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이에게는 각기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 고요한 인생

그늘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
글 입력 2020.09.1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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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숲속에 소녀와 고양이가 나란히 걸음을 하는 표지의 도서를 받았다. 신중선의 소설 <고요한 인생>이다.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평온한 주말의 오후가 연상된다. 뭉그적거리며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중천에 뜬지 오래인 해는 창문 위에 솟아있고, 먼저 일어난 가족들의 북적이는 소리가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그런 평범한 일상 말이다.

 

하지만 책장을 두어 장 넘기자 표지에서 상상되었던 일상의 평화로움이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모두 떠돎, 외로움, 절망 등 평범한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회의 소외된 자들의 가슴 먹먹한 내레이션을 풀어내고 있었다. 조곤조곤하지만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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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와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한 어린이, 그 경계의 어딘가


 

<고요한 인생>의 주인공은 단순히 정의하자면 사이코패스 어린이다. 도박에 빠져 만삭인 어머니를 두고도 며칠을 집을 비우는 아버지와 당장 먹고살기조차 힘든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 그곳에서 태어난 육 남매. 앞서 나열한 환경만으로도 벅차건만, 수은이는 다른 형제들과 다른 점이 많은 관계로 가족들 사이에서도 은연중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연연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는커녕 오히려 말려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어릴 적 본인을 훈계하는 엄마의 뺨을 때리거나, 방해되는 요소를 없애기 위해 어린아이의 짓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는 태연한 모습에서 분명한 감정 결여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아이의 행동 이유는 아이의 행동의 이유는 모두 본인의 고요한 일상을 위함이다.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사고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결코 부정적으로 표현하지도 옹호하며 감싸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나열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몇몇 대사를 통해 주변인들과의 아이 사이의 트러블만을 표현할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이 많아 신경이 곤두섰던 네 엄마는 네 손에서 크레용을 빼앗고 엉덩이도 두어 대 야멸치게 때린다. 허나 다음 순간 네 엄마는 혼비백산하여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어느 사이엔가 네 손바닥이 엄마의 뺨을 올려붙였기 때문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거칠고 또한 분노에 차있었다. - 12p


 마침 방에 들어오다 그 장면을 목격한 네 연년생 언니는 너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없다. “너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야.” - 16p

네 행동에서 내비치던 노회함이 생선가시처럼 걸려있다. 아이답지 않아. 양엄마는 불현듯 네가 낯설다. 처음으로 너를 의심한다. 정말 저 아이가 한 짓이 아닐까? 믿어도 되는걸까? -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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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무의미한 인생이란 없음을 방증하다

 
<아들>에서는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떠나보낸 소년이 등장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동네에 정착하여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반복적인 나날을 보낸 지 어언 20년이 흘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마을도 변해가지만, 소년, 아니 청년은 빈민촌의 최장기 거주자가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마을 사람들의 추측이 만연하다. 헤어진 아내가 있다, 자식을 잃어 실성해 공중전화에 대고 허공에 통화한다 등. 많은 이들의 눈에 그는 희망과 목적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목적성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혹여 아버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폐가가 되어버린 집을 쉬이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언제 어느때건 아들은 공중전화 부스를 무심히 지나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부스에 들어가서는 송수화기를 들고 실성한 사람처럼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 오늘은 전을 부쳐봤어요. 계란도 하나 깨트려 넣었지만 썩 맛있는 것 같지 않네요.” - 60p
 
 
기다리는 이를 위해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20년 동안 머무르며 무료한 일상을 반복해온 청년. 발전이라고는 없는 단순한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이를 두고 함부로 의미 없는 시간이라 평가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슬며시 든다. 사람마다 중요요소가 다르듯이 청년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버지와의 재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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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책은 다양한 소외된 환경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7가지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낸다. 저마다 각기 다른 결핍과 아픈 현실을 지닌 이들은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범주의 그늘진 사회의 이면 속에서 묵묵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가슴 저리도록 미련한 행동을, 또 영악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결단을 보이며 읽는 독자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유도한다.
 
저자는 다양한 상황의 주인공들을 늘어놓지만 이를 비판하지도 포장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서술 방식을 진행하는데 이러한 화법은 독자로 하여금 인물들의 내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세상에 완전한 악인은 없고, 완벽한 선인은 없다. 모두가 처한 상황과 입장은 다르기 마련이며 그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인간은 관점에 따라 악인이 될 수도 있는 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해 가지 않는 미련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어찌 보면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그늘 속의 생활을 일차원적으로 나열한 듯 보이나 결국 그 목적은 인간의 입체적인 감정선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인생 전반에 대한 고찰이었다 생각된다.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입체적인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게 되며 이는 범인간적인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본 책을 통해 환기한 생각의 전환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와 다른 범주의 이들을 마주하였을 때 무작정 선을 그을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결론을 내리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
 
고요한 인생
-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
 

지은이 : 신중선

출판사 : 내일의문학

분야
한국소설

규격
134*200

쪽 수 : 204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5,000원

ISBN
978-89-98204-76-1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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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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