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초인 1 - 이육사의 '광야' [문학]

백마탄 초인과 망치를 든 위인
글 입력 2020.09.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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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曠野)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내 아는 초인이 둘인데, 하나는 동양 초인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 초인이다. 아마 그 생김새가 다를 것이라 생각건대만, 그 외 무엇이 어찌 다른지는 아직 골몰해본 적이 없다. 초인이란 인간을 초월한 그 무엇이니, 두 초인이 모두 더 이상 인간 같지 않은 무언가라고 말해보는 것이 가장 명확한 발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초월한 존재는 역설적으로 인간이어야 한다. 초월이란 아득한 상승을 뜻함에, 초월은 여기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 너머로 나아가는, 그 아득한 힘과 까마득할 방향을 가리킨다.


고로 초인이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 존재이되, 동시에 그 존재의 공란에 들어갈 것이 인간 뿐이기에 그 명확한 의미는 대략 길을 잃는다. 과연 그러할 것이, 인간이 아니고서야 그 무엇이 인간을 초월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옹호의 발언이 아닌, 초월의 대상인 인간의 불가지 함을 가리킨다. 그렇담 떠오르는 질문이란, 인간의 무엇을 두고 존재자는 ‘인간’을 초월할 수가 있는가 하는 멋모를 질문이다. 그 초월이 먹이사슬 속 힘의 논리를 가리키지는 추호 않을 것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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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인간 아닌 존재자가 하나 있나니 그의 이름은 신이다. 그것은 사실 초월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에서 시작하여 상승한 존재가 아닌 그저 그렇게 뛰어나도록 존재하게 된 개념적 존재, 완전이라는 이상 理想 개념의 형상화된 존재이다. 고로 그는 신이되 결코 초인으로 불리진 못하리다. 그렇담 신은 인간의 그 무엇을 초월했다고 여겨지는가. 아니, 그의 무엇으로 우리는 마치 초인을 숭배하듯 그를 숭배하는가 내게 묻는다. 그렇담 나오는 대답이란 우리의 모든 나약함뿐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나약함을 이미 가지지 않는 신이 왜 하필 인간을 초월한 존재자로 여겨지는가 묻는다면, 그 까닭이란 신이 우리와, 아니 우리가 그 신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창조물이자 창조자인 신은 하필 우리와 닮았다. 그는 이족보행을 하는 갈색 머리의 동물이자 오욕이 없는 형상. 그렇담 우리가 바라는 초월은 그를 닮아 오욕으로부터 작별하고자 하는가, 존재의 필연인 모든 욕구로부터의? 그렇다기보다는, 그 욕구의 필연이 자아내는 질긴 영속성과 구속력을 가리킬 것이다.


내 아는 초인이 둘인데, 하나는 내 나라의 초인이고 다른 하나는 먼 나라 초인이다. 둘은 아마 그 생김새가 아주 다를 것이라 믿건대만, 그 외 무엇이 어찌 다른지는 영 생각이 재바르지 못하다. 어이 됐건 둘 모두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뜻할 것임에, 까닭인즉 이런 이상스런 질문이 오직 나와 나의 동포만이 가질 어리석은 꿈인 때문이다. 인간이 아니고서야 인간의 그 무엇이 초월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 무엇으로 초월이란 이 밥 안 되는 것을 꾀함 직하게나마 될런가. 인간 초월이란 오직 스스로 인간만의 꿈이다. 영영 꿈 바닷속에 사는 우리의, 본질인 꿈이라 함이 옳다.


인간의 그 무엇이 초월의 대상인가, 그것은 왜 초월의 대상이 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꾀해봄 직한 것인가. 대략 이런 쓸모 적은 산파, 인간의 질문을 연거푸 토해내다가 보면, 이렇듯 대략 초인으로의 초월이란 우리 인간이 스스로 못마땅한 어떠한 보편적인 면모를 끊어내고, 딛어 일어서고, 아주 영영 이별하고자 하는 하나의 바람일밖에 수 없단 생각으로 막음한다. 그때 그 못난 면모가 각각 그 어떠한 바람으로 형상화되어있는가. 이것이 오직 궁금할 만한 타당한 질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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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의 초인은 더럽혀진 적 없는 개벽의 땅에 왕림하실 영영 천고 뒤의 인물, 구원자 메시아의 현현이다. 문학에 대한 외재적 해석을 그리 좋아하진 않건마는, 그의 시는 시대사에 착 안기어 읽힐 때 가장 맛이 좋다고 느낀다. 그가 기원하는 초인은 능히 온 누리의 억압을 끊어낼 이, 생각하기론 실로 불가한 이일 것이다. 누가 있어 겨레를 단결해 열세를 뒤집고 적을 완전 섬멸하고, 그로써 적에게 두려움을 선사하여 악의 뿌리를 모조리 태워버릴 수가 있을 것인가.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분명 그는 초인이라 불리울 것이다.


