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Sinn)의 혁명] 002. Folklore: 테일러 스위프트, 인간적 세계관의 완성 ①

돌연 발매된 8집과 서사성의 확장
글 입력 2020.08.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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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발매된 8집, 'folklore'

 

 

 

1. 사건의 서막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코로나 유행 재발의 여파로 2주간 휴원하겠다는 안내였다. 대자연의 농간 앞에 인간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학원 수업은 내게 고통의 시간이다. 얼만큼이나 글을 못 쓰는지 실시간으로 체감할 수 있어서다. 낯선 사람들과 한 교실에 앉아 있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체력 소모가 크다. 수업 시간을 견디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지만 막상 휴강하겠다는 문자가 날아오니, 반사적으로 입에서 탄식부터 나왔다. “내 공부, 제발!” 전염병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지만, 나는 계속 채찍질을 당해야만 하는데. 몸을 웅크리면서도 그곳의 공기를 받아내야 하는데.

 

기묘했다. 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건, 의식적인 차원에서건 확고한 듯했다. 내가 언론이라는 습지에서 찾고자 하는 건 뭘까. 내 세계관은 어떤 이유로 그곳을 향해 있을까. 붕 떠 버린 2주를 어떻게 수습할지 잔뜩 고민하며 가까운 지인에게 온갖 하소연을 늘어놨다. 귀에서는 동시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돌연 새 앨범을 냈다. 주변 사람들을 포함해, 그녀의 돌연 컴백을 예상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테일러의 8집을 스트리밍하는 사진들이 족족 올라왔다.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렇게 갑작스레 새 앨범을 발매하다니! 유튜브 채널에 새로운 음악들이 업데이트 된 걸 보며, 나 역시도 눈을 한 번 비빈 후에 동영상을 클릭했다. 노래를 듣고 난 후에도 당혹감은 여전했다.

 

 

 

2. 8집, 'folklore'


 

층위는 달랐다. 동영상을 클릭하기 전에는 이렇게 갑자기 앨범을 낸다고-에 가까운 놀라움이었다. 클릭 후에는, 갑자기 이런 노래들을 만들었다고-에 가까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들고 온 신곡들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특유의 대중적이고 미국적인 팝 장르에 스며들기 이전에 그녀를 대표했었던. 컨트리 음악, 보다 정확히는 컨트리 발라드에 가까웠다. 내가 종종 그리워하곤 했던 컨트리 시절의 테일러가 이번 8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셈이다.

 

학원 휴강을 포함해, 코로나 대유행 본격화를 기점으로 차질이 빚어진 일정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가슴 부근 통증이 연이어 심해졌던 그 순간, 8집의 'the last great american dynasty'가 연신 귀에 울려 퍼졌다. 이번 앨범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어서, 일전에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으로도 설정해놨을 정도였다. 성을 짓고 자신의 세계에 갇힌 채, 안팎으로 악질적인 소문에 시달렸던 한 여인의 이야기. 나는 유독 그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 원래는 다른 주제에 관한 글자들을 생산하고자 했다. 연이어 노래가 재생되자 생산의 노선을 곧장 바꿨다. 왜인진 잘 몰랐다. 술이 들어가 사고의 기제가 느슨해진 탓인지, 테일러의 이야기를 갑작스레 펼쳐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적 세계관의 완성’이라 제목을 지었다. 말 그대로 이번 앨범은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한 사람의 세계관 확립 여정에 가까워 보여서였다. 그녀는 여태껏 수많은 앨범과 히트곡을 내고, 콘서트를 여럿 개최해 수천만의 팬들을 만났다. 단언컨대 그녀는 21세기의 미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그녀의 사생활에 쏟아졌던 관심과 그것에서 파생한 온갖 꼬리표들 역시 많았다. 남성 편력이 극심하다, 스쿼드(Squad)를 만들어 여왕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같은 동료 가수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모 가수를 상대로 유치한 정치질을 벌였다, 등.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그 동네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 정도는 들어봤을 테다. 그만큼이나 테일러의 영향력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분명 그녀가 갑작스레 새 앨범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놀랐던 이유는 다양했을 거다. 나처럼 과거지향적인 음악 스타일의 노래를 들고 와 놀란 사람이 상당수일 거다.

