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갗에 새기고픈 이야기가 있나요? [도서]

구병모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글 입력 2020.08.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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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햇살 좋은 연남동 책방에 갔다가 홀린 듯이 구병모의 소설책을 샀다.

 

예전부터 구병모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나온 그녀의 신작 표지가 너무 예쁜지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덥석 그냥 사버렸다. 아주 우연히 만난 그 소설에서 나는 또 아주 의외의 내용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타투'에 관한 이야기였다. 요즘 타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누가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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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샌드위치 구성


 

소설은 구성이 매우 독특했다. 복합/입체적 구성의 형식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런 단어들로는 이 소설의 구성이 설명되지 않을 것 같아 '샌드위치 구성'이라고 직접 이름을 붙여보았다.

 

중년 여성 '시미'의 이야기가 긴 감자샐러드처럼 이어져있다고 치면 그 중간중간에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식빵처럼 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그 살인사건은 이상하게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다. 때문에 아 이 소설 대체 장르가 뭐야, 싶은 의문이 든다.

 

감자샐러드인 줄 알았는데 식빵이 껴져 있는 거 보면 빵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시미'라는 중년 여성의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살인사건 나오는 거 보면 추리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또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하다는 말이다.

 

근데 소설은 감자샐러드 단품요리도 아니고 빵 자체도 아니었다. 작품은 감자샐러드에 빵을 끼운 '샌드위치'였다. 그러니까 드라마와 추리가 섞인 '복합' 판타지 소설이었다.

 



나를 지켜주는 아픔

 

소설에는 결핍이나 아픔을 지닌 존재들이 쭈욱 등장한다.

 

아버지의 학대를 받은 '화인', 갑질 사장의 횡포에 시달리는 직원, 집착하는 남자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여자, 그리고 아들의 부재로 아파하는 '시미'. 시미를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아픔을 덮기라도 하려는 듯 살갗에 타투를 새겼는데 놀랍게도 가장 위급한 순간에 처했을 때마다 다름 아닌 그 타투들이 살아나 그들을 도와준다.

 

이는 단순히 판타지적 요소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은 각 인물들이 아픔 속에서 얻은 힘을 비유한 것은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타투의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과 각 인물들이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교해보았을 때, 위급상황마다 살아나던 '타투의 힘'은 곧 '아픔을 딛고 성장한 각자의 내재된 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그들을 지켜준 것이 다름 아닌 타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미는 그동안 망설이던 타투를 하러 간다.

 

여기서 타투이스트는 시미에게 타투란 단순히 살갗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의 의미를 초월해 심장에 수를 놓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미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자신을 아프게 하던 아들을 마음에 새기듯이 손목에 별 모양의 타투를 새긴다. 손목에 새겨진 별은 날아올라 밤하늘을 밝게 수놓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시미 역시 앞서 아픔을 몸에 지닌 인물들처럼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손목에 별을 새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몸과 마음에 새겨 위급할 때 자신을 지켜주는 힘으로까지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살갗에 새기고픈 이야기가 있나요?


 

만일 내 살갗에 수를 놓는다면 어떤 것을 놓아볼까 생각해보았다. 가족들의 띠별 동물, 선물 받았던 주황색 장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바다거북이나 안경, 낮달, 백합, 흰색 깃털 두 개, 깃펜, 유화물감 등등... 새기고픈 것이 너무 많다. 아마 피부가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 핸드폰 용량처럼...

 

어쨌거나 하고 싶은 도안을 생각해보니 대부분이 '사람'과 관련된 것이었다. 소중한 혹은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흔적들이 나에게 가장 새기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보이지 않지만 이미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문양들을 새기고 싶게 한 이들과의 흔적이 내 피부 이곳저곳에 다닥다닥 붙어 결국 나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내게 새기고 간 흔적이 화인의 샐러맨더처럼, 시미의 손목에 빛나는 별처럼 날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은 이들도 한번씩 생각해보면 좋겠다. 살갗에, 아니 심장에 수놓고 싶을 만큼 자신을 아프게 성장시킨 이야기가 무엇인지.

 

 

*대표 이미지 출처_ 한예슬 인스타그램, 본문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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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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