이때 시인 자신은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다만 뿌리는 인물에 지나지 않을 따름으로서 그 스스로가 초인 되리라곤 못하리다. 시인 그는 초인을 부르는 이, 사실은 일으키려는 이. 마을과 마을, 온 주점과 아이들 사이로 전해 내려오는 그 노래란, 영웅의 재목을 발현시키려는 예언 같은 노래일 것이다. 이 밥도 안 되는 가난한 씨앗인 노래란, 까마직한 영웅의 재목에 물을 붓고 그 마음에 꿈이라는 씨앗을 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백마 타고 오실 초인은 천고 뒤의 존재. 그것은 천고 뒤 언젠가에나 오실 존재이니, 천고에 어쩌면 다시 천고를 거듭하실 영영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렇담 기다리는 이는 신인가. 그러나 누가 있어 새 기원을 밝히고, 온 세상의 달력을 갈아치울 것이냐. 이 세계에 또 누가 있어 종교라는 역사의 탑을 다시 세워 올릴 것이냐. 홀로 능히 수백 수천만의 적을 섬멸하고, 혹은 온 겨레를 하나로 단결시킬 이는 그 이 하나뿐이리다. 기적을 지닌 자, 인간 상위의 존재이자, 인간의 숭배받을 이이자, 인간의 첫 아버지. 인간은 단결에 말미암아 그 가진 힘을 보이지만, 그때 이 땅에 필요했던 가장 온전한 단결은 기적 혹은 권능으로서나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기적과 권능을 가지신 이는 그러나 신인가 초인인가. 존재했던 뭇 영웅 위인의 이름을 끼워 넣어 보자니, 누구래도 마땅치 않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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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래는 무엇을 위하는 것이 되는가. 그것은 신을 기다리는 찬가인가, 전설과 영웅과 위인을 무르익게 할 예언의 노래인가. 이것이 시에 대한 내 첫 질문이었다. 왜냐 하니, 바라던 자유에 초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부르는 초인의 노래, 그 기림의 노래를 거머쥘 주인도 없이 바라던 자유는 찾아버리었다. 그리고 초인 없이 일어난 그 자유가 어떤 궤적을 남기었던지, 우리는 보고 들어 안다.


그의 가난한 노래가 기원하는 초인의 낯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영영 알 수도 없이, 범람하는 역사의 물결 속에 수몰되었다. 육사가 노래로 빚어낸 형상은 무엇을 초월한 존재인가. 인간 한계, 인간이 갖는 나약이라는 그 무궁무진한 공란에는 오욕이 있고 필멸이 있고, 또 정신의 유약함이 있다. 또 인간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인 권능에는 벼락이 있고 파멸이 있고 저주가 있으며 역병과 재해가 있으니, 그것은 곧 만인을 두려움으로 복종케 할 모든 막대한 힘이다.

 

육사의 초인은 무엇을 초월하였을지. 그가 그리는 초인에게는 인간에게 있는 것이 제거된 것일까, 혹은 인간에게 없는 것이 주어진 것일까. 그러나 후자는 영영 있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함이니 나는 전자를 논하련다. 그렇담 그가 그리는 초인에게는 무엇이 제거된 것일지. 그로써 그 초인은 어떻게 누리와 겨레에 불가한 자유를 선사하셨을는지. 이제는 영영 알 수도 없이, 그 초인은 역사의 물결 아래 침몰하였다.

 

역사의 물결 아래에 잠겨 계신가, 혹은 아직 머언 천고를 넘어 오고 계신가. '다시 천고의 뒤에' 오실 당신 모습이란 내가 또한 흠모하는 모습. 이제 내 흠모하는 초인의 그 모습을, 흰 얼굴의 큰 눈을 한 모습 속에서 찾아보아야 하겠다. 두 초인, 그들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면 형제일지도 모르기에. 육사의 초인도 니체의 초인도 여기 우리의 불가한 실현, 백마탄 초인과 망치를 든 위인은 모두 인간의 자식일 터이니 말이다. 지금 눈이 내린다, 여전히. 시대와 세기의 위로, 자꾸만 눈이 내린다. 이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실 당신은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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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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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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