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8. 개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개와 산다는 것, 그리고 개와 이별한다는 것
글 입력 2020.09.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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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8. 개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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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닮은 개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을의 금빛 햇살을 담은 듯한 털을 가진, 평화로운 가을날의 나른함이 몸에 묻은 듯한 그런 개가 하나 있었다. 그 개는 어느 가을 날 갑작스럽게 내 삶에 찾아왔고, 꼭 10년을 채우기 한 달 하고도 4일 전에, 올 때보다 더 갑작스럽게 떠났다.

 

그날의 아침은 분주했다. 오전 수업이 있던 나는 급하게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침으로 먹고 있던 두부를 자신도 먹고 싶다며 품으로 파고드는 개에게 손톱만큼의 두부를 떼어 주었다. 그리고 개가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떨어진 걸 보고 엄마께 약을 타오라고 부탁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래서는 안됐던 거였다. 수업에 늦더라도 내가 병원에 갔다 왔어야 했다.


당시 나는 학교 밴드 동아리 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축제 무대에 서는 전 날이었기 때문에 함께 공연하는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고, 초대 가수로 온 에픽하이의 공연을 신나게 즐기고는 동아리방으로 돌아와 동아리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는 안됐던 거였다. 연습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최소한 집에 안부 전화라도 했어야 했다. 밤 늦게 엄마께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개의 시간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하루치 약을 건너 뛴 것은 그 애에게 치명적이었다. 빠르게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산소 포화도는 점점 떨어졌다. 병원에서 보호자는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죽도록 아픈 와중에도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병실에 두고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죄책감으로 남을 줄 알았다면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새벽, 병원에서 오는 전화를 받고 몇 번이나 뛰어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전화를 받고 갔을 때 내가 사랑했던 그 개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 애가 노견이 되었을 때부터, 그러니까 사람 나이로 중년을 넘겼을 때부터 나는 항상 이별을 생각해왔다. 개의 시간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니까. 그 개의 종 특성상 기관지가 약하니까. 이 작고 가볍고 따뜻한 생명이 언제 나를 떠나게 될지 항상 두려웠다. 그래서 개가 나와 함께 있을 때에도 개가 없는 삶을 자주 상상하곤 했다. 두렵고 슬퍼도 그래야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별에는 면역이라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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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을 때, 그 애는 이미 강아지는 아니었다. 동물 병원에서 추정하길 세 살 반 정도 되었을까 하는 나이였다. 아빠의 지인이 고깃집 앞마당에서 자라던 그 개를 데려와 키웠고, 자신이 바빠서 잘 돌보지 못하니 이런저런 훈련소를 전전하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애는 사랑받는 걸 어색해 했다. 아무도 그 애를 돌보지 않아 몸무게는 4킬로에 가까웠고(포메라니안의 정상체중은 2.5kg-3.2kg이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털도 풍성하지 않고 빈약했다. 사람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쓰다듬으려고 손을 살짝만 들어도 움츠러들었다.

 

그랬던 개는 우리 집에서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가을 햇살을 닮은 황금빛 털은 몽실몽실 차올랐고 나와 함께 누워 내 눈을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이기에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애정 어린 말을 건넬 때면 귀를 젖히고 까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정말 커다란 행복이었다.


*


나와 개는 대부분의 밤을 함께 보냈는데, 그 애는 꼭 내 발밑에서 자려고 했다. 내 손이 닿는 거리에서 함께 잠을 자고 싶었던 나는 몇 번이고 베개 위치를 바꿨지만 어느 순간 보면 발밑으로 가서 자고 있었다. 고집불통이라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잠에 들고는 아침이 오면 언제 자리를 옮겼는지 내 머리맡에서 코를 고롱고롱 골며 자고 있었다. 때로는 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내려가 아침밥을 달라며 나를 깨웠다. 침대 밑으로 내려갈 줄은 알아도 올라올 줄은 몰랐는지 침대에 매달려 짖으면서 말이다.

