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대로 된 '찌질이'의 서사란 - 드라마 '퓨처맨' [TV/드라마]

글 입력 2020.09.0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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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차려 놓고 나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같이 볼 무언가를 찾으려고 왓챠를 5분쯤 뒤졌을까, ‘오피스’와 ‘프렌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전혀 다른 것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우연히 이 드라마를 틀었고, 곧 확신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제대로 된 코미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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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밥 먹을 때 보는 것에 대해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나름의 기준이 있다.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깊이가 없으면 안 된다. 제작자가 별 생각이나 철학 없이 만든 듯한 티가 나는 작품들은 흥미롭지 않다. 길이가 너무 긴 것도 안된다. 밥을 다 먹고도 두 시간씩 앉아서 화면만 보다가 밥그릇을 말리는 일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대사를 몇 줄쯤 놓치더라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너무 성적인 장면은 나오면 안 된다. 이 외에도 수없이 자잘한 항목이 존재하기 때문에 밥 먹는 시간에 꼭 맞는 드라마(앞서 말한 것처럼 너무 길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는 보지 않는다)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약 일주일 동안 <퓨처맨>을 밥 친구 삼아 본 감상을 말해보자면, 이 드라마가 밥 친구로만 남기에는 약간 아쉬울 정도로 꽤 잘 만든 코미디라는 것이다. 시간여행, SF, 판타지가 모두 조금씩 섞여 있고, 설정은 흔한 슈퍼 히어로물 같기도 한데, 거기에 B급 감성이 너무나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주인공 ‘조시 퍼터맨’은 그간 우리가 봐온 찌질한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연구소의 잡역부로 일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한집에 사는 조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이오틱 워즈’라는 게임뿐이다. 몇 달간 고전하던 83레벨에서 이긴 뒤 승리의 기쁨에 취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조시는 자신의 방에 갑자기 나타난 게임 속 캐릭터들과 마주한다. ‘타이거’와 ‘울프’는 자신들이 바이오틱 워가 실제로 일어나는 미래에서 왔고, 바이오틱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이 게임을 과거로 보냈으며, 유일하게 83레벨까지 온 조시가 ‘구원자’라고 설명한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퓨처맨>은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주인공이 실은 세계를 구원할 희망이라는 흔한 설정의 드라마다. 하지만 <퓨처맨>은 같은 설정을 가진 많은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보통 이런 부류의 작품에서 (대부분 남자인) 주인공의 ‘찌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인물에 공감하고 이입하게 하는 도구로 쓰인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주인공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능력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주인공 하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조력자를 자처한다는 설정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러나 조시의 ‘찌질함’은 시즌 3개가 지날 동안 전혀 긍정적인 특성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찌질해 보이는 모습이 귀엽게 표현된다거나, 혹은 주인공만의 매력인 것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타이거와 울프의 임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조시가 주인공에 걸맞은 인물로 거듭나는 것은 결국 일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며 그가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이다. 인물 자체에 부여된 설정이 전혀 호감을 불러일으킬 만하지 않은데도 작품을 보면 볼수록 점점 그를 응원하게 된다는 점에서 <퓨처맨>은 전형적 인물로 빠지기 쉬운 조시라는 캐릭터를 훨씬 매력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낸 드라마였다.

 

<퓨처맨>은 이런 설정을 가진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에피소드를 진행하며 이 시선을 계속 유지한다. 이는 시즌 2의 에피소드 4와 시즌 3의 에피소드 3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시즌 2에서 세 인물은 바이오틱 워를 막기 위해 자신들이 행한 일 때문에 달라진 미래에 도착한다. 인류는 화성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무리와 모든 기술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무리로 나누어지는데, 두 번째 무리는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다가 자신들의 사회로 들어오려는 이들을 ‘방랑자’라고 부른다. 여기에 반문하는 외부인 울프의 대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사회가 ‘방랑자’를 대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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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즌 3에서는 도망자 신세가 된 주인공들이 시간여행장치를 이용해 17세기 퀘벡으로 도망친다. 조시의 대사는 <퓨처맨>을 만든 이들이 고민하고 지향해온 바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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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웅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슈퍼 히어로 장르의 이야기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흔한 슈퍼 히어로물처럼 시작했던 <퓨처맨>의 마무리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B급 코미디 감성이 짙고, 너무 길지 않아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퓨처맨>은 식탁 위에서 보기 딱 좋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인물을 뻔하게 그려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불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장면과 대사를 보면 <퓨처맨>을 그저 그런 코미디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SF와 시간여행 소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시도해보아 주었으면 한다. 굳이 밥 먹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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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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