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설이 빚은 내면의 몰락 – 도서 '체리'

문제가 없는 게 문제였다.
글 입력 2020.08.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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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리> 스틸 이미지.

 

 

 

1.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 사회 보편에 던지는 교훈이 있다-라는 식으로 서사를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주인공이 너무 “못났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주인공 ‘나’는 적당히 먹고 사는 데에 문제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도 내면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난 사람이다. 고장은 탈선으로 이어진다. 애인들과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학교 수업에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에 도전하며 나름대로 벌이를 시도하는 행위 역시 탈선의 일부로 전락한다. 생계를 위한 일에서조차 자기 자신의 쓸모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주인공의 물적 환경부터가 ‘생계유지’에 강박적으로 집착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지 않다. 그의 인생에는 무언가 절박하고, 간절한 게 없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은 성관계, 가학과 피학이 오가는 연인관계처럼 원초적인 쾌락을 주는 행위에 몰두한다.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확산에 손을 댄 것도 같은 층위에서다. 그에게서 역경을 극복하려는 인내심, 성실함, 올곧음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뚜렷한 계기도 없이 주인공은 마음껏 망가진다. 그러지 않고 착실한 대학생으로 살아갈 기회가 충분한데도 그는 인생을 스스로 망친다. 군대에 자원해 이라크에 파병되고, 전장에서 의료특기병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보통 사람이 군인을 다룬 서사에 요구하곤 하는 그럴싸한 명분이 없다. 이를테면 군인으로서의 사명감, 동료를 구출하기 위한 희생정신,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 집에 계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 보편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코드가 없다. 그 모든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 죽는 것이 최악이었다. 집에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나았다. 그게 논리적이었다. 막판에 죽고 싶지는 않은 법이니까. (p244) ‘나’는 자기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적인 인간이다. 그게 논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책을 읽고 나니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정보를 조금 찾아보니, 이 작품이 작가 나름의 자전 소설인 듯했다. 어린 청년, 이라크 참전용사, 마약 중독자에 은행강도. 주인공에게 뚜렷한 이름이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나. 니코 워커는 어떤 온라인 뉴스 플랫폼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기사로 송출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출판사에서 책을 내 보자고 연락이 왔단다. 감옥에서 탄생한 범죄자의 소설. 주인공의 삶은 일반의 관심과 개연성에서 한참 멀어졌다. 그런데도 루소 형제는 2년 전, 이 소설의 판권을 구매했다. 영화로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배우진도 탄탄하다. 그 톰 홀랜드가 심지어 주연으로 출연한다. 잔뜩 망가져 범죄자가 돼 버린 인간의 서사가 상업 영화의 끝판왕, 할리우드로 진입한 것이다. 영화계뿐만이 아니다. 저명한 일간지의 평론면에서도 소설은 무수한 찬사를 받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바닥을 기는 삶.’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주인공의 삶은 기구하다. 사회가 말하는 정상인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주인공처럼 인생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꼬일 일은 적다. 규범적인 맥락에서 ‘나’는 욕과 비난을 한껏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주인공을 둘러싼 온갖 묘사를 읽다 보면, 주인공이 저지른 도덕적 잘잘못과 별개로 그가 애달픔으로 점철된 인간임을 알 수 있다. 이때의 애달픔은 주인공의 비개연적인, 비정상적인 인생사가 빚어내는 결과적 감정이다. 그의 인생은 정상적이지 않지만, 인생을 정의하고 설명할 절망적인 감정이 이끌어나오는 과정들은 개연적이다. 대중성이 담보된 할리우드가 이 소설에 주목한 계기도 그것이지 않겠나. 불쾌하고 착잡한데도, 주인공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보편적인’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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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표지를 벗기면 저렇게 생겼다.

 

 

 

2.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은행 직원은 쉽게 돈을 내준다. … (돈을 터는 과정은) 함께 도란도란 농담을 나누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실제로 농담을 던지는 쪽이었다. 맹탕으로 보였다가는 혹여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내게 위험한 짓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겁쟁이로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광기 어린 것처럼 행동했다. … 그래야만 은행장이 돈을 내준 직원에게 “대체 이런 겁쟁이한테 돈다발을 왜 준 거야? 자네는 당장 해고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날이면, 그 여직원은 곧바로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이제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가 없다고 말해야 할 테니까.

