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7. 장래희망을 찾아서

너는 꿈이 뭐니?
글 입력 2020.08.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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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7. 장래희망을 찾아서


 

어린 시절에는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꿈꾸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사실 그 시기에 가장 좋아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으로 연결 지어 생각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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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콩쿠르를 열심히 준비할 때에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미술 학원을 매일 같이 출석할 때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던 해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중학생 때는 줄곧 심리 상담가가 하고 싶었다. 상담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단순히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힘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이유였다.


이 꿈들을 포기한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피아니스트: 10살 때 처음 나간 콩쿠르에서 특상을 받고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는 꿈에 젖어 다음 콩쿠르를 아주 열심히 준비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왕창 실수를 해버리고 집에 오는 길에 엉엉 울면서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화가: 8살 때 심리치료 겸 시작한 미술이 잘 맞아서 몇 년 동안 배우며 몇 번의 상도 탔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리는 동년배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공부를 핑계로 미술을 그만두었다.

 

선생님: 그냥 갑자기 흥미를 잃었다.

 

심리 상담사: 감정이입을 매우 잘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고민은 잘 들어주지만 이것이 오히려 심리 상담사 일을 할 때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게다가 심리학과가 문과 안의 이과 학과라는 사실을 알고는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아주 잘하지 않으면 그저 포기해버리는 이 지독한 ‘게으른 완벽주의자’ 성향이 태생적인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이후 이렇다 할 꿈도 없으면서 욕심만 가득한 채로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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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나를 포함한 많은 어린 학생들의 롤 모델은 한비야였다. 물론 현재는 여러 논란들로 인해 당시의 명성은 잃었지만, 그 당시 한비야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라는 말을 여러 책과 강의에서 반복했다.

 

한비야를 참 좋아했던 어린이로서 그 말이 가슴에 박혔고, 장래희망이라고 하면 응당 ‘가슴이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내 가슴이 뛰는 일을 찾으면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장래희망이, 꿈이 없는 내가 한심스럽게 여겨졌다. 당시 나는 견디기 힘든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극심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었는데 확실한 목표가 생기면 이 무기력을 떨쳐내고 열심히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TV나 책에서 떠들어대는 ‘가슴이 뛰는 일’ 같은 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

 

하루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멘토 역할을 해주셨던 과외 선생님께 이런 마음들을 털어놓았다. 다들 가슴이 뛰는 일을 찾으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고, 그런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신 과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로 TV에 나오고 책을 쓰는 이유가 뭔지 아니? 그렇게 사는 사람이 사실은 거의 없어서야."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맞는 말이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말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론 '꿈이고 뭐고 일단 대학부터 가자'의 모드가 되어 공부만 열심히 했다. 훗날 꿈이 생겼는데 과거에 하지 않은 공부가 발목을 잡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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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대학에 가면 무언가 답이 보이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는 달리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갓 스물하나였던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나마 잘하는 것이 있어도 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게 확신이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진심으로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일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하는 '닭과 알 중에 누가 먼저인지' 같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나의 흥미와 적성에는 영 맞지 않는 과에 진학을 해서 그런지 더더욱 그러했다. 문과는 과 살리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대체 이 과를 졸업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주변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자신에 대한 질문들과 세상에 대한 질문들을 수없이 던졌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나누었다. 비관과 회의로 끝나는 날도 있었고 근거 없는 낙관으로 끝나는 날도 있었다. 뭐가 되었든 불안한 시절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내가 미래에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로 진출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나에게 있어서 유의미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그 행위까지 가는 동기와, 그 일을 하면서 조금씩 변화할 나의 내면적인 모습과, 이후 낳게 될 유의미한 가치와 결과(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를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일을 하며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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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느낀 것은 모두가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어떤 친구들은 일과 자신의 개인적 삶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었다.

 

일은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가꾸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내가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삶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우듯, 일은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나는 전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미완의 나를 완성시켜 줄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했던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된다면 오히려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도,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진입도 어려우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것도, 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람이 치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나라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열정만 가지고 노력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가까운 친구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 친구가 n 잡 시대에서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돈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그걸 본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본업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은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가치도 현실도 버릴 수 없었던 욕심 속에서 나름의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


현재는 나의 관심분야에서 많이 멀어지지 않은 분야에서 적당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자리를 잡게 되면 마음이 가는 일들을 혼자서 조금씩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물론 아직 취업 준비조차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여전히 ‘가슴이 뛰는 일’은 찾지 못했다. 경험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고 혹은 ‘가슴이 뛰는 일’ 같은 건 애초에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전만큼 그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뭐가 되든 무작정 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그저 무던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무엇도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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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마음이 어쩌면 패배주의에서 비롯한 건 아닐까, 내가 스스로 나의 한계를 결정짓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야망을 가지고 확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감당할 수 없는 큰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나에게는 필연적인 실패로 향하는 길처럼 느껴진다.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 이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 성향이 그렇다.)

 

나는 자라서 내가 될 것임을,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무엇도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평화롭다. 어딘가 한 지점에 깃발을 꽂아 두고 그곳을 향해 달리는 것보다 내가 꾸준히 갈 수 있는 방향만을 정하고 가고 싶다.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때로는 멈추어 가기도 하는 그런 삶을 그리다 보니 이제야 비로소 미래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이게 바로 나의 장래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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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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