 

식탐이 많아 밥을 급하게 먹어 사료가 목에 걸린 적이 많았기 때문에 물에 불린 사료를 주고 옆에서 주의를 주면서 밥을 먹게 했다. 천천히 먹어. 급하게 먹지 마. 매일 말해도 여전히 허겁지겁 먹었지만.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내 옆에서 개는 부른 배를 자랑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허리가 살짝 휘었는지 일자로 걷지 못했다. 머리는 앞을 향하고 있어도 엉덩이는 이상하게 오른쪽으로 30도 치우친 각도로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종종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뒤를 확인했다. 힘들면 멈춰서 안아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개를 안고 걷다 보면 그 애는 따뜻한 품과 불어오는 바람에 잠이 오는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 애는 어째서인지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개들은 장난감이나 하다못해 양말 같은 것들을 던져주면 뛰어가서 가져오고 물어뜯고 신나게 놀던데, 그 애는 그냥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걸로 대체 뭘 하라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애는 사람과 노는 걸 가장 좋아했다. 처음엔 눈도 잘 못 쳐다보더니, 멈추지 말고 자길 쓰다듬어 달라고 손 밑으로 코 끝을 집어넣곤 했다.

 

개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행복을 많이 배웠다. 그 애도 나만큼 행복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좋은 반려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지금처럼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넘쳐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지 못한다. 그때 저걸 알았다면 더 잘해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며 그 애를 외롭게 둘 때가 많았다. 개의 세상은 함께 사는 가족이 전부이기 때문에, 만약 그 애가 행복하지 않았다면 모두 내 탓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 애가 행복했다면 내가 더 큰 행복을 알려주지 못해서 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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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개와 함께 산다는 건 하루하루 이별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이가 들수록 황금빛 털은 차츰 희어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생기듯이 개의 얼굴에도 하얀 털이 자라났다. 비슷한 나이 대의 다른 개들보단 나았지만 약간의 백내장이 와서 새카맣던 눈의 중앙에 흰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밤 갈색이었던 코도 조금은 연해졌다. 그 애를 보면서 어쩌면 늙는다는 건 희어진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 에는 작고 새하얀 단지가 되어 집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일 년은 믿을 수 없게 슬펐고 자주 울었다. 나의 일부가 떼어져 나간 기분이었고 다시는 그 작고 예쁜 아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년간 같이 살았던 공간에 홀로 있으면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문을 열면 거기에 서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길에 지나가던 개들만 봐도 눈물이 나던 시간이었다. 그 애가 살아서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의 최대치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생각, 끝까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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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까지 함께했던 반려인들은 둘로 나뉜다고 한다. 또 다른 반려동물을 데려와 함께 살든가 혹은 평생 반려동물과 함께 살지 않든가. 나는 아마 후자일 것이다. 나는 개나 고양이 혹은 어떤 동물과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개와 함께 사는 것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다가올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그를 보내고 나서의 삶이 갖게 될 슬픔과 죄책감이 어떤 것인지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그 애가 지금도 나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 꿈에 찾아오기도 하는데, 다치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다거나, 다시 한번 나를 떠난다든가 하는 종류의 꿈이다. 잠과 현실의 경계에서 발자국 소리 혹은 숨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올 때도 있고, 잠결에 개의 이름을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무너진다. 부채감과 죄책감,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애틋함이 한 데 섞인 감정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그날 그 애를 그렇게 떠나 보내고 예정되어 있던 축제 공연을 하러 갔다. 아니 하러 갈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약을 엄청나게 먹고 무대로 올라갔다. 그날  새소년의 ‘난춘’이라는 곡을 부르다 한 구절에서 목이 메었다.

 

 

내가 너의 작은 심장에 귀 기울일 때

입을 꼭 맞추어 어제에 도착했습니다.

 

 

개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어렴풋한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여 몇 번이고 함께 있던 어제로 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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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개에게 많은 걸 빚졌다. 그 애의 조건 없고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나를 이만큼까지 걸어오게 했으니,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보낸 시절을 기억하며 다시 만날 날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것뿐이다.


나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도착해 있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간절하게 믿는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그 애가 마중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달려가 그 애를 먼저 알아보고 꼭 안아줄 것이다. 네가 준 사랑 덕에 이만큼 잘 살아왔다고, 고맙다고,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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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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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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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xmiel
    •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저희 집 강아지도 밤에 꼭 발치에서 잠을 자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보니 에디터님은 누구보다 강아지에게 따뜻한 분이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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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na
    • 지난주 키우던 고양이를 떠나보내서 글을 읽고 그 친구 생각에 펑펑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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