 

(프롤로그, p21)

 

 

내면적으로 비틀린 모든 것들에 눈길이 갔다. 은행에 돈을 털러 온 주제에, 돈을 내어주고 곤란에 처할 직원을 배려하는 대목을 읽으며 골이 울렸다. ‘어떻게 이리 근본 없이 다정하지.’ 주인공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안다. 처벌받을 행위일 걸 알면서도 끝내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고자 은행을 턴다. 그런 와중에 쓸데없이 선하다. 말 그대로, 그가 발휘하는 선은 실질적인 쓸모를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만 봐도, 결과적으로 직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견책을 당할 거다. 그가 악인으로 보이게 굴었건, 맹탕으로 보이게 굴었건 간에.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은행털이라는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고, 그 행위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주인공을 쉽게 비난하기 어렵다. 심지어 절도의 목적이 약을 하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비윤리적인 욕망 성취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그렇다.

 

주인공을 나쁜 인간의 군상이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은, 주인공의 정상적인 주변부가 낳은 불안정한 심리에서 나온다. 최선을 다했지만 피자 반죽이 생각만큼 팽글팽글 돌아가지 않고 처음 시작한 모양 그대로 계속 내려왔다. 피자 반죽이 회전하는 궤도 자체만 봐도 엄청나게 슬픈 분위기가 감돌 정도였다. 내게는 마술 같은 재주가 없었다. (p59) 겉으로 보면 ‘나’의 인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 줄 부모가 있고, 물질적으로 그리 부족하지 않다. 딱히 그 자신을 괴롭히는 외부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런 환경이 내적으로 주인공을 고립시키는 계기가 된다. 아무런 일도 없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주인공의 일상은 무기력 속으로 내려앉는다. 일종의 권태다.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삶에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동시에 문제가 아닌 사건들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적 자질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도, 삶을 역동적으로 영위해나갈 극적인 명분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마약성 진통제에 탐닉하고, 대학 생활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명분 없음’ 때문에, 이라크 파병에 자원하기 전까지 주인공의 삶은 단지 철없는 대학생의 일탈에 불과하게 읽힌다. 그렇기에 독자는 별다른 ‘나’의 기이한 행동들에서 악의를 발견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본질적으로 악인이 아니라는 확신은, 에밀리와 약식 결혼을 진행하고 그녀와 평생 살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에서 생긴다. 온갖 탈선에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나’는 정신적으로 고결한 사랑을 결심한다. 인간에게 헌신하겠다는 윤리적 감정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이제 다 큰 성인이 됐노라고 확신했다. 본래는 내가 이라크로 가기 전에 결혼할 생각이었다. 에밀리가 먼저 그 얘기를 꺼냈다. 그게 합리적인 것 같다고. 우리가 결혼하면 나는 월급을 더 많이 받을 테고, 에밀리는 내 의료보험에 배우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에밀리와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이혼할 것 같아.” 에밀리가 예언하듯 말했다.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네가 원한다면 이혼해 줄게.”

 

(p136)

 

 

보다시피 주인공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외적으로건, 본성적인 면에서건. 이런 상황은 그를 자발적인 몰락으로 밀어 넣었다. 문제없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인생은 권태를 빚었고, 주인공은 그 앞에서 서서히 무너졌다. 권태에 깊이 빠졌기 때문에, 상황을 타개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기울일 수 없었다. ‘나’의 최선은 순간적인 쾌락과 충동을 만끽하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군입대라는 충동을 저지르는 데에 이른다.

 

 

 

3. 근본적인 문제 발생은, 근본적인 문제 미해결로 이어졌다.


 

충동의 끝에 도달한 군입대는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불안정을 가져올 뿐이었다. 보통의 전쟁 소설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애국심과 동료애를 보여주며 전장에 몸을 바친다. 하지만 ‘체리’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초를 서지 않는 등 위험을 피하려고 하며, 군대 동기와 상사들이 내비치는 사명감 대신 그들이 내뱉는 성적 농담에 주목하며, 군대 바깥에 있는 연인을 생각한다. ‘나’는 의료특기병으로 지원했기에, 전장에서도 직접 총을 들고 적을 사살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진 않았다. 하지만 피격이 오갈 때마다 어쩔 도리도 없이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연신 비속어를 퍼붓고 슬픔에 빠진다.

