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마 우린 서로를 이해 못할 거야 - 연극 '미래의 여름'

글 입력 2020.08.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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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래’는 호기심도 많고 말도 많은 초등학교 4학년 소녀다. 부모님은 그런 그녀가 귀찮은지 방학만 되면 시골에 사는 ‘동아’ 고모네로 미래를 보낸다. 노처녀인 고모는 아빠와 동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만 미래에게만큼은 영어 노래도 많이 알고, 만화도 많이 아는 최고의 어른 친구다. 이번 여름방학도 고모와 함께 보내기 위해 시골에 내려온 미래는 고모와 고모의 유일한 친구인 동네 바보 ‘석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편 마을에는 반가운 얼굴이 찾아오는데…….

 

 

좁은 통로를 따라 입장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나오는 우르슬라의 오두막을 닮은 낡고 좁은 방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하게 빛난다. 귀뚜라미는 속삭이듯 노래한다. 바닥에는 별들이 피었다(아마도 동선을 표시하기 위해 붙여 둔 야광 스티커일 것이다). 아니, 반딧불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려나. 여하튼 더할 나위 없는 여름밤의 풍경이었다.

 

창작집단 LAS의 화제의 작품 <미래의 여름>이 무려 5년 만에 돌아왔다. 2014년 선돌 극장에서 처음 선을 보이며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래의 여름>이 이번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어 관객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7월 30일부터 8월 16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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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여름>은 특히 80년대생들에게 특별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별이 빛나는 밤'의 시그널 뮤직, 아바의 노래, 물수제비, 사루비아 꽃, 만화 잡지 '댕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등등. 이 연극 안엔 그 시절, 그때의 여름밤을 수놓은 것들로 가득하다. 나처럼 그보다 어린 세대에겐 어릴 적 ‘안녕, 자두야’ 같은 만화에서 보던 풍경이 눈앞에 재현되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대부분의 연극 무대가 일직선인 것과 달리 <미래의 여름>의 무대는 파고 들어가는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덕분에 마치 영화처럼 배우의 동선과 조명에 따라 다양한 앵글이 만들어져 관객을 작품에 더욱 몰입시킨다.

 

한편 미래를 연기한 배우 김희정 님은 잠시도 손발을 가만히 못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다. 의상과 아이 같은 말투도 제법 잘 어울린다. 동아를 연기한 한송희 님은 스며들 듯 안온한 연기 속에서도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한다. 물론 김호진 님과 김방언 님, 장세환 님의 연기도 감탄스럽다. 재치와 디테일이 담긴 연기로 연극에서 관객이 숨 쉴 구멍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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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여름>은 때로는 시 같았다가, 때로는 소설 같다. 연극인 것 같긴 한데, 한편으론 영화 같기도 하다. 귀여운 아이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정겨운 시골 마을이 배경이라고 해서 방심하지는 말아 주시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간 그만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품에 안고 돌아오게 될 테니. 서로를 쿡쿡 찌르고 간질이며 장난을 치던 친구가 냅다 어퍼컷을 내지른 기분이라면, 이 연극이 주는 씁쓸한 뒷맛의 비유로 적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주인공인 ‘미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천진난만하고 유쾌하기만 하다. 순수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풍경은 곧 가슴을 아리는 먹먹함으로 바뀐다. 우리가 잊고 있던 소외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미래의 여름>이 보여주는 세상은 편견과 차별로 가득하다. 아빠와 동네 사람들은 변변한 직업도 없이 혼자 늙어가는 이모를 안 좋게 바라본다. 아직 순수한 미래는 그런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이모는 아는 것도 많고, 다정하기까지 한 최고의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는 어른들의 험담에 맞서 이모를 변호한다.

 

하지만 그런 미래에게도 편견과 차별은 존재한다. 우리는 그걸 석우를 향한 미래의 태도에서 엿볼 수가 있다. 동아와 대화를 하다가 미래는 무심코 석우를 ‘바보’라고 부른다. 동아는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며 화를 내지만, 미래는 반성하기는커녕 고모가 자신에게 화를 낸 것에 서운해할 뿐이다. 또한 동네 아저씨가 동아와 석우의 사이를 두고 혀를 차자 미래는 고모가 석우 삼촌이 불쌍해서 돌봐주는 것뿐이라며 말하기도 한다. 돌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고 여길 때 성립한다. 말하자면 미래는 삭우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미래의 편견은 찬우와의 대화에서 좀더 두드러진다. 찬우를 동아의 남편감으로 본 미래는 찬우의 경제적 형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다. 비교적 작은 평수의 집에 산다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서울에서 살고, 대기업에 다니고, 외국에서 비싼 초콜렛을 선물로 사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찬우가 미래는 마음에 든다. 적어도 동네 바보인 석우보다는 훨씬 고모에게 어울림직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비록 배우의 천진난만한 연기 덕분에 웃으며 넘겼지만 이 부분 역시 미래가 가진 편견과 차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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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우리 반에는 소위 말하는 ‘바보’가 있었다. 어떤 표현을 쓰면 좋을지 몰라 ‘바보’라고 부르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를. 악의적인 의도는 없으니. 여하튼 중학교 3학년이 된 나와 그 애는 같은 반이 되었다. 사실 그 애는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었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화를 할 기회는커녕, 같은 반을 한 적도 없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그냥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학기 초, 어린 나는 그 애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아닌가. 어쩌면 괜한 봉사정신이 발동했을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 착한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다거나. 어쨌든 나는 그 애에게 꽤 친절하게 대했다. 당시 우리 학교는 ‘교과교실제’라고 해서 마치 대학교처럼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나는 그 애를 챙겨 함께 교실을 이동하곤 했다. 대화도 자주 했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 모습이 꽤 기특해 보였나 보다. 나를 선행상 후보에 추천해 주셨고, 수학여행 땐 나보고 아예 그 애를 챙겨주기를 부탁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즈음부터 그 애에 대한 나의 관심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더 큰 재미를 느꼈다. 그 애와 함께 있는 순간을 조금씩 줄였다. 그렇게 나는 그 애를 떠나 다시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얼마 후, 우리는 졸업을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나는 의무소방원으로 일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냥 의경 같은 거다. 다만 소방서에서 먹고 잘뿐이다. 여하튼 운이 좋았는지 나는 고향의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의무소방원의 업무에는 현장 출동을 포함해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유치원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버스 한 대가 도착하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아니었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어른들이었다.

