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다와 음악과 섬과 시 - 라메르에릴 제15회 정기연주회 [공연]

바다와 섬, 음악과 시
글 입력 2020.08.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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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광복절 이튿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라메르에릴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주최 측 라메르에릴의 제15회 정기연주회이자, 광복절 75주년 특별음악회인 본 공연은 특별히 ‘독도’와 ‘동해’를 주제로 한 연주회이다. 주최인 사단법인 라메르에릴은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음악, 미술, 시, 무용 등 문화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동해와 독도를 표현하고자 한 비영리법인이다. 매해 독도를 방문해 동해와 독도에서 영감을 얻은 뒤, 그것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창작한다는 그 단체의 공연이란 응당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라메르에릴의 공연은 조금 특별하다. 동해와 독도를 소재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것도 그렇지만, 그 영감을 바탕으로 창작한 예술작품들을 가지고 해외 순회공연을 한다고. 그러니까 그들은 예술이라는 방법으로 독도와 동해, 나아가 우리나라를 알리어 온 셈이다. 이러한 내력의 공연이 광복 제75주년 기념 음악회를 장식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깊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개인적으론 이번이 두 번째이다. 여기 홀은 소리가 아늑하고도 풍부히 울리고, 연주가 진행되는 무대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에 쫓겨 뛰듯이 홀에 입장하였고, 한 자리씩 떨어져 있는 객석에 앉았다. 모두 마스크를 단단히 조여 매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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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가 등장하였다. 오늘의 공연은 네이버 TV를 통해 송출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에도 올라올 것이라고. 추후 이 공연이 궁금하시거나, 다시 보고 싶은 분들은 이렇듯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내 마음이 퍽 놓였다. 짧은 안내 및 사회를 뒤로하고 곧 연주자들이 입장한다. 각자 다른 색의 드레스를 입고, 화사한 색채를 무대 위에 풀어놓고 계셨다.

 

첫 곡은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이다.

 

‘홀베르그 모음곡’은 노르웨이의 국민음악 작곡가 에드바드 그리그가 작곡한 곡으로, 같은 노르웨이의 인물이자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홀베르그 남작을 기리기 위한 곡이라고 전한다. 총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곡, 악장 별로 풍기는 분위기가 각 달라 듣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현장의 감동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공연의 연주 영상을 가져와 본다.

 




 

1악장은 대항해의 출항을 연상시키는, 산뜻하고 활기찬 음색을 띤다. 앞서 소개한 곡의 내력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항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나, 동해와 독도를 노래해 온 ‘라메르에릴’에 의해 광복절 기념곡으로 연주되었다 보니 오늘, 이러한 감상과 해석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리드 바이올리니스트 두명이 곡의 중심을 잡고,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부드럽게 각자의 선율을 꾸린다. 또한 서로의 선율로 얽어 들어가다간 이내 하나의 선율을 그린다. 유장하고 활기찬 이 선율은 참으로 전주곡답다는 생각을 자아낸다.

 

영상 3분 50초, 2악장에 접어들며 곡의 분위기는 단번에 뒤집힌다. 여유롭고 조용한,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해변 부두 마을을 연상시키는 음색. 어딘가 장중함마저 흐르니, 아, 이것은 바다 자체라기보다는 바다를 바라보는 어떤 이의 사연 깊은 눈동자에 더 걸맞다고 하겠다. 그들은 ‘독도’에 서서 ‘동해’를 바라보며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었을까. 이러한 감정 또는 사연이 바로 이 곡을 선정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영상 7분 42초, 3악장에 이르니 곡의 분위기는 다시 맑아진다. 주로 이렇게 긴 구성을 가진 클래식 음악은 일종 ‘항해’에 빗대어지곤 하는데, 그 까닭을 알겠다. 출항의 환희와 대해 위에 서린 먹구름, 이내 다시 천기가 맑아오며 터오는 지평선의 태양과 같이, 곡은 악장을 거듭하며 명랑함과 진중함, 쾌활함과 신중함을 오간다. 9기의 바이올린과 3기의 비올라, 3개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이들이 내는 음악이란 그 색깔이 밝든 어둡든 간 참 웅장한 맛을 띈다.