 

이는 곧 “용맹한 군인답지 않은” 소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아무 흥미가 없었다. 내가 노스만큼 애국심이 강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그래봤자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죽고 에밀 리가 다른 남자들이랑 뒹굴 뿐일 테니까. … 나는 억센 남자인 적도 없고 평생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참전용사가 되었다면 물러터진 내가 운 좋게 죽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뿐이다. (p237) 군대와 전장에서의 생활은 주인공에게, 주인공 자신이 처한 실존적 위협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주지 않았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의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는 여전했다.

 

많은 독자는 소설 ‘체리’의 핵심이, 전쟁이 주인공에 안긴 후유증, 정신적 질환에 있다고 볼 것이다.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옳은 해석도 아니다. 주인공은 전장에 뛰어들기 전에나, 뛰어든 후에나, 전역한 후에나 항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주인공이 보냈던 시간들은 정상적인 그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원래 비정상에 가까웠던 그가 완전한 비정상으로 넘어가도록 결정타를 날렸다. 이라크 전쟁과 군 생활은 주인공에게 생겼던 권태, 혹은 무기력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심화시켜 영원한 미해결에 봉착하게 했다. 헤로인을 포함한 약물 중독에 더욱 빠지게 하는 등, 인생이 더욱 근본적으로 망가지게끔 하는 배경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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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리>의 스틸 이미지

 

 

 

4. 그런 주제에, 꽤 다정했다.


 

그런 와중에도 본성에서 나오는 다정함은 버리지 못했다. 군대 안에서도 그는 애써 부정하면서도 동료가 죽지 않도록, 온갖 이유를 동원해 동료들의 무차별적인 전선 투입을 최대한 막았다. 부상과 감염으로 죽어가는 동료 앞에서도 온갖 항생제와 병원 요법을 시도하며 그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자신이 포격을 당할 수 있었는데도, 죽은 동료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총알과 폭탄이 오가는 전장 한복판에 다가갔다.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또한, 자신의 배우자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든, 금전적인 지원을 요구하든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원망하지 않았다. 군대 내의 다른 여성 동료에게 눈길을 주지도, 포르노를 보며 욕정을 해소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는 에밀리를 향한 사랑을 떨쳐내지 못했다. 군대에서 나와 그녀와 잠시 헤어졌던 사이에도 그랬다. 그만큼이나 ‘나’는 아이에 가까운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은행을 터는 순간에조차 말이다. 이렇듯 주인공을 둘러싼 본성적인 선함은 넘길 책장이 없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에게 더한 번민과 연민의 여지를 준다. 볼멘 원망이 가능하게 한다. 독자는, 차라리 악할 것이면 처음부터 악할 것이거나, 선할 것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도덕적으로 무너지지 말거나-하고 내적으로 읊조리게 된다. 주인공의 행적에 관한 단정적인 판단도 유보하게 만든다. 그저 ‘나’가 봉착한 번뇌에 집중해, 도대체 그를 괴롭히는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일지 끝까지 고민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와 관객은 소설과 스크린 속의 ‘나’를 개연적인 서사의 맥락 위에서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틀린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권태, 무기력, 비정상성이 만들어지는 비개연적인 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어쩌면 루소 형제가 본 작품의 영화화를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복합적인 감정 이입과 대입을 요구하는 인물이라는 것. 영화에서도 여전히 ‘나’는 서사의 전개만으로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인물일 것이다. 누구나 겪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은 만큼, 서사 자체만으로는 왜 그가 정신적으로 그렇게 몰락했는지 유추하기 어려워서다. 그만큼이나 복잡하다.

 

처음 도서를 수령했을 때, 책을 덮고 있던 빨간색 표지를 빨리 벗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딘가 불편했던 것 같다. 검은 색감의 내부 디자인에 어울리지 않게, 산뜻한 재질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체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릴 선명하고 밝은, 정상적인 이미지를 일부러 덧씌운 것 같았다. 작품을 완독해 주인공에게 마음껏 감정을 이입한 후에는 반대로 ‘정상적인’ 감정의 껍데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질의 종류는 달랐지만, 분명히 그랬다. 책을 읽는 동안은 정상적인, 도덕적인 세계에서 멀어졌다는 기분이 물씬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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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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