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지금처럼 가까이 느껴진 적이 없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존재하던 해괴한 재난과 사건사고들이 뉴스에서 등장하기 시작했고, SF적 상상력이라고 여겨졌던 재난 콘텐츠들이 새로운 눈길을 받게 되었다. 이전에도 재난물을 즐겨보던 나 역시 영화와 만화 속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촌철살인으로 느껴졌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원하는 만화(웹툰) 비평지인 <지금, 만화> 6호는 재난과 만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펙터클하고 많은 동적 요소를 포함하는 재난물이 만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의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만화, 웹툰에서 재난은 고전적이자 인기 있는 소재이다.
웹툰에서 본격적으로 재난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2009), <당신의 모든 순간>(2010), <조의 영역>(2012), <하이브>(2014)와 같은 작품들이 웹툰의 장르로서 재난을 정착시켰다.
영화에 비해 화려한 시각효과를 구현하기 힘든 만화는 영화와는 반대의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광범위한 곳보다는 고립된 곳, 대규모 재난보다는 개인의 사고에 초점을 맞춘다. - 14p
영화와 만화에서 재난은 "그 사회의 원초적인 모습(13p)"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만화에서는 작가의 그림체에 따라 재난의 분위기와 초점이 달라지고 또 주인공의 심리적 표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다르다. <지금, 만화> 6호에서는 재난을 다루는 영화와 웹툰의 방식을 비교하고 또 대표적인 재난 만화들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의 위험에 맞서 등장인물들이 힘을 합치고 또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어 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사회적 가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다른 기준에 따라 선택한다는 점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웹툰 <좀비 딸>의) 수아가 좀비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간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이 어딘가 낯익기 때문이다. 정환의 집에 몹쓸 낙서를 남기거나 돌을 던지고 인터넷에서는 정환과 수아의 신상과 사진이 공개되었으며, 두 부녀를 향한 비난과 욕이 난무하다. - 42p
특히 작품에 대한 해석 중, <좀비 딸>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네이버 웹툰인 <좀비 딸>은 두려움과 배척의 대상이었던 좀비를 소통의 대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는 수아를 좀비가 아닌 사람처럼 느끼도록 표현을 해왔지만 결국 작품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돌아오는 것은 수아 가족에 대한 염려와 비난이었던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반영된 결과이며, 재난은 즉 불안이고 곧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로 이어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은 공동체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기성세대가 거짓으로 구축한 시스템(서울)을 부정하고, 스스로 진화하기를 결심한 신인류를 상징한다. - 58p
재난 만화에서는 세대 간에재난을 맞이하는 구별된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재난이 일상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재난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리고 점차 진정한 재난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아주 잠시만 <하이브>의 현장에 우리 자신을 넣어보기로 하자. 내가 그런 재난 상황에서 인간과 곤충의 혼종이 되어버렸을 때 끝까지 잃지 않을 것은 무엇일까? - 67p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재난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난 만화는 재난에 맞서 싸우는 쟁점을 넘어서 "감염자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법(130p)", "감염자를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방법(133p)"을 논하고 있다.
<지금, 만화> 6호에서 즐겨본 웹툰에 공감하고 새로운 웹툰을 소개받으면서 스펙터클을 넘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 재난 만화들에 감명했다. 좋은 작품을 보고 또 해석하면서 개인의 재난과 사회의 재난에 슬기롭게 대처할 힘을 키워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