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레타 거윅의 뉴욕 영화들 [영화]

길 위를 배회하는 젊은 예술가 -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글 입력 2020.09.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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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노아 바움백 / (오) 그레타 거윅

 

 

영화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을 연출한 그레타 거윅의 영화를 좋게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연기와 각본으로 참여한 노아 바움백의 영화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감독 데뷔 이전부터 연인인 노아 바움백과 각본 활동을 하며 창작의 열의를 보여준 그레타 거윅의 영화들은 대부분 자전적이고 공통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영화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고향을 떠나온 청춘의 불안정한 뉴욕 생활기’


10대의 울타리를 벗어난 20대는 누구나 불안정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꿈이 없어 불안하거나 꿈은 있는데 확신과 재능이 부족해 불안하다. 물론 돈도 없다. 이 부족함에서 오는 불확실성은 미래를 알 수 없어 생기는 불안함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때의 정서는 길 위에 내던져 배회하는 심정이 된다.

 

꿈을 위해서든 돈이 없어서든 거주지가 계속 바뀌는 것도 20대의 불안정한 특징이다. 아무튼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숙명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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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란시스 하>

 

 

그래서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계속 뛰어다닌다. 그녀는 여러번 거주지를 옮기고 음악에 맞춰 계속 달리는데, 중간중간 춤을 춰가면서 해방의 몸짓과 춤에 대한 사랑을 마구 표출한다. 무용수로 성공하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뉴욕에서 살고 있지만 일, 사랑, 우정 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프란시스는 충동적이고 약간의 허풍도 가지고 있다.


<프란시스 하>는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냈다. 가령 레이디 버드의 고향으로 나왔던 새크라멘토는 그레타 거윅의 실제 고향이며 프란시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꿈을 위해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에서 고군분투하게 되는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매우 사실적이고 캐릭터에 생생함을 불어 넣는다. 그다지 웃지 못할 상황에서도, 그레타는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밝고 재미있게 만든다.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것도 아주 흥미로운 지점인데, 무채색 화면은 프란시스가 처한 암울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감정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다. 이는 원초적인 정서에 집중하게끔 만들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상황이 주는 씁쓸함과 벼랑 끝에 있는 것처럼 불안한 20대의 마음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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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주인공들은 자리를 잡지 못해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고, 그러다 보니 인물들 모두 어떠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다. 일단 두 영화가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뉴욕은 그 도시 자체가 주는 환상이 있다. 자기 일에 능력 있고 잘나가며 인기 많은 뉴요커의 이미지.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은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채으고자 허풍을 떠는 인물을 주로 그렸다.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는 분수에 맞지 않는 고급 아파트의 월세를 감당하느라 가랑이가 찢겨 나가기 직전이고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브룩은 실제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일을 벌이면서 과장된 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하지만 허풍이란, 없는 것을 거짓말로 만들어 내거나 조금 있는 것을 과장으로 부풀리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과 이상에는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고 공허함은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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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레이디 버드>

 

 

뉴욕이라는 대 도시에서 방황하던 젊은 예술가들은 영화 말미에 우정이 회복된 후 주체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프란시스는 절친 소피와, 트레이시는 브룩과, 여기서 더 보태자면 두 영화의 뿌리가 되는 <레이디 버드>에서는 엄마와의 화해를 통해 성장한다. 로맨스를 통한 구제가 아닌 우정을 통한 주체적 성장을 그렸다는 부분 역시 훌륭한 페미니즘 영화의 역할을 해낸다.

 

*

 

이 영화를 감상한 나의 시점 역시 길 위에 있는 상태다. 일단 길 위에 들어서 보았지만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지금까지 왔던 길을 묵묵히 가다가도 문득 뒤를 돌아보며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망설이곤 한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어떠한 이상을 그리면서 행복한 꿈을 꾸기도, 깊은 불안감을 빠지기도 하며 감정의 기복이 왔다 갔다하는 요즘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인생에 맞는 해답이 다르게 주어진다.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도 바로  이러한 ‘주체성’이다. 트레이시는 그토록 바랐던 문학 동아리를 나와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소설을 쓰고, 프란시스는 자기가 연출한 무용으로 인정을 받아 자기 집을 장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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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 라는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이름표를 만들어 우체통에 ‘프랜시스 하’까지 끼워 넣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해결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직 미완성으로 보이지만 여기까지 잘 버텨낸 이름이며, 트레이시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역시 현재 쓰이고 있는 미완성 소설이다.

 

길 위에 있는 이들은 모두 미완성이지만 영화는 주체적으로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건넨다. 지금도 길 위에서 치열하게 달리고 있을 프란시스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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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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