 

그렇지만 나는 “그 테일러가” 이런 앨범을 냈다는 것에 놀란 사람들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한다. 저렇게 많은 논란을 달고 살아왔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이제는 자신의 유명세와 성공에 힘입어 무언가를 애써 더 해내지 않으려 했을지 모르는 그녀가. 적당히 커리어를 유지하며, 자신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가십거리들에 불을 지필 떡밥이나 가끔 뿌리겠거니, 싶었던 그녀가. 이렇게 컨트리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서정적인 앨범을 선보이다니. 그렇기에 이번 앨범은 어떤 의미로 그녀의 음악적 세계관이 빚어낸 하나의 전환점인 동시에, ‘인간 테일러’가 가진 세계관의 완성이기도 하다. 앞으로 평생 팝이나 만들면서 인기에 머무를 것 같았던 테일러는 컨트리 발라드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리의 편견과 결론에 대한 응답과도 같았다. “아니, 나는 아직도 이런 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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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 'cardigan'


  

 

[Refrain]

And when I felt like I was an old cardigan

내가 오래된 가디건처럼 느껴질 때

Under someone's bed

누군가의 침대 아래에 있는 그것처럼

You put me on and said I was your favorite

네가 나를 꺼내서 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Verse 3]

But I knew you'd linger like a tattoo kiss

나는 네가 키스로 된 타투처럼 오래 남아있을 줄 알았어

I knew you'd haunt all of my what-ifs

나는 네가 나에 대한 ‘만약에’ 같은 생각들로 붙잡힐 줄 알았어

The smell of smoke would hang around this long

담배 연기의 냄새는 이렇게 오래 머물러

'Cause I knew everything when I was young

내가 어렸을 적에,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었으니 말이야

 

I knew I'd curse you for the longest time

나는 내가 너를 오랫동안 저주하리라는 걸 알았어

Chasin' shadows in the grocery line

마트에서 장을 보는 네 그림자를 쫓아다니면서

I knew you'd miss me once the thrill expired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황홀감, 설렘이 끝나면 나를 한 번은 그리워하리라는 사실을 알았어

And you'd be standin' in my front porch light

네가 내 현관문 전등 아래에서 서 있을 거라는 사실도

 

And I knew you'd come back to me

그리고 네가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사실도 알았어

You'd come back to me

네가 돌아올 거라는 것을

And you'd come back to me

그리고 너는 내게 돌아왔지

And you'd come back

내게 돌아왔지

 

 

테일러의 8집이 특별한 이유는, 수록곡 전반에 녹아 있는 ‘회고’의 분위기 때문이다. 앨범 'folklore'의 사전적인 뜻은 ‘설화’, ‘민간에 전승된 신화나 이야기’ 정도다. 나름의 의역을 담아 추측해보면, 테일러의 이번 앨범은 모두를 위한 이야기를 담는다. 모두가 삶을 인내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감정들을 톺는다. 애인과 친구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악질적이고 왜곡된 이야기로 인해 겪었던 고통 등. 그녀는 그렇게 기억의 파편으로 자리한 순간들을 회고라는 이름 아래에 다시 불러낸다.

