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런 어른 - 완득이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똥주. 내게도 그런 어른이 있었다면, 또는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글 입력 2020.09.0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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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마, 도완득!"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득이>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한다. 고등학교 때 수업 내용으로, 혹은 책으로, 그것도 아니면 영화로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완득이>를 처음 접했다. 교과서에 짤막하게 나온 글과 함께 선생님이 보여준 영화로. 그때에도 난 완득이를 부러워했다. 완득이 옆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완득이가 담임선생님으로 '똥주'를 만난 일을 부러워했다.

 

완득이는 학교에서 잠만 자고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그 시절 일명 학교에서 찍힌 양아치 같은 학생이었다. 그런 완득이의 담임선생님 동주, 이른바 '똥주'는 기초 생활 수급자인 완득이네한테 밥을 얻어먹기까지 하는 선생님이지만, 어느 때나 완득이를 놓지 않았다. 동남아시아 사람인 완득이의 친엄마가 완득이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완득이가 킥복싱 길에 들어서게 도와주고, 그리고 완득이네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된 것도, 다 똥주 덕이었다.

 

어떻게 보면 똥주는 완득이의 제2의 아버지 같은 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때론 친구 같은 행동을 보이다가, 원수 같은 행동을 하다가, 다시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완득이를 이끌어주는 똥주. 그런 선생님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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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른


 

고등학교 시절, 난 생각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다. 아마 행동 하나하나에 고민이고 생각이었던 거 같다. 그런 여러 생각들이 많아서 오히려 행동을 하지 못하겠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영화 <완득이>를 봤을 때, 동주 선생님 같은 분이 나를 저렇게 이끌어줬으면 했다. 스스로 일어나서 하나하나 헤쳐 나아가기엔 눈앞에 수풀들이 들춰보기엔 너무 무겁고 만지기엔 기괴해 보였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어른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당시엔 몰랐지만, 내게도 분명히 동주 선생님 같은 분이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교회 전도사님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대답해 주고, 같이 고민해 주던 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해결해 주진 못했지만, 기괴해 보이는 수풀을 같이 들춰볼 수 있게, 무거운 걸 들 수 있게 힘을 빌려주신 분이었다.

 

그 전도사님 덕분에 무사히 청소년기를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내 곁에 있었기에 그 수풀을 지나쳐올 수 있었구나 싶다.

 

고등학생 때도 날 의지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성인인 지금 그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과연 내가 의지 될 수 있을 만한 존재인지 겁날 때가 종종 있다. 과연 내가 동주 선생님 같은, 전도사님 같은 의지되는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떠오른다. 그 생각에 '애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자답했을 때 더 막연해진다. 대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만약 내가 이끈 방향이 잘못된 방향이었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들 때문에 처음엔 눈앞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섣불리 손을 뻗지 못했다. 스스로도 미숙한데 누가 누굴 이끌어주겠는가.

 

그러나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일어났을 때, 그 후 여러 친구들을 만났을 때 깨달았다. 내가 이끌어줘야 해, 그런 생각은 자만이었다는 것을. 의지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것, 두 막대기가 서로에게 비스듬히 기댈 때 비로소 의지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나도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우리는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깨달았다고 해서 막연해지고 막막해지지 않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막막할 때가 있고 막연해질 때가 있고 무서울 때가 있다. 그래서 요새 나는 또 그런 생각들이 들 때면 전도사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가 내게 어떻게 손을 뻗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와 6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던 그가, 왜 그땐 그렇게 어른으로 보였을지 생각해보고 그의 행동을 섬세히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무심코 그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렇게 나는 또 성장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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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는 어릴 적, 혹은 지금 당신을 옆에서 이끌어줬던 사람이 있는가. 지금 당신에겐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지금도 난 어른이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하면 여전히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말문미 막힌다는 것은 앞으로 내가 알아가야 할 게 많다는 뜻이고, 그렇게 점점 알아간다면 분명 뒤돌아봤을 때 성장해있는 내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수풀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당신은 어른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또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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