 

11분 4초, 4악장에서 분위기가 또 전복된다. 이 곡은 레퍼토리가 바뀌는 때마다 곡의 핵심 분위기와 인상을 바꾸는구나. 크게는 밝음과 어둠, 환희와 고뇌로 말이다. 다른 관악기 없이, 현악만으로 채워내는 이 집단 음에는, 현악 특유의 부드러움과 산뜻함으로 가득 차 있다. 즉, 2악장과 4악장에서 피오르는 어떤 고뇌는 어두운 늪 속의 것이라기보다는, 잠깐 지나갈 신열처럼 청자인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극복을 함의하는 고뇌, 그러므로 극복과 발전을 위하는 고뇌로 한껏 내게 들리온다.

 

15분 25초, 역시나 곡 분위기가 희망차게 변모된다. 이번 모음곡의 경우 레퍼토리 한 개의 길이가 짧아 곡 분위기의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이내 곡은 활기를 되찾는다. 그것은 마치 하룻밤을 기점으로 변모하는 우리의 감정선과도 닮았다. 그런 감정선의 변동 폭을 따라 선율은 시종 우아하게 진행된다. 현악 앙상블의 묘미란 이런 것이구나. 이 우아한 멜로디 라인의 아래로 이따금 울리는 베이스의 소리가 너무도 뭉클하다.

 

홀베르그 남작을 기리는 노래, 홀베르그 모음곡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곡에서 바다를 보았다. 라메르에릴도 마찬가지였을까. 동해와 독도를 연주하는 그들로서는, 정말 그러했다고 생각해볼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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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임, 섬, 100x100cm, Acrylic on Canvas, 2019

 

 

다음 곡은 라메르에릴의 작품, ‘독도오감도’이다.

 

본디 생황, 가야금,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각 1인, 총원 5명으로 구성된 음악이었으나, 이번 연주회에서는 그 규모를 넓히었다. 응당 더욱 웅장한 맛이 가미되었으리라 기대한다. 앞서 홀베르그 모음곡을 연주한 16인의 현악 앙상블에 더불어, 가야금과 생황 연주자가 등장한다. 서양악과 드레스, 국악과 한복이 무대를 함께 채우니 시각적으로 벌써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림과 음악과 시가 하나 된 공연”


사회자의 말이다. 이제 보니, 곡의 매 악장마다 뒤편 높은 곳에 걸린 스크린 위로 그림이 영사된다. 라메르에릴의 예술가들이 그린 여러 모습의 독도다. 그 그림의 밑에 음악은 피어나고 이내 3악장, 소프라노가 등장하여 목소리에다가 시를 얹는다.

 

 


 

 

한껏 부푼 기대 위로 연주는 시작된다. 곧 현악이 바다 안개처럼 엷은 배음을 그리어주는 가운데 가야금 특유의 오랜 전설 같은 소리가 능히 올라탔다. 그 홀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펼치는 것이다. 그리고 곧, 생황과 소리를 견주기 시작한다. 생황 소리는 처음 듣기에, 그 소리가 퍽 놀랍다. 카랑카랑하면서도 음의 어딘가 투박한 따스함이 물큰 서리어 있다. 악기를 잘 모르지만, 서양 관악 특유의 울리는 소리보다는 하모니카 소리에 닮았다.


생황과 가야금이 견주듯 음을 주고받는다. 전혀 다른 색의 두 악기, 생황 소리가 한번 확실한 인상을 남긴 다음 그 뒤로 가야금의 뚝 뚝 뜯는 쓸쓸하고 호젓한 소리. 그 뜯는 음 사이사이 빈 공간을 현악 앙상블이 언제나 은은히 메워주고 있었다.


