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도서]

글 입력 2020.09.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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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의 첫 페미니즘 도서이다. 그리고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미디어에서는 쉴 틈 없이 성차별, 인종차별, 장애차별, 계층차별 등 다양한 차별과 혐오과 쏟아져 나온다. 이를 보고 늘 분노하고 슬퍼하면서도 쉽게 페미니즘 책에 손을 뻗을 수 없었던 이유는 찰스 다윈의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라는 말처럼 겨우 책 한 권을 읽고 편협한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읽은 나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는 다를 게 없었다. 이미 나는 무지했다. 한 권의 책으로 편협한 태도를 가지고 싶지 않다면,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이 성찰하고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펼쳤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남성에 대한 '복수의 정치'에 의해 작동되는 것으로서 남성 혐오적이며, 여성의 우월과 지배를 주장하고, 결과적으로 가정 파괴나 종교 파괴는 물론 궁극적으로 사회분열을 야기한다는 것 등이 페미니즘에 관한 전형적인 '왜곡된 신화'다.


 

총 7개의 질문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가장 먼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새로운 과목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그 과목이 어떤 것인지, 어떠한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배운다. 그럼에도 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머릿속을 떠도는 어설픈 정의로 페미니즘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무지했고 부끄러워졌다.

 

작가는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제시하며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페미니즘은 '자명한 것'이라는 전제를 지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편견이 페미니즘 이해에 커다란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대화를 나누어본 몇몇 비페미니스트들 또한 페미니즘을 과격하고 여성우월적이며 남성혐오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여 그대로 '페미니즘'이라고 쓴다. 작가는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표현하는 것의 위험성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페미니즘을 '여성중심주의'라고 오해할 수 있다.

2. 현대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교차성'의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

3. 페미니즘을 젠더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적 입장이 아닌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본질에 국한된 사상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다.

 

 

교차성이란 신분, 인종, 성별, 장애 등의 차별 유형들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교차성'과 '정치적 입장'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특히 '교차성'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의 깊게 바라본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식론적 사각지대의 가능성 인식과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


  

 

'여성'은 '인간'을 구분하는 하나의 범주일 뿐이다. 페미니즘의 출발점이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이 한 개별인을 이루는 유일한 결정 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별'이라는 범주 외에도 다양한 곳에 속해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단순히 '여성'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 된다. 그래서 작가는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라는 의미를 우선적으로 차용하며, 더 나아가 "페미니즘의 도착점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작가의 주장이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한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작가는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일치된 정의는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페미니즘들'이라는 복수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페미니즘의 본질을 보게 하며, 보다 복합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 해답은 '성차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얼터리티'는 그 어떤 요소와의 비교를 전제하지 않고, 그 존재의 '다름'을 그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한 인간은 주변부와 중심부, 피해자와 가해자, 피억압자와 억압자 등 정황에 따라서 이러한 다층적 위치성 속에 자리 잡고 산다.


 

책을 다 읽은 후 페미니즘은 더 이상 '여성'이라는 단일 정체성만으로 논의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성차별'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모두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차별들과 차이가 있음에도 이분법적 사유방식(우월-열등)과 지배의 논리(지배-종속)를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배의 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차별적 행위를 전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작가는 21세기의 페미니즘의 지향점을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한다. '개별성의 윤리'에서 시작한 코즈모폴리턴은 페미니즘은 교차성의 개념과 다층적 경계들을 넘어서는 개입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다. 이는 모든 '인간'이 평등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나 또한 작가의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교차성과 페미니즘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더라도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의 뿌리가 우선시 되어야 하며, 이것이 가려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독자에게 페미니즘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이 책은 마치 친절한 페미니즘 교과서 같다. 이 책은 7개의 질문을 이어가며 차별의 종류, 권력과 특권, 여성혐오에 대한 이해, 남성과 페미니즘의 관계, 페미니즘의 당사자성 등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페미니즘의 A부터 Z까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각 챕터의 끝에는 Key Ideas Box라는 요약 상자가 있는데, 사실 이 요약 상자들만 읽어도 책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아쉬웠던 것은 책을 읽다 보면 반복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특정 단어와 문장이 반복해서 등장하는가 하면, 거의 동일한 문단이 통째로 반복되기도 한다. 때문에 책장을 넘기다 지쳐서 책을 덮기도 했다. 그럼에도 덕분에 논리의 일관성이 유지된다는 점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점이 좋았다.

 

비로소 '어떤 페미니즘을 하는 것이 옳은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각기 다른 페미니즘이 지닌 장단점은 있지만 단 하나의 페미니즘 관점은 없으며, 특정한 정황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개입하는 것. 어쩌면 나의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어떤 페미니즘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이었다.

 

책장에 첫 페미니즘 도서가 생겼다. 모든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수많은 문제들 앞에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선택지를 보여주는 기본서가 될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필요한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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