 

담당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으니 복지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이라고 했다. 나와 후임들은 난감했다. 이렇게 큰 성인들을 상대로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직원 한 명이 올라와서 도와준 덕에 교육은 잘 마무리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데 익숙한 얼굴아 눈에 들어왔다. 그 애였다. 부끄러운 비밀을 들킨 것처럼 마음이 뜨끔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아마 그 애도 나를 알아봤을 것이다.

 

내가 고향을 떠나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그 애는 이 작은 도시에 남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이엔 벌써 몇 년이라는 갭이 생겨 버렸다. 나는 순간 내가 그 애를 버리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그 애에게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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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하나의 세계를 떠나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이를테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혹은 취업을 하고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을 할 때? 여하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하지만 종종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울타리 너머에서 어서 이쪽으로 넘어 오라고 손짓을 했는지도 몰라요”

 

 

아마 우리는 서로를 절대 이해 못할 것이다. 모두가 떠나버린 세계에 홀로 남아 정든 자리를 지키는 그들을 우리는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뒤처지지 않고 잘 자라주었구나’, 하며 스스로 안심하고 기특해한다. 아직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어서 이쪽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으로 재촉할 뿐이다. 그러다 그들이 여전히 움직일 기미가 없겠다 싶으면 과감히 등을 돌려버린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안심하던 울타리의 존재는 보호가 아니라 경계와 배척의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동아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전부였던 하나의 세상이 송두리째 뒤틀리는 상실의 아픔을 겪었던 그녀의 사정을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고 이해해 주지 않는다. 미래의 아빠와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책망할 뿐이다. 한때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찬우는 그녀의 존재가 부담스럽다며, 내심 이 마을을 떠나주기를 바란다. 찬우와 이별하던 날, 유일하게 그녀의 아픔을 알아주고 노래로 달래주던 석우는 조만간 시설로 보내질 거라고 한다. 미래 역시 동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다음날 도망치듯이 마을을 떠나버렸다.

 

이제 동아는 홀로 남았다. 모두에게 버려진 동아에게 남겨진 선택지라곤 마을을 떠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거짓말처럼 동아는 며칠 후 미래에게 멀리 떠날 거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어른이 된 미래는 고모가 보낸 편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고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진 몰라요. 근데 저는 그 여름이, 고모가 자꾸 떠올라요.’

 

앞으로도 미래는 동아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우리가 동아를 우리의 삶에서 떼어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바보들이 잘 눈에 안 띄는 것 같지 않아?"

"어쩌면 우리가 바보를 분리해버린 건 아닐까? 무슨 병원이니 요양원이니 재활원이니 그런 데다 넣어버리는 거지."

 

- 강풀, <바보> 中

 

 

이 글을 쓰기 위해 연극을 보며 메모를 하던 순간들이 갑자기 아까워진다. 좀 더 연극에 집중해서 볼 걸 그랬다. 이 연극은 최소한 두 번은 봐야 한다. 처음엔 미래의 시선에서 보겠지만, 다음엔 동아와 석우의 시선에서 보게 된다. 정말로 안타까운 건 이 공연이 벌써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대본집이라도 사둘 걸 그랬다.

 

집으로 돌아와 어딘가에 있을 동아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녀는 무얼하고 있을까. 초록빛 술병을 기울이고 있을까? 아니면 라디오에서 지나간 노래들을 듣고 있을까.

 

동아를 생각하면 스웨덴 출신의 가수 ‘ABBA’의 멤버인 아네타가 떠오른다. 82년 해체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던 다른 멤버들과 달리 세상으로부터 꽁꽁 숨어버린 금발의 여자 가수. 그녀의 맑은 듯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에 달을 보고 선 동아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것만 같다. 2004년 기나긴 침묵을 끝내고, 아네타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동아 역시 그럴 수 있을까. 만약 기적처럼 그럴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그리고 그 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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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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