7분 경 2악장, 빠르고 경쾌한 박자가 울려 퍼지는 뒤로 새로운 독도의 그림이 투사된다. 그림과 음악은 모두 독도의 오전 풍경을 그리는 듯하다. 이번엔 바이올린과 생황이 선율을 같이 한 채, 가야금과 견준다. 한없이 보드라운 바이올린의 이 소리 위에서, 가야금은 그 개성과 멋들어진 고집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영상 11분, 3악장에 이르러 소프라노가 등장한다. 관현악 앙상블의 낮은음으로 출발하는 선율에 생황 소리는 낯선 듯, 꼭 맞는 듯 들어차기 시작한다. 뒤편 스크린에 노래 가사가 비추이고, 소프라노는 독도의 노래를 시작한다. 이규형 시인의 시, ‘독도’이다.


 

이규형 - 독도.jpg

 


‘사철 우리의 동녘을 지키는 외로운 섬 독도. 우리가 또한 그를 지키리라.’ 가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8천만 우리’, 아마 남북 막론 이 반도의 모두가 우리 터, 우리 땅을 지키리라 고하고 있다. “누가 넘볼까, 감히.” 이렇게 엄포하고 있었다.


현악 앙상블은 시종 배경이 되어주고, 한 기의 가야금과 하나의 생황이 너무도 선명하다. 묻히지 않고, 되려 이 배경 위로 활짝 피어 존재감을 과시하는 뚜렷한 이 개성. 두 국악 소리가 대결과 화합을 모색하는 가운데 한중간을 소프라노는 서서, 독도를 부르고 지키리라 엄포하고 있다. 성악 발성으로 표현된 우리 말, 우리 시가 참 곱다. 그러나 한없이 고운 이 소리에 견지된 노도와 같은 의지는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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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에 뒤이어 잠깐의 인터미션이 있었다. 2부에는 광복 75주년 기념으로 위촉되어 이번에 초연된 ‘환희’와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기다리고 있다. 네이버 TV와 유튜브 '라메르에릴' 채널에 영상이 마련돼있으니 직접 감상해보심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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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송, Mountain in Motion-Concerto 320x160cm

흙벽화기법에 천연안료, 2020

 

 

바다와 섬과 음악.

 

그들은 섬에서 무얼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온 것일까. 2부 마지막 곡, 차이코프스키 선율에 잠긴 채 나는 외로운 그 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며, 스크린에 입힌 그림을 바라보며 말이다. 생각에 깊이 빠진 나를 이따금 더블 베이스가 깨운다. ‘차이코프스키 선율 위에는 어떤 공연 의도가 깃들어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에 폭 잠길 만큼, 그때 선율은 보드라웠다. 선율 속에 깊이 안겨 나는 이 음악에 대하여, 나아가 바다와 그 섬에 대해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 바다, 아득히 깊은 동해와 그를 지키는 파수꾼 독도를 말이다.


가본 적 없는 외로운 섬과 그 섬을 경계로 아득히 아득히 세계를 향하여 뻗어 있는 동해를, 이번 계기에 떠올려본다. 그 바다는 아득히 깊고, 그 커다란 품을 한 개의 섬이 언제까지고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100인의 예술가들은 그 섬과 바다엘 다녀와 ‘우리가 또한 이 섬, 이 땅, 이 터, 우리의 것을 지키겠노라.’ 여기 다짐하고 있었다.


선율은 언어를 초월해 감정과 감각을 전달한다지만, 그에 대해 정의내리기가 참 모호하고도 어렵다. 그래서 테마랄 게 있는 것일 테다. 이 공연은 음악과 미술을 결합하여 감정과 감각, 의도를 유도하고 있어 감상이 보다 쉬웠다. 나아가 소프라노의 깊은 목소리로 시마저 흘러나오고 있나니 더욱 그러하다. 이번 광복 75주년 특별음악회, 그것은 그림과 음악과 시, 그리고 광복의 기억과 단결된 의지가 결합한 입체적 체험의 장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커다란 홀에 앉은 채로도 선명한 동해와 독도를 느끼고 돌아온다. 행복하였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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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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