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포칼립스의 세상에서도 인간성은 살아있다 - '지금, 만화'를 읽고 [도서]

<지금, 만화>중 <조의 영역>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20.09.16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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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재난 영화를 좋아한다. 예전부터 늘 봤던 <투마로우>나 <우주전쟁>을 필두로 <해운대>, <부산행>, <감기>, <반도>, <살아있다>까지. 재난의 종류도 다양하다. ‘재난’ 콘텐츠에 대한 사랑은 영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웹툰 세상에서도 재난은 나의 이목을 끌었다.

 

학교 좀비를 그린 <지금 우리 학교는>, 종의 분열을 얘기하는 <조의 영역>, 주민들이 욕구만을 추구하는 괴물로 변하는 <스위트 홈> 등 여기에 적힌 웹툰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재난 웹툰을 봤다. 그래서인지 재난과 만화를 다룬 잡지인 <지금, 만화>가 더 기다려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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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만화, 아포칼립스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나 만화는 세상 문명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이 실종되는 비참한 현실을 다룬 아포칼립스와 세상 종말 이후 생존자들이 처절하게 살아가는 생존투쟁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두 가지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다. (p.24)
 
 
재난 웹툰 중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웹툰은 <조의 영역>이다. 외부의 재난이 우리가 흔히 아는 좀비나 외계 생명체가 아니라 물고기라는 점이 특이했다. 어쩌면 잡지에서 얘기가 나온 것처럼, 먹이 사슬의 서열이 바뀌어서 더 특이하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조의 영역에서 인간은 최약체이다. 거대 물고기는 인간을 먹으며 발전을 하고, 먹이에 굶주린 인간 중 몇몇은 죽은 물고기를 먹으며 물고기처럼 모습이 변화된다. 먹이로써 모습의 전이가 일어난 것이다.
 
특히나 이 웹툰에서 충격을 받았던 장면은 아주 큰 물고기가 그 보다 작은 물고기를 먹고, 또 그 작은 물고기가 인간을 잡아먹는 장면이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더 기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조의 영역이 특이하다고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기존의 재난 콘텐츠의 문법을 따르지 않은 것이었다. 앞 부분에서 주인공처럼 행동했던 A는 중간 부분에서 한 순간에 죽었고, 또 그 다음 주인공이었던 B도 허무하게 변화한다. 즉, 고정된 주인공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웹툰의 시선은 계속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인간성이 실종되는 ‘아포칼립스’를 만나게 된다. 사실 아포칼립스라 말했지만, 몇몇의 행동은 꼭 조의 영역과 같은 재난이 아니었더라도 일어날 법한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성은 존재한다.

 

이렇게 인간성이 상실되는 과정에서도 사랑은 존재했다. 조의 영역 시즌2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초록머리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다. 잡지에도 나와있듯, 초록머리 아줌마는 시즌2 주인공인 문소원을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여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비록, 한 순간 돌변하긴 했지만.
 
사실 여기서 초록머리 아줌마는 물고기를 먹고 치매 증상을 앓고 있다. ‘초록머리 아줌마가 문소원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인간성이 무너져가는 상황에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나는 그보다 초록머리 아줌마의 진짜 아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초록머리 아줌마의 아들을 앞으로 Q라 부르겠다. Q는 군인이다. 거대 물고기가 터지고 난 후 Q는 자신의 엄마가 걱정이 되어 부대에서 집까지 하루를 빠지지 않고 내내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착을 해보니, Q의 엄마는 이미 ‘인어’의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Q는 엄마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함께 죽는 선택을 한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이었지만, Q는 엄마에 대한 최선의 배려를 한 셈이다. 무너져가는 세상에도 인간성은 살아있었다.
 
* * *
 
이 글은 재난 만화 중 조의 영역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었지만, <지금, 만화>에서는 사실 더 다양한 만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웹툰 뿐만 아니라 재난 만화의 기원, 탄생 배경, 포스트 코로나로의 이야기 등 만화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와 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적혀있다.
 
웹툰에 관심이 많고, 특히나 재난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 읽어보며 재난 이란 장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
 

 

[한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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