 

대중들은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점차 테일러의 이야기가 아닌, 가사에 이리저리 엉켜 있는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그런 경험들을 오롯이 자신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사건과 감정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8집의 수록곡들이 지닌 확장성이다. 그런 확장성이 민족, 민속, 민간으로 대표되는 집단 보편의 문화와 이야기로 자리하게 된다. 8집에서 소개하고픈 노래 여섯 개를 세 차례 글에 걸쳐 풀어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내 손에 붙잡힌 노래는 저거다. 'cardigan.' 이번 앨범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테일러가 라이브 채팅에서도 말한 바 있듯, 이 노래는 동일 앨범에 수록된 'betty', 'august'와 연속적인 서사를 이룬다. 가사 내용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 노래만 따로 놓고 보면,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의 감정을 담아낸 듯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노래를 연속선상에 놓고 노래를 해석하면, 이 곡이 곧 삼각관계에 놓인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먼저 'cardigan'은 베티의 관점을 다뤘다. 'betty'는 베티가 사랑하는 제임스의 관점을 다뤘고, 'august'는 그런 제임스를 좋아하는 다른 여성의 관점을 다뤘다. 이들 세 노래의 연관성은 다음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번 편에서는 본 곡이 보여주는 서사의 확장성에 집중할 것이다.

 

그녀는 특히 이번 앨범에서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노래의 서사로 많이 담아냈다고 말했다. 일전에 그녀가 냈던 노래 가사의 대다수는 그녀 자신이 겪었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주로 전 애인들과 연인관계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사랑, 증오, 후회, 그리움 등이 녹여져 있었다. 보통 노래 하나마다 컨셉이 확고했다. 이 노래는 애인에 대한 사랑, 이 노래는 떠나간 애인에 대한 원망 등.

 

이번 앨범에 담긴 사랑 노래들은 결이 다르다. 특히 본 곡이 그렇다. 애정 관계에서 경험했던 저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지배적인 정서가 없다. 'cardigan'의 주인공은 관계가 끝난 애인을 그리워한다. 원망하기도 한다.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연인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고하며 여전히 그 시절에 애정이 남아 있음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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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정의 전이


 

 

Answering questions regarding the meaning of “Cardigan” during a Twitter Q&A, Swift, admitted, “The song is about a lost romance and why young love is often fixed so permanently within our memories.” She added, “Why it leaves such an indelible mark.”

 

테일러는 트위터 Q&A를 진행하는 동안, “Cardigan”의 뜻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에 답변하며 다음의 사실을 밝혔다. “이 노래는 잃어버린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리고 왜 어렸을 적 사랑이 그렇게 종종 우리들의 기억 속에 항구적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는지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왜 그렇게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지에 대해서요.”

 

  

그러면서도 애인을 그리는 자기 자신을 ‘낡은 가디건’으로 정체화한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없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나, 라는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떠나간 연인과 연인을 떠나보낸 자신을 동시에 보듬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노래에 따뜻함만 내포돼있는 건 아니다. 거듭 말했듯이, 노래 자체는 기본적으로 ‘이제는 없는’ 애인을 그리는 이야기여서다. 그런데도 일전의 테일러가 발매했던 이별 노래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그런 노래들은 애인의 불행을 바라고, 애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었다.

 

하지만 'cardigan'에는 체념이 서려 있다. 이미 모든 것이 종결된 상황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게 남아 있지 않다는 심정. 체념은 곧 차분한 회고로 이어진다. 좋고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읊조림으로 변모한다. 읊조림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놓아주도록 한다. 이로써 자신의 경험을 보편의 민담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누구에게나 서툴고 아름다웠던 사랑에 도전했던 기억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얻었던 상처와 흉터의 잔상이 존재한다는 층위로 말이다.

 

그래서 듣는 이는 테일러의 차분한 읊조림이 자신에게 전이됨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청취자에게는 복합적인 형상의 감정이 전이된다. 떠나간 애인에게 남아 있는 미련과 그리움은 물론이고, 감정을 품은 자신에 대해 “객관화된”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의 처지를 지나치게 비관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테일러의 음악은 한층 성숙해졌다. 여태껏 그녀가 모두에게 전이되는 이야기를 다룬 적은 드물었다. 꾸준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사랑, 인생, 성공, 우정.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순전히 그녀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가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테일러는 이번 앨범을 통해 대중의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가수로서’ 그녀는 ‘인간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자신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면서도, 그것에만 갇혀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인간적 세계관은 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 다음 편 글자들에 찍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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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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