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숲속에 소녀와 고양이가 나란히 걸음을 하는 표지의 도서를 받았다. 신중선의 소설 <고요한 인생>이다.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평온한 주말의 오후가 연상된다. 뭉그적거리며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중천에 뜬지 오래인 해는 창문 위에 솟아있고, 먼저 일어난 가족들의 북적이는 소리가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그런 평범한 일상 말이다.
하지만 책장을 두어 장 넘기자 표지에서 상상되었던 일상의 평화로움이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모두 떠돎, 외로움, 절망 등 평범한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회의 소외된 자들의 가슴 먹먹한 내레이션을 풀어내고 있었다. 조곤조곤하지만 담담하게.
사이코패스와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한 어린이, 그 경계의 어딘가
<고요한 인생>의 주인공은 단순히 정의하자면 사이코패스 어린이다. 도박에 빠져 만삭인 어머니를 두고도 며칠을 집을 비우는 아버지와 당장 먹고살기조차 힘든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 그곳에서 태어난 육 남매. 앞서 나열한 환경만으로도 벅차건만, 수은이는 다른 형제들과 다른 점이 많은 관계로 가족들 사이에서도 은연중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연연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는커녕 오히려 말려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어릴 적 본인을 훈계하는 엄마의 뺨을 때리거나, 방해되는 요소를 없애기 위해 어린아이의 짓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는 태연한 모습에서 분명한 감정 결여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아이의 행동 이유는 아이의 행동의 이유는 모두 본인의 고요한 일상을 위함이다.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사고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결코 부정적으로 표현하지도 옹호하며 감싸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나열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몇몇 대사를 통해 주변인들과의 아이 사이의 트러블만을 표현할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이 많아 신경이 곤두섰던 네 엄마는 네 손에서 크레용을 빼앗고 엉덩이도 두어 대 야멸치게 때린다. 허나 다음 순간 네 엄마는 혼비백산하여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어느 사이엔가 네 손바닥이 엄마의 뺨을 올려붙였기 때문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거칠고 또한 분노에 차있었다. - 12p
마침 방에 들어오다 그 장면을 목격한 네 연년생 언니는 너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없다. “너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야.” - 16p
네 행동에서 내비치던 노회함이 생선가시처럼 걸려있다. 아이답지 않아. 양엄마는 불현듯 네가 낯설다. 처음으로 너를 의심한다. 정말 저 아이가 한 짓이 아닐까? 믿어도 되는걸까? - 33p
어쨌거나 언제 어느때건 아들은 공중전화 부스를 무심히 지나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부스에 들어가서는 송수화기를 들고 실성한 사람처럼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 오늘은 전을 부쳐봤어요. 계란도 하나 깨트려 넣었지만 썩 맛있는 것 같지 않네요.” - 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