지만 러블리즈는 마지막까지 그룹의 색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거듭하며 전쟁과도 같았던 ‘퀸덤’ 속에서 스스로 서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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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덤’이 끝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러블리즈는 지난 9월의 첫날 새로운 앨범 ‘Unforgettable’로 컴백했다. 긴 공백기의 끝에 발매된 앨범은 역시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에 곡 전체가 어두운 단조로 구성된 음악으로 돌아온 그들에겐 ‘흑화’라는 헤드라인이 붙었지만 사실 러블리즈의 변화는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선보인 단조 계열의 타이틀곡 ‘Destiny’를 발매했을 때 그랬고, 윤상과 1Piece가 프로듀싱하지 않은 앨범을 발매했을 때 그랬고, ‘퀸덤’의 모든 경연에서 그랬다. 사람들은 ‘청순’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러블리즈의 ‘진짜’를 찾기에 급급했지만, 일관되게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주제 삼는 그들이 그 안에서도 짝사랑, 우정과 충돌하는 사랑, 끝나서 잊어가는 사랑, 추억되는 사랑을 노래했듯이 ‘청순’이라고 납작하게 정의되는 어떤 스타일 안에서도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성장했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구분법의 허물어짐을 기다리는 움직임들이었다.


이번 신보에서 이뤄진 변화에서 이전과는 다른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뿐 아니라 그동안 그들을 옭아매던 구분법과 그들의 행보는 무관하다는 사실의 천명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스 센스’ 이후 러블리즈는 많은 이들이 원했던 것처럼 대중에 의해 해석된 ‘진짜 러블리즈’를 보여주기 위해 안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식스 센스’에서 보였던 전투적이고 강렬한 모습이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 무대 등의 비주얼 요소에 다분히 포함되었다. 멤버 중 한 명은 타이틀곡 ‘Obliviate’를 한 단어로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식스 센스’라고 답했다. ‘식스 센스’ 무대를 확장의 기회로 받아들인 러블리즈의 도전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진짜 러블리즈’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타인이 그은 선에 구분되지 않고, 실패로 읽히는 순간마저 본인들의 언어로 기록한 서사 속 끊임없이 이뤄진 그들의 모든 변화와 도전 자체가 ‘진짜 러블리즈’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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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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