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도 ‘활자’가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오히려 정돈된 ‘활자’를 만나는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보니 끊임없이 뭔가를 읽어도 스스로를 책과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요새 만나는 글들이 디지털 상의 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사회의 무더운 여름 만나게 된<책 좀 빌려줄래?>는 활자에 대한 애정을 환기해주는 바람이었다.
“내 안의 세상을 훌쩍 벗어날 거야. 한자리에 앉아서”
책 읽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는 묘한 자괴감이 스물스물 올라오던 때에 만난 <책 좀 빌려 줄래?>는 소싯적 재미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을 불러왔다. 특히 책 읽기에 다루는 초반부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책에 파묻혀’나 ‘독서가의 선언’, ‘책읽기 목표’ 에피소드는 책과 가장 친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타고나길 집순이었던 필자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소파에 머리를 박고 책을 읽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다. 도서관에서 아무거나 빌려서 다 읽을 때까지 소파에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엎드려서 읽다가 누워서 읽다가 앉아서 읽다가. 아무튼 그냥 계속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오직 책과 나만 함께 하는 세상에 빠져든 것만 같아 결말을 보고 났을 때 묘한 몽롱함과 아쉬움에 빠져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책 속 인물들과 함께 하고 있었는데 나만 책에서 빠져나온 기분을 자주 느꼈다. 그 아쉬움에 다른 책을 빨리 펼쳐 다른 세상으로 도망가고는 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더라도 이런 경험이 있다면, “책 컬렉터이자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가 책에 보내는 오마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책 읽기 싫어하는 마음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들’ 에피소드에서는 ‘책 먼지 알레르기’, ‘어두운 조명’처럼 웃음이 나는 것도 있지만, ‘시간 부족’, ‘무기력한 권태감’, ‘방대한 책의 세계에 압도됨’처럼 책을 읽어야지 싶을 때 드는 막막함을 있는 그대로 적어두기도 한다. 이런 솔직함이 작가의 책 사랑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 데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디로 또 이어질지 모르는 다음 줄을 따라”
≪뉴욕 타임스≫, ≪뉴요커≫ 등에 만화를 연재하고 카툰 어워드에서 '최고의 미국 만화'를 수상한 일러스트레이터 그랜트 스나이더가 쓰고 그린 작품이다.
간결하고 가볍고 유쾌하다. 그렇지만 작가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고 책을 사랑하는지는 명확히 드러난다. 책을 사랑한 끝에 그는 책을 만드는 창작에 이르게 되는데, 탐독을 다루는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창작을 다룬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가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지만 독자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말, 그림, 노래, 요리, 등등 무엇이든 혼자 빈 곳을 채워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힘든지 그렇지만 그걸 할 수밖에 없는 애정도 같이 떠오를 것이다.
매일 써도 ‘못 이룬 꿈들만 무수한 휴지 조각처럼 쌓여 그 속에 갇혀 사는 게 다일지도’ 모르지만, ‘처음처럼 나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써봐’라고 말하는 작가는 ‘글을 쓰지 않으면 못 사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어쩔 수 없는 책벌레의 삶은 ‘나는 글을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삶으로 이어져 쓰고 읽는 즐거움의 굴레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가 탐독한 책들은 영미권의 작품이 많다. 만약 해외 문학에 관심이 많다면, 학창 시절 시절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야 하고 파리 대왕, 화씨 451, 시간의 주름 등으로 여름 방학을 보내는 작가의 유머가 잘 와닿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언급되는 작품들을 몰라도 책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번역가 또한 ‘열일’하셨다. ‘그림책에 더 다양한 동물을 등장시켜주세요’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개는 그만 나오개’, ‘고래도 고만 나오고래’와 같이 센스 있는 번역으로 언어유희를 살려주고 있다. 그 덕분에 다른 문화권의 책이지만 작가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한국어로 어떻게 옮겼을지 기대하면서 읽을 수 있다.
코로나 시국이 심각하다. 집콕과 방콕이 필수가 되었는데, 잠시 멀리 했던 책을 읽고 싶다면 <책 좀 빌려 줄래?>부터 읽고 책 읽기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는 것은 어떨까. 이번 기회에 <책 좀 빌려 줄래?>에 공감할 수 있는 책벌레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